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외.../마라톤

나름대로 의미가 있던 춘천마라톤 참가기 (2006.10.29)

산무수리 2006. 10. 30. 21:52
'나비의 문장'- 안도현(1961~ )

오전 10시 25분쯤 찾아오는 배추흰나비가 있다

마당가에 마주선 석류나무와 화살나무 사이를 수차례 통과하며

간절하게 무슨 문장을 쓰는 것 같다

필시 말로는 안 되고 글로 적어야 하는 서러운 곡절이 있을 것 같다

배추흰나비는 한 30분쯤 머물다가 울타리 너머 사라진다

배추흰나비가 날아다니던 허공을 끓어지지 않도록 감아보니

투명한 실이 한 타래나 나왔다

투명한 실 한 타래 얻어다 다시 풀어보면 새 문장들 나올 것이다. 간절하고 서러운 사연이 나올 것이다. 배경에 울타리도 나오고 석류나무.화살나무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 사연은 분명 말로 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숨결과 온기, 참을성, 허기, 뭐 그런 것들로 되어 있을 것이다. 실 다 풀면 손 대신 빛이 나타나지 않을까?  <장석남.시인>


토요일. 놀토인데도 일요일 대회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니 허리가 너무 아프다. 허리 아프면 뛸때 쥐약인데 좀 염려가 된다.
자꾸 꺼지는 휴대폰 수리차 아침에 나가서 고쳤다. 슬라이스도 너무 뻑뻑하단다. 위, 아래 연결하는 필름을 갈아주더니 괜찮을 거라고....(헌데 일요일에서 몇번이나 저절로 꺼졌다. 아무래도 공장 들어가야 할것 같다)
집 앞에 남이 버린 선반을 주어다 닦아 밥통, 요구트르 제조기 등을 올려놓으니 안성맞춤이다.
저녁에는 목간 차원에서 락시에 들렸다 낼 먹을 찰떡과 빵 등을 사 가지고 귀가.
일찍 자야 했는데 게으름 피우다 집안일 하다보니 12시가 다 되었다. 내일 먹을 찰밥을 해서 밥통 안에 넣어 놓았다.
12시다. 빨리 자자...

일요일. 5시 기상. 혹시나 싶어 휴대폰 두개 알람 맞춰놓았다.
찰밥을 조금씩 먹고 한 도시락 싸고 반찬 몇개, 물, 꿀차 등을 싸 가지고 6시 출발.
안개가 끼어 길이 뿌연데 춘천쪽 관광버스가 많이 가는데 중간 중간 내린 모습은 다 운동복 차림이다.
헌데 아들 먹는 홍삼을 한개씩 도움이 될까 싶어 먹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속이 좀 그렇다.
재작년 춘마에 참석할때 봐 두었다는 강촌의 화장실을 들렸다 춘천에 도착하니 7:30. 일찍 도착 해 그나마 한바퀴만 돌고 이마트 뒷쪽 일방통행로 한쪽에 차를 댈 수 있었다.
이날 하루만 노상주차를 허용한단다. 우리 앞차도 마라톤 참석 차량이다. 차 안에서 먹고, 옷 갈아입고 스트레칭 하고 난리가 났다.
싸 가지고 온 밥이 막상 안 먹힌다. 떡만 하나씩 먹고 꿀차 한잔 마시고 짐을 들고 운동장으로 향한다. 은계 언니도 이제 도착했고 산이슬은 도착 아직 못 했단다.

 
사람이 이렇게 많을줄은 정말 몰랐다.

행사장에 가니 여기저기 간이 화장실 버스가 즐비하다. 파워젤을 사서 출발 전 한개 먹고 하나는 뛰다 힘들때 먹으려고 속주머니에 넣었다. 약국에 가서 파워젤을 달라고 하니 콘돔을 내민다. ㅍㅎㅎㅎ
겨우 겨우 주님부부를 만나서 사진 한장 찍었다. 비타민 C 드링크를 주셔서 마셨다. 대회 전 비타민 먹는게 좋다고 한다.
은계소녀는 머리를 짧게 잘라 처음에 못 알아봤다.
짱해피 운동장에 와 있는데 이렇게 사람 많은거 처음 본다면서 어디서 찾느냔다. 늦게 도착한 산이슬을 여자 물품 보관소 앞에서 먼저 만났다. 짱해피도 겨우겨우 우릴 찾아 왔다.

 
주님 부부와

 
조블 달리기 멤버인 산이슬, 은계, 무수리, 그리고 응원차 온 짱해피

이 사진 찍느라 짐도 못 맡겼다. 한시간 찾아 헤매다 겨우 온 짱해피. 근무날인데 오전 근무 바꿔서 잠시 짬을 내서 왔단다. 고마워라....
출발시간이 빠른 산이슬 먼저 들어가고 나머지 세 여인은 같이 운동장에 들어가 짱 디카로 사진 몇장 찍고 짱은 30분 정도 여유 있다고 구경하고 간다고 스탠드로 올라가고 우린 경기장 안으로...
둘다 뒷그룹이라 한참 뒤로 돌아가야 한다. 달리는 의사회 이동윤 선생님을 은계님이 소개시켜 주신다. 영광이다.
작년에 이어 주꾸미를 머리에 쓰고 나온 분과 인사하는 은계님. 헌데 올해는 항아리를 안 메고 계신다. 힘들어 오늘은 항아리 빼놓고 오셨다는데 C그룹이다.
다른 대회는 잘 모르겠는데 춘마는 완죤히 배번 순서가 기록 순이다. 
배번 순서대로 A부터 출발을 시킨다. 그래야 잘 뛰는 사람들이 기록 늦은 사람들에 치여서 뛰지 못하는걸 방지하는 거다.
내가 H이고 바로 뒤가 가평킹카님, 그 다음이 은계님.....

개회식도 아주 간단하게 하고 시작도 잘못 쏘아진 폭죽 소리와 함께 출발. 바로바로 한 그룹씩 출발을 시키니 H인 내가 출발한 시간이 10:15.
4:20 패메는 쫓아갈 수가 없고 40분 패메는 좀 아쉽고 30분 패메는 아예 업고....
애로 사항이다.
아무튼 4:30 기록표를 손목에 달고 될수 있는대로 그 시간대에 가려고 노력을 해 본다.
헌데 다른 사람들은 무쟈게 연습 많이 했나보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추월해 가는데 쫓아갈 수도 없고 초반에 빨리뛰면 후반에 헤맨 경험이 있는지라 내 페이스대로 가려고 하는데 오늘도 역시나 발이 너무 무겁다. 이래 가지고 끝까지 뛸까 염려가 된다.

시내를 지나자마자 배번 7번이 걸어서 돌아오고 있다. 외국인 초청 선수인것 같은데 초장에 페이스에 실패해 아예 기권을 하는것 같다.
의암호를 향해서 가는 길이 나오니 호수가 나타다고 경관이 좋아진다. 뛰다 사진찍는 여유를 부리는 사람도 보인다. 굴다리에서 남들처럼 소리도 질러보고 본격적으로 보이는 의암호와 이미 댐을 지나 뛰는 사람들의 물결은 정말이지 너무 멋진 모습이다.
나도 댐을 지나 뒤돌아보니 내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서 오고 있다.
오늘 나의 목표는 걷지 않고 뛰고, 대회 중 화장실 안 가기. 거기에 기록 단축까지 된다면 그건 완죤히 보너스겠지...

삼악산에서 내려다 본 춘마 대회 경치가 너무 좋아서 큰 기대를 하고 뛴 대회인데 경치 좋은 곳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한적한 도로를 뛰는 길이 많이 지루했다. 곳곳에 나타나는 언덕은 평지길보다는 지루함은 덜하지만 은근히 더운 날씨에 지치게 하는것 같다.
가평킹카님 고향이라는 박사마을도 지났다.
아무튼 춘천지리에 밝지 못한지라 어디가 어딘지, 어디까지 뛰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계속 뒷 그룹 4:20 패메들이 지나가는데 30분 진입을 하려면 저팀 출발시간을 감안하면 따라 붙어야 하는데 붙을 수가 없다. 그나마 40분 패메를 만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겠다.
한떼가 앞서서 추월해 갈때마다 기운이 빠진다. 헌데 한 여자가 지나가면서 날보고 하프 지점부터 계속 몸이 왼쪽으로 기울어 졌는데 점점 심해 진단다.
그런가? 힘이 드니 몸도 똑바로 못 가누나?

이번 춘마의 특징은 코스프레 분장을 하거니 요란하게 옷 입고 뛰는 사람이 거의 안 보인다. 중앙과 한주 차라 작년에 비해 선수도 줄어 2만 6백명 정도 된단다. 아무튼 다른 메이저 대회에 비해 진행이 차분하다. 마라톤 동호회 응원도 다른 대회에 비해 적고 춘천 시민의 응원도 소문과는 달리 조용하다.
하프지점 지나니 비로소 간식이 나온다. 초코파이, 바나나, 방울토마토 순서인데 아예 퍼질러 앉아서 먹는 사람들도 꽤 보이고 길가에 누워 있는 사람들, 앉아 있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초장에 내 달리던 기세는 아닌것 같다.
곳곳에서 어찌나 스프레이 파스, 멘소레담을 쳐 바르는지 지나만 가도 눈이 따갑다. 그나마 다리에 쥐나지 않고 천천히라도 걷지않고 뛰는걸 다행으로 여겨야 겠다.

이번이 내 딴에는 연습을 그중 많이 했는데도 후반에 들어서니 영 힘이 든다. 한달 200K 이상은 뛰어 주어야 풀도 부담이 적게 달릴 수 있을것 같다.
연습을 많이 한다고 기록이 단축되지는 않지만 달리고 나서의 후유증이 훨씬 적고 회복도 빠른것 같다.
춘천댐 지나기 전에도 터널 같은 곳을 지나가는데 힘든지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이미 지쳐 버려서 일것 같다.
후반부의 현수막이 생각난다. '서지말고 뛰자~~'

상체 건장하고 하체에는 정맥류까지 있는 외국인이 힘겹게 내 앞을 달리고 있다. 나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달리던 키 작은 여자도-내가 봐도 신체조건이 절대적으로 불리해 보였다-신발 소리가 나보다 더 크더니 결국 처지는것 같다.
처음 뛸때 부터 보이던 여자는 중간에 계속 만났는데 막판 남들 다 지친 사이를 요리저리 빠져 나가면서 후반 스팟을 해 대는데 부러울 따름이다.
올 봄 동아에서는 잠실에서도 걷던게 생각난다. 이번엔 아무리 힘이 들어도 끝까지 걷지 않으리라 맘을 먹고 25K 이후 발바닥 물집 때문에 불편해도 천천히라도 뛰었다.
36K 지점의 한 주자가 걸어가기엔 너무 먼 거리란다. 맞다. 제한시간 5시간이 안 지났는데도 군데군데 교통 통제가 풀려 차 사이를 피해 달려야 했다.

40K 지나고 드디어 운동장이 보인다. 운동장 한바퀴 돌고 전광판을 보니 이미 46분도 지나가고 있다.  30분 내 골인은 물 건너갔다. 아무튼 마지막까지 뛰었다.
나 나름대로 후회하지 않는 경기로 기억될것 같다.

산이슬을 만났다. 광화문 달리기 팀원이 여자 3등인데 그렇게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도 -3에 실패했단다. 산이슬도 춘마 기록은 늘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한다.
남푠을 만났는데 초반 오바페이스 해서 기록이 뒤로 후퇴를 해서 나랑 시간 차가 -1이 나 버렸다.
남푠도 마라톤 시작한 이래 쭉 기록을 단축 시켰는데 이번에 첨으로 기록이 뒤로 후퇴를 했다.
교육달 멤버인 차이사는 족저근막염이 완치되지 않아 천천히 완주를 했단다. 회수차 타고 오는것 보다는 뛰어 오는게 빠를것 같아 그나마 뛰었다고 한다.

 
산이슬, 차이사와 함께 완주 후

산이슬과 3:50 까지 놀다가 산이슬네는 4시에 차에서 모여 닭갈비 먹고 출발한단다.
가평킹카님께 전화를 했는데 안 받으신다. 너무 늦으면 차가 많이 막힌다고 집에 갈 일을 걱정하는 남푠. 나야 옆에서 잠만 자니 무작정 기다리기도 그렇다.

 
의료 패트롤 팀의 모습. 의상도 활동도 멋졌다.

산이슬과 헤어지고 우리도 이마트에서 차 안에서 먹을 생선초밥, 과일을 사 가지고 4;10 출발.
생각보다 춘천시내는 쉽게 빠져나오고 강촌에서부터 밀렸다.
은계님과 통화. 못 기다려 죄송하다고 했다. 지금 춘천 시내가 꽉 막혀 장난이 아니란다. 빨리 빠져나가길 잘 했다고 이해 해 주신다.


강촌에서

집에 도착하니 19:30.
목간통에 들려 냉탕에 들어 앉아 있으니 훨씬 낫다.
오른쪽 물집은 이미 대회중에 터져 신발까지 피가 묻었다. 발톱도 하나 또 빠질것 같다. 왼쪽은 물집이 하나만 잡혀 그나마 동아 대회때 보다는 훨씬 낫다.

다시는 춘천에 안 간다는 남푠.
헌데 내년에는 보살이 춘마에 함께 뛰잔다. 춘마에서 풀을 뜯어 보신단다.
연습 하지 않고 풀을 뛰는건 가능하긴 하지만 너무나 고통스럽고 그  후유증도 너무 클것 같다.
연습, 연습만이 살 길이란걸 다시한번 깨달았다.
Maraton is forever~~
그리고 주자불로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