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6년

동계야영을 한라산에서 하다 2(1.10~12)

산무수리 2006. 1. 16. 00:22

'새가 먹고 벌레가 먹고 사람이 먹고' - 하종오(1954~ )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새가 날아와 씨째로 낱낱 쪼아먹지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벌레가 기어와 잎째로 슬슬 갉아 먹지

요렇게 씨 많이 뿌리면 누가 다 거둔대요?

나머지 네 먹을 만큼만 남는다


이런 농사는 수지가 맞지 않는 농사다. 이런 농사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농사다. 그러나 이것이 앞으로 유일하게 새로운 농사법이다. 다 남에게 주면 나는 뭘 먹느냐고 불평하지 말자. 우리는 그동안 과식을 해오지 않았는가. 당신의 살찐 몸을 보아라. 살찐 몸이 당신이 바라는 궁극의 현실은 아닐 터. 이제 새와 벌레를 당신 앞에 앞세워 공양하라. 나는 이 값진 당부를 나에게 먼저 하려 하오니, 이것만은 내가 독식하더라도 허물을 삼지는 마시라.  문태준<시인>

 

 
아침 일찍 구름이 잔뜩 낀 백록담

1월 12일(목)

밤새 텐트로 물이 떨어진다.
비가 내리는 줄 알고 몇번이나 뛰쳐 나갔다는 김선생.
잘때 바람이 불어 추울 줄 알았는데 날이 풀려 나무에 내린 눈이 녹아 비가 되어 떨어진거다.
텐트 바로 옆에서 잔 류선생은 거의 물침대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방수 침낭 카바가 없었다면 그야말로 물 속에서 잘 뻔 하였다.

어제 백록담에 못 올라갔다면 오늘 새벽 백록담을 다시 한번 도전해야 했단다.
오늘은 철수 하면 된다. 날도 흐린것 같다.
부지런히 아침을 해 먹고 짐을 싸고 텐트도 걷고 마지막으로 류선생이 우리가 잔 흔적을 지우고 뒷 마무리를 하고 제일 마지막으로 출발한 시간이 10:00.

 
비가 올것 같더니 개이면서 보여주는 백록담쪽

 
출발 준비 완료

신선생이 하도 발이 아프다고 해 오늘은 나와 신발을 바꿔 신고 하산하기로 한다.
이중화 처음 신는 난 그야말로 로보캅 같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넘어질것 같다.
5끼니를 해 먹었는데도 다들 짐이 별로 줄어든것 같지 않단다.
작은 내 배낭도 역시나 무겁다. 그래도 처음엔 혼자 배낭 지지도 못했는데 요령이 생겨 무릎에 1차로 올려놓고 2차로 팔 하나를 거니 혼자서도 배낭을 질 수 있네?

어제 제주인이 내려가면 제대로 된 하산로를 뚫어 놓고 가 우리도 오늘은 중간길로 하산을 하기로 한다. 헌데 눈이 녹아 퍽퍽 빠지는 곳이 많아지고 전반적으로 길이 주저 앉아가고 있다.

 
난 겁나서 선두도 못서고 김선생이 앞서 길을 내 주고 있다

신발이 불편해 오르막 올라갈 때는 더 힘이 든다. 이중화를 신고 오르막에서는 앞꿈치를 차면서 올라가고 내리막에서는 뒤꿈치를 찍으며 내려오면 미끄러지는걸 방지할 수 있다는데 마음과는 달리 잘 되질 않는다.
양말을 두개 신었더니 발에서는 땀이 찬다.

 
신발 바꿔 신으니 날아갈것 같다는 신선생

오르막이 급한 곳에서는 아예 무릎을 꿇고 눈을 무너뜨려 가며 스틱 도움을 받고 버벅대며 간다. 누가 밀어주거나 당겨주면 참 좋겠다 싶다.
간간히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개미목에 누운 황대장

그제 후미로 올라오느라 사진을 못 찍은 신선생과 황대장에게 서라고 하니 허리 아픈 황대장은 눈에 벌렁 누워 버린다.
배 째라고?   ㅎㅎㅎ

 
삼각봉 앞에서

올라올 때 그렇게 힘들게 올라온 길이 하산길에서는 빨리 지나간다. 신선생은 우리가 이렇게 많이 올라왔냐고 새삼스럽게 놀란다.
이중화가 익숙치 않은 난 제일 후미에서 나름대로 빨리 간다고 가는데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11:10 잠시 쉬면서

숲이 우거진 곳은 역시나 비가 내린다.
선두로 내 달리는 신선생. 신력인가, 실력인가?

 
11:50 탐라 대피소 앞

탐라 대피소 앞에서 간식을 먹고 내려가는데 이곳에서 내려가는 한 구간이 완전히 급경사다.
딴 사람들은 매어 놓은 밧줄을 잡고 내려가는데 난 왼쪽의 급경사 하산길로 가다 미끄러져 그야말로 눈썰매를 타니 순식간에 내려가 버렸다.
이런 날 본 김선생도 눈썰매 폼으로 내려오다 스톱한다고 뒤집다 더워 걷은 팔뚝이 좀 까졌다.

 
눈썰매 타고 내려온 길

올라올때 미끄럽다고 버벅대던 길이 어딘줄 모르겠다. 급경사로 보이던 길이 하산길에 보니 완만하네? 그리고 길도 무지 지루하네?
지겹다고 신선생, 김선생은 달려 내려가 버렸다.
난 나름대로 땀 흘리며 내려가니 신발 깔창이 밀려버리네?
이 신발은 참 골고루도 한다.

 
계곡의 자취

내려오는 길에 동계 훈련을 온 군인도 몇명 만났다.
아무튼 무사히 하산 완료시간이 12:50.
관리사무소에 신고 하고 맡겨 놓은 짐 찾고 라면을 끓여 점심으로 먹을까 했는데 신선생 등산학교 관계자가 오늘 숙박은 물론 저녁까지 예약을 해 놓았다고 연락이 왔다.
다들 대강 먹고 저녁에 잘 먹잔다.

 
오늘 산행을 마치며...

 
한라산의 모습

관음사 앞 매점에서 간단하게 맥주와 막걸리, 파전, 오뎅 등을 시켜 하산주를 마셨다.
그리고 렌트카를 다시 불러 우리 숙소인 연동 그린호텔로 이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