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꾸리던 손이
작은 짐이 되어 등 뒤로 얹혔다
가장 소중한 것이 자신임을
이제야 알았다는 듯, 끗발 조이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안았다
세상을 거머쥐려 나돌던 손가락이
제 등을 넘어 스스로를 껴안았다
젊어서는 시린 게 가슴뿐인 줄 알았지
등 뒤에 두 손을 얹자 기댈 곳 없던 등허리가
아기처럼 다소곳해진다, 토닥토닥
어깨 위로 억새꽃이 흩날리고 있다
구멍 숭숭 뚫린 뼈마디로도
아기를 잘 업을 수 있는 것은
허공 한 채 업고 다니는 저 뒷짐의
둥근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겠는가
밀쳐놓은 빈손 위에
무한 천공의 주춧돌이 가볍게 올라앉았다
뒷짐지고 걷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요즘 엄마들은 젖비린내나는 아기를 뒷등에 업지 않고 안거나 가슴에 품는다. 등은 빈 채로 있다. 그러나 예닐곱 살 때부터 동생을 업고 살았던 예전의 세대에겐 뒷짐지는 버릇이 은연중에 있다. 누나와 언니의 등에 업혀 졸다 깨다 하던 저녁이 있었다. 배 쪽으로 끌어안아 등 뒤로 둥글게 돌려 업던 어머니의 몸동작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문태준 시인>
3.1절 기념에 나름대로 뜻깊은 여행이 되었다.
호텔 복도의 거울에서...
늘 여행을 떠나면 막상 집에갈 날이 돌아오면 아쉬움이 남았는데 이번 여행은 안도감이 든다.
이젠 더 이상 고문관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호텔의 아침은 호텔 수준에 정비례한다.
오늘 이 호텔도 새 호텔은 아니지만 규모가 크다.
그래서인지 어제에 비하면 럭셔리한 아침이다.
특히나 면을 즉석에서 뽑아서 해 주는 국수가 맛이 좋다.
쌀, 밀국수 주문한 대로 해 준다.
우리팀 막내인 광덕이가 국수를 기다리며...
이 여행팀도 박 패밀리였다.
그리고 젊은언니네 부부도 박 패밀리.
부산여인 중 한 사람도 박패밀리....
오늘은 혹시나 날이 풀렸나 했지만 비는 오지 않지만 날이 역시나 쌀쌀하다.
우리가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라 개긴 개나본데...
아무튼 아침일찍 노신공원으로 갔다.
예전엔 홍구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투척했다고 배웠는데 이름이 노신공원으로 바뀐거라고 한다.
공원에 나와 운동하는 사람들
각종 악기 공연, 노래도 들을 수 있다
노신공원을 걸어들어가니 호수가 있고 또 하나의 문이 있고 매표소가 있다.
윤봉길 기념관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순전히 한국사람을 겨냥한 관광코스로 개발된 곳이다.
기념관 입구
기념관 내부
기념관 앞에서 무용 하시는 젊은언니와 함께
기념관 앞 나무에서 꽃이 한창이다.
대구남이 제안을 해 묵념을 하고 단체사진을 찍었는데 내 카메라도 찍었건만 가이드가 찍었다는데 안 찍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3.1절이다.
나름대로 의미있는 날 의미있는 코스를 보게 되었다.
우리 다음에 역시나 장가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줄줄이 기념관으로 들어선다.
그럼 그렇지 여기서는 뛰어봐야 벼룩이라니까...
노신 동상
도로 나와 노신 동상앞에 잠시 서 있다 남경로로 간다고 한다.
노신 동상 앞에서 우리팀들
남경로 가는 길에 멀리 보이는 동방명주탑. 상해의 명물이라고 한다.
남경로는 차가 다니지 못하는 길이라고 한다.
우리의 명동같은 분위기다.
오전이라 그런지 한갓지다.
남경로
남경로의 지하철 입구
관광용 전차?
거의의 예술인?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새천년 광장으로 월드컵 응원을 펼친 곳이란다. 바닥은 파란 부분은 밤에 조명이 들어온단다. 바로 옆에 노천 카페도 있었다.
이곳에서 30분 자유시간을 주고 다시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멀리 가지 않고 바로 앞 식품점에서 이런 저런 물건을 구경하고 사고 한다.
난 위안화가 없어 부산녀한테 혹시나 쓸 일이 있을까 싶어 100위안을 환전했다.
말린 건어물. 뭔지 돼지머리에 코끼리 얼굴까지 있네?
난 그 옆 쇼핑센터를 구경하다 중국 풍의 반코트를 하나 샀다.
여기도 겨울옷 세일 중이라 정가에서 30% 할인해 준다.
카드를 받는다고 해서 카드로 샀다. 삼만원이다.
남경로를 구경하고 이젠 상해임시정부를 보러 간단다.
골목길의 또 골목입구에 차 댈 곳도 제대로 없는 곳에 내리니 우선 짧은 영화 한편을 보여준다.
물론 상해임시정부에 관련된 영화다.
그리고 2,3 층을 구경하고 돌아 내려오는 코스인에 오늘이 3.1절이라고 헌화할 사람 헌화하라며 흰 카네이션을 많이 가져다 놓았다.
김구 선생님 인형 때문에 깜짝 놀랐다...
임시정부 청사 밖의 풍경들...
우리 뒤로 계속 관광객들이 들어온다.
방 빼주는게 도와주는것 같다.
도로 나와 차를 타고 이젠 실크공장으로 이동을 한단다.
오늘 점심은 실크공장 2 층에 있단다.
실크공장에 가니 일단 패션쇼를 보여준다.
패션쇼라고 해 화려할거라 착각했다.
왜? 상해니까...
헌데 공장 자체 모델들이 옷 보여주는 정도이다.
그나마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배터리가 다 나가 버렸다.
별로 아깝지도 않지만...
패션쇼를 보고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과정을 보여주고 설명해 주는데 설명이 듣기 싫은것은 아마도 직업병이지 싶다.
그리고 본 게임으로 들어가 명주솜, 명주옷 등을 판매한다.
헌데 이곳은 안 깎아 주는것 같다.
부산녀는 명주솜을 사는것 같다. 이곳에면세점보다 비싸다던데 확실치도 않은데 말 하기도 뭐해서 그냥 입 다물고 있었다.
그동안 천자옥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사던 젊은 언니 드디어 이곳에서 실력발휘를 하셔서 당신것, 며느리것, 며느리 친정오마니것 까지 세벌을 사시네?
물론 계산은 젊은오빠가 해 주시고...
쇼핑을 다 하고 2층으로 가니 어마어마하게 큰 식당에 거의 한국사람으로 꽉 차 있다.
그나마 중국식으로 먹은데 중 이곳이 그나마 제일 고급인가보다.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막간을 이용해 옷 산 세 녀자의 패션쇼(?)까지 했다.
무수리, 젊은언니, 막내이모
막내이모는 젊은언니가 옷 산것 보고 쫓아가서 당신도 사 오셨다.
실크옷 한국에서는 수십만원 한다는데 이곳에서는 10만원 미만이다.
포동공항 가기 전 농산품 사겠다는 언니들이 많다.
역쉬나 관광객 상대로 각종 농산물을 파는 곳이 있다.
이곳에도 청심환, 파스 등이 있는데 가이드가 파는 가격이 싸긴 샀다.
다들 그 가격을 보고 만~족해 했다.
포동공항에 갔다.
포동공항 건물은 기둥이 없단다.
그리고 황포강도 바로 옆이고 앞으로 자기부상열차와 연계가 된다던가?
설명을 적어 놓고도 써 놓고 보면 암호가 되 버려 내 글씨를 내가 읽을 수가 없다.
포동공항.
가이드와 헤어져 짐 부치고 면세점을 구경하는데 부산녀왈 명주솜이 공항이 100위안이 더 싸다고 억울해 한다.
한국인 가이드가 있다면 반품을 할 수 있다면서 약올라 한다.
비행기를 탔다.
역시나 내 자리는 창가인데 오늘은 날개에 가려 경치를 못보는게 좀 아쉽다.
영종도에 도착.
역시 인천공항이 젤로 좋고 시설도 좋고 수속도 빨라서 좋다.
짐 찾고 인사하고 아시아나 마일리지 적립까지 하고 집에 가자~~
지금부터의 글은 한 동업자가 동업자끼리 똑같은 코스로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가기 전 참고하고 싶다하니 보내준 것이랍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즐감 하시길~~
여권신청을 하고나서 일주일 후에 발급 받는데 2월 3일 출발하기 위하여 성동구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부탁하여 5일 만에 여권을 발급받다.
2006. 02. 03(금)
7시 30분 인천 국제공항 도착.
9시 35분 중국 동방항공 비행기가 이륙직전 사소한 기체결함으로 1시간 10분 연착하다. 동서양 문화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실크로드의 기점이며, 당나라의 도읍지 장안으로 알려진 섬서성 서안에 도착하다. 신라의 고도 경주와 자매 결연을 맺었다고 하다. 모두 투어 여행사와 계약을 맺은 연변 출신 교포 3세의 마중을 받다. 중국의 과거를 보려면 서안을 가야하며, 현재를 보려면 북경을, 미래를 보려면 상해를 방문해야 한다고 하다. 안개와 연탄불 난방 연기(공업지대) 때문에 태양을 볼수 없다. 목이 콱 메일 정도로 공기가 탁하다. 창고 같은 사각형의 벽돌집이 줄지어 있다. 중국시간으로 2시 52분경에 문묘를 방문하다. 중국 역대 명필, 경전을 새긴 온갖 비석들이 모여 있는 비림 박물관을 방문하다. 강화 유리로 비석을 보호하다. 허가를 받은 사람만 탁본을 할 수 있다. 福(복) 자가 거꾸로 붙어 있는 것은 복이 콸콸 쏟아지라는 의미에서다.
당시에는 둘레에 7m 깊이의 물이 흘렀던 명의 성곽을 찾다. 좌우 끝이 안보이다. 땅을 파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동전들이 널려져 있어 값어치가 그만큼 떨어져 있다. 규모면에서 압도당하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물통이 클수록 공부를 잘한다고 하다. 기마상이 있는 원형 로타리- 실크로드의 출발지이다. 중국시간으로 8시경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개인당 25$을 주고 섬서성 가무 대극원에서 당 나라때의 음악과 무용을 감상하다. 뒷 부분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나타낸 뮤직컬인것 같다. 현란한 색깔의 옷과 신비스런 몸짓의 가무가 인상적이다. 발 맛사지를 받다. 맥을 잘 짚어서인지 몸 전체가 시원하다. 활기가 넘친 야시장에 가다. 기름에 튀기고 향신료를 듬뿍 발라서인지 비위가 약간 상하다. 연잎에 싸서 요리한 소고기는 제법 맛이 있다. 4500여 종의 술이 있는데 전국 평주회(評酒會)를 개최하여 금메달을 받은 술을 이른바 명주라 칭하며 중국 명주를 나타내는 붉은 색 띠나 붉은 색 리본은 두르고 있다. 8대 명주 중 대표적인 술은 白酒(증류주)5가지 黃酒(양조주)2가지 藥味酒 (혼성주)1가지가 있는데 가이드를 시켜 1병에 500위안인 오량액 4병을 구입하다. 한잔에 8000원이 넘는 오량액을 마시는 우리를 보고 주위 사람이 이상한 듯 쳐다보다. 마치 포장마차에서 로얄살루트를 먹는격으로 느낀가 보다. 독특한 맛과 향에 취하다. 술에 관한한 다들 한국지존이다.
02.04(토)
625년 당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짐 대안탑을 보다. 서유기에서 낯이 익은 인물이라 반가웁다. 당 현종이 양귀비와 즐거움을 나눴던 곳으로 유명한 화청지를 가다. 산세가 수려하고 온천수가 좋아 황제들이 별장으로 이용 했던 곳이다. 한국돈 2만원이면 온천 목욕을 할수 있는데 시간에 좇김이 아쉬울뿐이다.
최초의 중국 통일국가 진나라 시황제의 무덤 진시황릉-릉이 아니라 아예 큰 산이다. 불로장생을 위해 무수히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이기에 사후에서도 안식을 방해받지 않으려고 무덤에 갖가지 무서운 장치들을 만들었을거다. 프랑스 시라크가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명명했던 진시황 병마용 갱을 찾아가다. 입구에서는 공항 검색대처럼 금속물품을 검색하다. 군데 군데 군인들이 지키고 있다. 클린턴 대통령이 이 병마용 갱을 발견한 농부와 인사하는 사진이 있다. 노인은 점원이 병마용 갱 사진첩을 팔면 사인을 해주고 돈을 받고 있다. 아직도 발굴중인데 천천히 진행하는 이유는 엄청난 규모를 수용할만한 거대한 건물을 지을수 있는 기술이 아직 없다는 것과 안 보여 준것이 있어야 앞으로 더 많은 관광객이 와서 돈을 더 많이 벌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전 규모를 완전 발굴하는데에도 앞으로 수십년은 더 걸린다고 하다. 금 수십㎏로 치장한 동마차가 유리관 안에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한쪽에 병마용을 주제로 그린 수십개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군인들이 지키는걸 보니 그림도 국보급인가 보다. 줄지어 늘어선 기념품 가계. 5000원 하던 모조품이 1분마다 4000원, 3000원, 2000원으로 값이 내려가다.
20시 30분 보딩시간도 예정보다 늦어지다. 한 두시간 늦는 것은 보통이라 한다. 비행기 좌석이 안차면 만만디로 이어진다고 하다. 한국 돈이 통용이 되고 한국 관광객이 비행기를 꽉 메웠지만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장가계에 도착하다.
02.05(일)
다른 사람이 사용 못하도록 지문을 찍은 표 하나로 이틀을 사용하다. 9시 30분. 인공호수로서 해발 430m 에 위치한 보봉호수를 유람하다. 푸른 산중에 사뿐이 내려앉은 산정호수 중간에 고유 민속 복장을 한 토가족 처녀가 나와 환영의 노래를 부르다. 벽수청산이 이곳에 있다니 놀라웁기만 하다. 이태백이 뱃놀이 하던 기분으로 비경에 취해가다. 사각형 모양으로 맴돌아 내려져 있는 계단- 아찔함을 느끼다. 토가족 처녀들은 보통 학교를 다니지 아니하고 18세에 시집을 간다고 한다. 처녀 총각이 모여서 노래로 사랑을 고백하는데 노래로 화답을 하지 않으면 그녀와 살아야 한다고 하다. 파혼을 할 겨우 황소 한 마리를 처갓집에 주어야 하며 3년은 나무꾼, 3년은 사냥꾼, 3년은 여자의 발을 닦아주는 머슴으로 살아야 한다니 가히 여성 상위 지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이 태어나면 호적에 올리지 아니하고 둘째가 아들일 경우 호적에 올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여자가 대접받는 지역이다. 중국남자들은 아침 식사는 약 80%는 간단하게 사먹고 점심식사는 직장에서 해결하고 저녁식사는 직접 준비해야한다. 물이 나빠 튀김요리가 많고, 무거운 조리기구 때문에 남자가 요리를 하며 설거지까지 마무리를 해야 한다. 여자는 마작을 즐길 때 남자는 과일 대접을 해야 하고, 심지어는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도 집안 일을 끝낸 다음 안사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하다.
오후 2시경 토가족의 성산인 천자산에 케이불카로 오르다. 밑으로 수천길 내려 깎은 낭떨어지기에 점점 오금이 저려옴을 느끼다. 무릉원의 대표적 봉우리인 어필봉은 보여줄듯 하더니만 부끄러운듯 끝내 자태를 감추다. 잔잔한 비속에 안개가 흐르고 은단장을 소복히 한 아련한 수채화다. 모택동과 중국 대장정을 같이 한 중국 10대 원수인 하룡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으로 중국 근대중 가장 큰 동상이 있는 하룡공원을 관광하고 버스로 원가계로 이동하다. 대자연의 신비가 흐르고 사람의 혼을 빼앗는다는 미혼대, 기적중의 기적으로 불리는 높이 300m 의 커다란 두 개의 바위를 이어놓은 길이 20m인 천하 제일교. 산봉을 교두보 삼아 긴 다리를 놓았다. 수천 길 도끼로 찍어내린 천연 석림들로 바다를 이루다. 인간 세상에 이런 절경이 존재 하였던가. 믿을수가 없다. 그저 감탄스러움에 입을 못 다물다.
나무 가지에 맺힌 이슬은 얼음꽃으로 피다. 발 아래에는 운무가 지나가고 바위 숲은 희미한 실루엣으로 변해가다. 순수 그 자체의 원시상태다. 얕은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만 어느새 하이얀 운무가 솟아 오르고 매우 변화 무쌍한 날씨다. 200여일 넘게 비가내리고 50여일 동안 운무가 감싸고 나머지만 날이 맑다고 하다. 3, 4월에야 비로소 전체 정경을 감상할 수 있다니 정년퇴임 하고소야 이룰수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날씨기 맑았으면 웅장한 전체 모습에 몇시간이고 취해 있을텐데 못내 아쉬움만 남기다. 형제가 당국의 허가를 받아 프랑스 기술로 설치한 백룡 엘리베이터로 하산하다. 유리창 밖으로 펼쳐진 예리한 칼로 벤듯한 거대한 수많은 바위산. 신선이 노는 곳이 예가 아닌가. 절세의 경치에 감탄을 금치 못하다. 원시 그대로의 걸작품이다. 하루에 수천명이 이용하니 엄창난 돈을 벌 것이리라.
한신이 유방한테 토사구팽 당하기 전 남긴 유언을 보고 장씨 성을 가진 자가 도망을 가다가 이곳 경치에 취해 눌러 앉은 곳이라 한다.
저녁식사. 목포대학교 화학과 이상좌 교수가 죽엽청주를 사다. 향기롭고 풍미가 뛰어난 술로 한 입 먹으니 탁 쏘는 맛이 단 맛으로 퍼진다. 갈비뼈가 부러져 중국에 못올 상황인데 아내한테 미안함 때문에 여행을 강행했다고 하다. 부부금슬이 무척 좋아 보이다. 아들은 민사고 7기로 졸업하고 지금은 M.I.T 물리학과에 유학갔다고 하다. 부럽기만 하다. 일정에 발맛사지가 포함이 되어 팁만 주고 연 이틀 발맛사지를 받다. 수출용이라고 쓰여진 참이슬과 가정용이라고 쓰여진 참이슬을 사다. 가정용은 밀수한 술인것 같다.
02.06(월)
모노레일을 타고 십리화랑을 감상하다. 수백가지 기이한 형태의 바위산이 이룬 십리길 수묵화다. 11.6리에 달하는 기이한 봉우리와 암석이 각양각색의 형상을 이루다. 경치가 너무 좋아 되돌아 올때 걸어서 산책하다.
금편계곡 계곡에는 금편계가 조란조란 흘러 양 켠은 멋진 바위들이 병풍처럼 아득히 펼쳐저 있어 2시간 산책하면서 진짜 산수화속을 거니는 신선이 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황용동굴 지각운동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용암동굴로 상하 4층으로 되어있고 아래2층에는 4개의 시내가 흘러 내리다.
윗니가 두 개 밖에 없고 허리가 구부정한 칠십이 된듯한 할머니가 과일을 강매하다. 안사겠다던 아주머니를 쫓아가더니만 힘에 부쳐 스스로 넘어지다. 저렇게 살아야 하는 삶이 애처롭다. 끝끝내 쫓아가 애걸을 하여 결국 아주머니는 귤을 사야만하다. 김동헌 선생님은 네 다섯 살 꼬마가 귤을 사달라고 옷을 쮜어짜며 매달리는 바람에 두 번씩이나 사다.
러시아 비행사가 경비행기로 산 윗부분 뚫린 구멍 사이로 비행해서 더욱 유명해진 무릉의 혼 천문산을 지나다.
이틀간 비디오를 찍으려고 쫓아 다닌 어여뿐 아가씨 한테 언제 찍혔는지 모르는 사진을 마음약한 나는 얼떨결에 5장을 한 장에 2000원씩 주고 사다. 미인 앞에 약한 존재가 남성이던가. 후회막급이다. 매년 삼사십만의 한국 관광객이 이곳의 경제를 살린다고 하다.
장가계 공항 지하식당. 만만디에 느긋하게 나가도 된다는 생각에 밤 9시 30분까지 술을 마시고 계산을 하는 순간, 우리 때문에 퇴근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매니저인 듯한 아가씨가 화를 내며 턱없이 돈을 더 요구하다. 텁수룩한 노선생이 팁을 요구하냐고 험악하게 따지니, 고분고분해지다. 밤 10시 상해로 출발하다. 당연히 늦으리라 생각했는데 정시에 이륙하니 어리둥절 할뿐이다.
오전 1시 30분경 잠이 안와 술을 사려고 호텔 뒤 상점에 가다. 우즈베키스탄인 듯한 대 여섯명의 사람이 우리를 응시하다. 청도 맥주가 없는지라 신강 맥주 5병(35위안)과 조미료와 향신료가 전혀 없이 요리한 양고기 꼬치 5개(10위안)을 사다. 오히려 우리 입맛에 맞다.
20.07
홍구공원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 정치가였던 노신선생의 묘가 있어 현재는 노신 공원으로 불리다.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의거 현장에서 묵념을 하다.
수십명씩 대열을 지어 음악에 몸을 맡껴 아주 천천히 움직이다. 몇몇의 사람은 고유악기로 민속음악을 연주하다. 가느다란 대나무 필봉에 물을 묻혀 밑 부분부터 거꾸로 한자를 도로에 쓰다. 때로는 거울에 비춘듯이 좌우 반대로 한자성어를 일필휘지로 날리우다. 기이롭기만 하다.
독립운동의 기반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던 상새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하다.
프랑tm, 영국, 일본 등 열강의 조계를 받아왔던 항구 도시 상해. 고풍스러운 유럽풍의 건물이 들어서 있는 이국적인 외탄, 황포강을 오가는 선박들이 활기가 차다.
아무리 정교한 물건이라도 중국에서는 일주일내에 똑같은 짝퉁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관광객이 지도를 보고 어느 지점을 찾아 갔더니만 아무리 헤매도 발견할수 없었다고 하다. 그 지도 역시 짝퉁이었으니까.
한국에서 산 짝퉁 가방을 미국 어느 공항에서 찾으니 끈 부분이 약간 손상 되었다 한다. AS를 받으려 하니까 아예 진품 새 가방을 내 주었다 한다. 한국 짝퉁은 그만큼 정교하게 제작된 모양이다.
가이드가 안내한 비단옷 가계. 패션쇼 중 옆으로 갈라진 치마 사이로 드런난 모델의 늘씬한 다리가 매끄럽다. 여름에는 비가 오며, 겨울에는 옷을 두껍게 입고 난방비를 아끼는 바람에 방안에는 일년내 습기가 많다고 하다. 밖에다 빨래감을 널어 놓기 때문에 옆집 아줌마의 입고 있는 팬티 색깔을 알수 있다는 빨래문화가 이채롭다.
비싸더라도 가이드 팁까지 포함한 노팁 여행상품이 히트를 친다고 하다. 쓸데 없이 상점에 안들르고, 다른 장소를 관광할 수 있으며 더 좋은 음식점에서 대접 받을수 있다고 하다.
상해 면세점. 미안한 마음에 남은 위안화로 주름 제거제를 사다. 조그마한 선물이라도 샀으니 마음 뿌듯하기만 하다. 마니 마니 사랑해.
白酒 백주의 대표적 인 술로는 마오타이 (貴州)로 1915년 파나마 만국 박람회에서 3대명주로 평가 받은 후세계 도처의 애주가들의 사람을 받고 있는 술로 중국인들은 나라의 술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중국인의 혼을 승화시켜 빚어 낸 술이라 서슴지 않는다. 원료인 고량을 누룩으로 발효시켜 10개월 동안 9회나 증류 시킨 후 독에 넣어 밀봉하고 최저 3년을 숙성시킨 독특한 술이며 모택동의 중국혁명을 승리로 이끈 정부공식만찬에 반드시 나오는 술로 닉슨 대통령이 중국에 방문하여 대접받고 one샷에 들이켜 감탄함으로 유명한 술이다.
黃酒의 대표적인 술로는 소흥주(紹興酒), 노주(老酒)등 이 있는데 노주 중 여알주(女兒酒)라 는 것이 있는데 이 술은 중국의 예부터 여자가 귀하여 여자를 낳으면 술을 담아서 대들보 밑에 묻어놓았다. 여자가 성장하여 결혼 혼례를 치르게 되면 술을 파내어 잔치를 했다 한다. 그러나 크는 도중에 죽으면 영원히 잊어버려 패가 한 후 집을 고치가 위해 땅을 파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술이라 한다. 그래서 몇 십 년~몇 백년이 된 술이라 하여 老酒(노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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