산행기/2023 산행기

둘레길 스탬프도 찍고 칼바위도 넘고 (북한산, 4/14)

산무수리 2023. 4. 15. 20:10

<아주 오래 천천히>

                         이병률

떨어지는 꽃들은 언제나 이런 소리를 냈다

순간
순간

나는 이 말들을 밤새워 외우고 또 녹음하였다
소리를 누르는 받침이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그 받침이 순간을 받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새벽에 나는 걸어
어느 절벽에 도착하여
그 순간순간의 ㄴ들이
당도할 곳은 있는지
절벽 저 아래를 향해 물었다

이번 생은 걸을 만하였고
파도도 참을 만은 하였으니
태어나면 아찔한 흰분홍으로나 태어나겠구나
그렇다면 절벽의 어느 한 경사에서라면 어떨지

그리하여 내가 떨어질 때는
순간과 순간을 겹겹이 이어 붙여
이런 소리를 내며

순간들
순간들

아주 아주 먼 길을
오래 오래 그리고 교교히 떨어졌으면

 

코스개관: 북한산 둘레길 명상길 입구-형제봉-대성문-보국문-칼바위 능선-문필봉-범골 약수터-삼성암-빨래골 입구-북한산 둘레길 흰구름길 입구 (산행하기 좋은 날, 둘)

 

요즘 분발하던 하늘이 드디어 병이 났다. 어쩔수 없이 장공주와 둘만 가게 되었다.

둘만 가면 산으로 가기로 했기에 이왕이면 둘레길 스탬프도 찍고 산행도 하는 코스로 가기로.

10:30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만나 버스타고 북악터널 입구에서 하차 후 산행 시작.

언덕을 걸어 올라와 스탬프 찍고 산행 준비하는데 상복 입은 한팀이 걸어 올라오고 있다. 유골함까지 들고.

뭐지? 연화정사라는 곳에 가나본데 고인이 다니시던 절이라 후손들은 큰 버스가 못 올라온다고 걸어 올라와 난감해 하고 있다. 등산로에 있는 절은 구복암이니 거긴 아닌것 같다.

아무튼 흔하지 않은 광경을 보고 출발.

 

평일 산행에 그래도 금욜에는 사람들이 제법 보이는데 오늘은 진짜 한갖지다. 형제봉 가는길은 순탄하진 않은데 초장 거친길에 못보던 기나긴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덕분에 쉽게 올라가 배가 고파 떡을 많이 먹고 형제봉을 향해 출발.

 

형제봉에 올라가니 여기도 왼쪽 내려가는 길에는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이젠 온몸 산악회 모드로 가지 않아도 된다. 가끔 오면 뭔가 조금씩 달라진 모습들이 보인다.

 

오늘은 형제봉의 형 봉우리를 옆으로 넘어서 올라가기로 한다. 역시나 아우보다는 착하지만 괜히 올라왔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랫만이라 까먹었다. 아무튼 장공주와 둘이니 여기도 올라올 엄두를 냈다.

여기서 평창동에서 올라오는 길에서 쉴곳이 마땅치 않아 서서 쉬고 있는데 한분이 누군가에게 땅을 파헤친게 멧돼지인가 묻나보다. 무심히 지나쳤는데 그러고보니 여기저기 파헤친 흔적이 너무 많다. 여기가 국립공원 맞나 싶게 관리가 안된것 처럼 보인다.

북한산에는 아직 진달래가 남아 있어 눈을 즐겁게 한다. 힘들지만 무사히 대성문 도착. 여기서 장공주표 밀크치즈쿠키와 커피로 에너지 보충. 힘 딸린다는 장공주. 이젠 내리막만 있사 옵니다. (헌데 아니었다)

 

여기서 보국문도 기억보다 멀었고 너덜성 계단의 업다운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보국문 지나 보이는 칼바위는 진짜 아름다운데 초장 내려서는 길은 정말이지 그지같다.

여기 무서운데 아니야? 눈치 챘나보다. 갈만해요.....

초장 내려서는 그지같은 길을 지나 데크에 올라서서 무사히 정점에 올라서니 반대편에서 두 처자가 올라와 오늘의 출석부를 부탁.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해 형제봉에서 왔다고 하니 멀지 않냐고. 저기 보이는 봉우리냐고. 그렇다고 어디서 왔냐 하니 청수장에 차 대고 올라오는 거라고.

이분들도 사진 찍어 드린다고 하니 됐다고. 안 친한가봐요. 하니 막 웃는다. 서로 안전산행 덕담 나누고 하산 시작.

 

여기서 칼바위 난코스가 나와 스틱을 넣자고 하니 필요 없냐는 장공주. 온몸 산악회의 진수를 보여줘야 해서요.

헌데 몇년만에 왔을때 칼바위 내려가는데 나도 무서워 혼났는데 오늘은 생각보다 갈만하다. 거기에 장공주도 염려와는 달리 잘 내려온다. 여기 말고 난코스가 또 있나 착각할 정도로....

무사히 난코스 지났고 문필봉에 가니 장공주 체력 방전됐다고 힘들어 한다. 쿠키먹고 힘내고 사진 한장 찍고 하산 시작.

하산길도 돌계단이라 좋지는 않다. 그래도 올라올 때 잘못 올라온 줄 알고 되돌아 갔던 삼성암은 하산길 화장실 옆 후문으로 들어가니 나오는 절이다. 덕분에 새로운 길도 알게 되었다.

이젠 오늘의 두번째 스탬프를 찍는데 빨래골 입구에서 물어보니 정릉쪽으로 얼마 안 가면 나온다고 해서 진짜 얼마 안가면 되는줄.....

 

헌데 웬걸? 스틱이랑 무릎보호대는 다 넣었는데 기나긴 데크길 오르막이 나오고 넘어가니 공원이 나오는데 거기도 아니고 더 가야 한다. 물어보니 넘어가면 스탬프 찍는곳을 본것 같다고.....

마지막 힘을 짜서 한고비 더 넘어가니 드디어 스탬프 찍는 곳이 나왔다. 이곳은 정릉쪽에서 올때도 멀더니 반대편에서 와도 만만하지 않다.

도장을 찍고 전철역으로 내려가려니 좀 더 진행을 하니 솔샘터널 위쪽이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나가니 솔샘역. 근처 식당이 없어 김밥천국에서 늦은 점심을 오무라이스로 때우고 전철 타고 집으로.

밥 한끼 먹기가 이렇게 힘든가 하며 웃었고 힘들긴 해도 뿌듯해 하는 장공주께 감사~

다음 산행은 토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