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6년

동계야영을 한라산에서 하다 1(1.10~12)

산무수리 2006. 1. 15. 00:23
'얼음나라 체류기' - 유홍준(1962~ )


있으나 마나 합니다 내 얼음대문 얼음자물통

낳으나 마나 합니다 내 얼음아이들

얼음시들……

기대기만 하면

녹아버리는 얼음언덕에 기대어

얼음눈물이 줄줄 흐르는 얼음눈으로

바라봅니다 돌아갈 수 없는 얼음어머니

얼음아내……

여보, 건너려고만 하면 녹아 허물어지는

이 얼음다리 위로

나 어떻게 건너가지?

세속의 삶이 불구덩이 '불난 집'인 줄로만 알았는데, '얼음의 집'이라 하네. 스르르 녹아 형체가 사라질까 봐 서로에게 기댈 수조차 없는 그런 곳이라 하네. 어머니를 만나고 아내를 맞고 아이를 얻는 이 인연이 끝이 없는 훗날을 기약할 수 없다 하네. 이 소식은 미리 앞서 하는 걱정인가, 우리의 실상인가. 오! 늙고 작아진 어머니여, 밤새 뒤척이는 아내여, 철모르고 뛰는 아이들아. 그대들 얼음 눈에 얼음 눈물이 줄줄 흐르네.  문태준 <시인>


이른아침, '향수'
[http://littletree.millim.com/]



몇번의 야영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히 선약 때문에 한번도 못 해 본 동계 야영.
기대반 걱정반의 동계야영을 올해는 한라산으로 잡았는데 마침 설악산엔 눈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던 차에 산행지는 기가 막히게 잡은 것 같다.

2005.12.30 1차 예비 모임이 있었지만 팔공산 하고 올라오는 날이라 참석 못했다.
1.6 2차 모임을 종로에서 가졌는데 그때도 30분 늦게 갔더니 이미 공동 짐은 다 분배가 끝났고 난 카메라만 가져오면 된단다.
짐 못지는 내 입잡에서는 고맙고도 미안하다. 하긴 가져 올 장비도 없지만....

지리산 다녀오고 하루 쉬고 연일 산행을 하고 9일 하루 쉬면서 집안일 하고 짐을 싸려는데 70L배낭은 하나 있긴 하지만 들 수도 없어 내가 들 수 있는 제일 큰 배낭인 50L.
문제는 네팔 원정 때 산 expedition급 침낭을 압축색에 넣었는데도 내 배낭에 넣으니 누워 지지 않는다. 그럼 딴 짐은 하나도 못 넣고 침낭 하나만 달랑 넣고 가야 한다.
생각 끝에 날씨가 춥지 않다고 해 1500g 침낭과 고어 침낭 카바를 가져 가기로 했다.
침낭, 카바, 여벌 옷 한벌, 6발 아이젠, 장갑, 오버복 등을 넣고 나니 배낭이 꽉 찬다.
작은 배낭에 넣지 못한 나머지 짐을 넣고 나니 짐이 두개가 된다.
이걸 어찌 지고 산행을 하나....

1.10(화)

9:30 비행기다. 8:30 김포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배낭 두개를 매고 공항버스를 타고 가니 제일 먼저 왔나보다.
좀 이따 황대장과 류선생이 겁나게 큰 배낭에다 카고백까지 들고 왔다.
그리고 60L배낭을 든 신선생이 오고 제일 나중 70L배낭을 멘 김선생이 왔다.
김선생은 애가 아파 올까 말까 망설이다 큰 맘 먹고 왔다고 한다.
내심 안심이 된다. 김선생이 못오면 그만큼 황, 류 선생의 짐이 늘어난다. 난 질 능력이 없고...
짐을 부치는데 류선생 배낭과 카고백은 거의 30K가 되나보다. 휴...

비행기를 탔는데 아침을 너무 일찍 먹어 배가 고프다.
국내선에서는 기내식을 왜 안 주냐고 하니 동경 경유하면 아마 기내식을 줄거라고 웃기는 김선생. ㅎㅎㅎ
토스트라도 하나 주면 참 좋겠다 싶다.

10:40 제주 공항 도착.
짐을 매고 길을 건너는데 한 사람이 따라 붙는다.
렌트카 기사(백호현 017-691-0006)인데 어차피 우리 짐이 많아 택시 두대는 불러야 하는데 짐을 다 싣고도 탈 자리가 넉넉하다 싶다. 관음사 매표소까지 3만원 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차를 탔다.

관음사 가기 전 화이트 개솔린과 동계용 가스를 사야 하는데 장비점이 어디인줄 모르겠다.
기사가 전화로 알려준 곳에 가니 안 판단다.
여기 저기 물어보니 관덕정 근처 장비점에 가야 한단다.
중앙로 살레와 아름다운 산행(064-724-7071)에 가서 겨우 구할 수 있었다.
시간이 늦어져 점심을 먹어야 겠다. 만원 추가하고 점심을 아예 먹고 가기로 한다.
기사가 안내하는 제주시청 앞의 보건식당(064-753-9521)에 가서 오분자기를 먹었다.
집은 허술한데 맛도 시원하고 오분자기도 많이 넣어 준다.

배가 부르게 먹고 관음사 관리소에 도착한 시간이 13:00.
다들 각서까지 쓰고 짐을 다시 싼다.
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산에서 쓰지 않는 짐을 카고백에 담아 관리사무소에 맡기고 짐을 싸는데 장난이 아니다.
이중화가 없는 나와 김선생은 그냥 등산화를 신고 가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이중화를 갈아 신는다. 문제는 신선생은 이중화 이번에 사서 처음 신어 보는 거란다. 헌데 신는것도 쉽지 않은지 혼자 신지도 못한다. 신발도 너무 큰것 산것 같다고 걱정을 해 준다.

 
관음사 관리소 앞 주차장에서 짐을 챙기며...

이번에 새로 텐트, 눈삽을 사고 스노우바, 피켈, 12발 아이젠 등은 홍선생한테 빌려왔다.
아무튼 공동장비에 산에서 먹을 주부식이 장난이 아니다.
나도 하나 넣긴 했지만 무거운건 겁나서 넣지도 못하겠다.
아무튼 겨우겨우 짐 나누고 다 못 넣은 짐은 작은 배낭에 넣어 달아 매고 산행 시작한 시간이 13:30.

 
초장에 짐도 무거운데 속도 엄청 빠르다...

다들 짐도 무거운데 생각보다 산행 속도가 무척 빠르다. 배낭 제일 작은 난 후미에서 깨갱 소리도 못하고 올라간다.
조금만 비탈이면 미끄러워 버벅대며 올라가야 한다. 특히나 이중화 처음 신는 신선생은 로보캅 걷는것 같이 불편해 보인다.

탐라 무인 대피소 직전 급경사를 올라가야 하는데 굉장히 미끄럽다. 신선생은 이곳 올라오다 힘 다 빠졌단다. 아무튼 올라와 잠시 쉰다.(14:50)
관리소에서는 용진각까지 러셀이 되어 있다는데 하산하는 사람들 말로는 삼각봉 까지만 러셀이 되어 있어 다들 거기까지만 다녀 온다고 한다.
누구 말이 맞는건지 모르겠다.
우리도 무사히 용진각까지 갈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아무튼 가는데 까지 가야 내일 산행이 쉬울것 같다.

요즘 요통으로 고생을 하는 황대장이 의외로 처지고 짐이 제일 가벼운 내가 어느새 선두고 그 뒤로 김선생, 류선생이 뒤따른다.
 
2시간 정도 올라가니 홍송이 가득하다. 너무 많이 있으니 나무 속에 같힌것 같이 속이 답답해 온다.
16:00. 홍송숲을 지나 넓은 공터가 나온다. 아마 이전 야영팀이 러셀을 하다 힘이 들어 도중에 야영을 한 곳인가보다. 우린 아직 해가 있으니 더 진행을 하기로 한다.

오르막을 올라가다 17:00 정도 뒤를 돌아보니 조망이 좋아지고 경치가 기가 막히다.
힘은 들지만 정말이지 참 좋다~~

 
17:00 오르막에서

 
17:30 삼각봉이 보이다

삼각봉이 보이고 야영을 할만한 평지가 보인다. 뒤로 노을이 환상이다.
헌데 바람이 너무 세서 도저히 야영을 못할것 같단다.
조금 더 진행을 하기로 한다.

 
삼각봉 앞 평지의 노을


 
17:50 김선생이 선두에 서다

삼각봉 지나니 길이 급경사에 푹푹 빠지는데 그나마 길이 윗길, 아래길 두갈래인데 둘 다 만만치가 않다. 류선생이 윗길로 가 보았는데 도중에 길이 끝나 버린다.
김선생이 아랫길로 급경사를 내려서는데 도중 자꾸 빠지고 나무에 걸려 진행이 쉽지는 않지만 아마튼 길이 있긴 있단다.
이미 해는 져 오고 후미는 안 보인다. 그만 이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한다.

염려했던 후미는 곧 쫓아와 합류를 했다. 나무 밑 좀 평평한 곳의 눈을 골라서 텐트칠 장소를 마련했다.

 
늦게 야영 준비를 하고 텐트 안에서 저녁을 준비하며...

텐트 안에서 가스등 켜고 눈 녹여 건조 비빔밥, 곱창 볶음을 해 먹는데 꿀맛이다.
여름 원정을 대비해 이런 저런 건조식품을 사서 이번 산행에 가지고 왔다고 한다. 비빔밥은 물론이고 잡채까지 있다.
류선생은 눈을 포 뜨듯이 눈삽으로 팍 떠서 코펠에 꽉꽉 눌러 담아 준다. 거의 예술의 경지다.

내일 산행을 위해 잠을 자야 하는데 텐트가 5인용인데도 매트를 4개를 까니 꽉 찬다.
류대장은 밖에서 비박을 한다고 텐트 옆 눈을 다진다.
황대장도 마음은 비박을 하고 싶지만 허리 때문에 비박을 하면 안되겠나보다.
우린 류대장에 밖에서 잔 덕분에 넷이 지그재그로 누워서 좁지 않게 잘 잘 수 있었다.
자기 전 하늘에는 상현달과 별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환 상 이 다....

1.11(수)

다들 깼는지 잤는지 몰라 자는체 하다 둥근해가 다 뜬 다음 7시가 훨씬 지나 일어나게 되었다.
밖에서 잔 류대장 하나도 춥지 않았다고 동계야영 기분이 나질 않는단다.
침낭이 얇은 난 천만 다행이고...

 
우리가 2박을 한 텐트 앞에서

부지런히 떡만두국을 끓이고 김치비빔밥도 해서 밥을 많이 먹는다. 그래야 오늘 러셀을 하는데 힘을 낼 수 있단다.
밥 먹고 눈 녹여 마실 물, 점심 라면 끓일 물까지 준비하니 시간이 벌써 10시가 넘었다.
우리가 출발도 하기 전에 두사람이 벌써 산을 넘어 오고 있다.
너무 늦장을 부렸나보다...

 
류대장이 특수 제작 한 동계용 화장실

자고 나서 보니 용진각으로 보이는 건물에 눈이 쌓여 지붕만 보인다.
우리가 그래도 거의 용진각 코 앞까지는 왔나보다.
올라온 두사람 중 한 사람은 제주 토박이로 길을 잘 알고 있다.
그 사람이 앞장 서고 부산에서 왔다는 일행이 부지런히 용진각까지 앞장을 서서 인자일렌을 한 우리들은 헤매지 않고 용진각까지 갈 수 있었다.
헌데 자일을 매고 진행을 하니 무지 불편하다. 그래서 용진각 앞에서 자일은 일단 풀었다.

 
용진각까지 앞장 서 가는 제주인과 부산인

 
11:10 용진각 대피소 앞에서 제주인과 부산인과 함께...

제주 사람은 백록담까지 러셀이 안 되 있어 이곳에서 하산을 한단다.
이 두사람도 우연히 오늘 만난거란다. 두사람은 이곳에서 라면을 끓이고 우린 제주인이 알려준 방향으로 러셀을 하면서 왕관능을 향해서 올라간다.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잘못 디디면 푹 빠진다. 나무근처를 잘못 밟으면 완전히 허방다리다.

 
네팔 부럽지 않았던 한라산의 설경

 
열씨미 러셀하는 우리팀

한 사람이 러셀을 하다 힘이 들면 다음 사람이 교대로 하는 식으로 러셀을 한다. 난 러셀도 처음이고 길도 잘 모르겠어서 거의 하지도 못했다.
아무튼 다들 오버복에 스패치를 착용해 젖을 염려는 없으니 다행이다.
눈이 쌓여 표지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보이는 표지기가 너무 반갑다.
하산한줄 안 부산인은 백록담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우리가 러셀한 길을 쫓아 올라오고 있다.

 
12:10 왕관봉에 오르다.

왕관봉에 오르고 오니 우리가 올라온 길이 등산로에서 좀 비껴난 자리다.
막상 올라서니 평지에 빨간 깃발 꽂혀 있어 골프장 처럼 보인다.
부산인도 지금부터는 우리 팀과 교대로 러셀을 한다.
혼자 배를 타고 와 산행을 하고 백록담까지 가면 성판악으로 하산을 하고 싶단다.
나름대로 독도법, 암벽등반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튼 러셀을 함께 해 주어 힘이 많이 되었다.

신선생은 신발 때문에 발이 아파 백록담이고 뭐고 가고 싶지도 않은것 같다. 헌데 다들 못 들은체 하지 억지로 쫓아 오나보다.
오랫만에 이런 뻑센 산행을 한다는 김선생은 러셀을 어찌나 잘 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동안 백두대간에 한번도 함께 못한 미안함을 이번 산행에서 좀 씻고 싶었다는 김선생. 어찌나 러셀을 잘 하는지 러셀의 지존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백록담 가는 길을 돌아가니 그곳은 성판악 하산코스라고 한다.
겨우겨우 빠져 가면서 백록담에 섰다.
정말이지 못 올라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백록담을 내려다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13:50 백록담에 선 두 산 사나이

 
백록담 단체 사진

백록담까지 길이 난 줄 어찌 알고 몇명이 올라오고 있다. 정말이지 소식 한번 빠르다.
둘, 셋씩 우리가 고생해서 낸 길로 올라오고 있다. 어느덧 10여 명이 올라왔나보다.
두명은 용진각으로 하산 한다고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성판악으로 하산을 한단다.
부산인도 성판악으로 하산을 한다고 우리와 작별을 했다.

 
평소 물이 마른 백록담에도 눈이 쌓여 있고 건너편에는 구름이 가득하다

우린 정상 좀 아래에서 라면을 끓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14:50 하산 시작.
올라올 때 두시간 걸린 길이 내리막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경사 급한 곳은 내려가기 더 빠르다.

 
15:20 골프장 처럼 보인다.

용진각 대피소에 도로 내려왔다.
커피를 끓여 마시고 눈에 막힌 간이 화장실 눈을 치워주는 착한 선생님들.

 
16:30 하산 완료

오늘은 하산이 너무 일러 저녁이 너무 길단다. 뭐하고 노냐고 걱정이다.
사 온 삽겹살을 구워서 먹었다.
이것 저것 너무 많이 먹어 다들 배가 부르다고 아우성이다.
오늘 바람은 어제보다 많이 불어 추울것 같아 비박 하는 류선생이 걱정이란다.

 
눈 케잌 앞에서

너무 일찍 자지 않으려고 해도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잠을 잤다.
자다 불편해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2박의 밤이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