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외.../2008년 일기장

예당에서 (6/30)

산무수리 2008. 7. 2. 22:43
‘등잔’ - 신달자(1943~ )

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였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불을 켜 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아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젊은 여자가 아름다운 것은 편견에 물들지 않은 까닭입니다. 많은 말들로 채워지지 않은 까닭입니다. 나이 많은 여자가 아름다운 것은 편견을 비운 경험이 들어 있는 까닭입니다. 말 속에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열정이 없는 젊음 뒤에는 체험이 없는 늙음이 따라간다지요. 어느 사진작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름이 많게 나온 여인에게 사진을 수정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사진의 주인은 자신의 주름을 빼거나 넣을 수 없는 세월 그 자체라고 말하며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이는 자신에게 걸맞은 얼굴을 주지요.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할 때가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 아시지요? 오래전에 사둔 백자 등잔 하나.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습니다. 불을 켜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황홀한 빛을 밝히는 게 아닙니까? 아직 여자인 몸에 불이 켜지는 게 아닙니까? 박주택<시인>

 
드보르작 현악4중주 Op.96
"America" Anton Dvorak (1841-1904)-초롱님댁에서 통째로 퍼옴.
 
 
 
 
 
 
 


 
[OLYMPUS IMAGING CORP.] SP320 (1/30)s iso200 F2.8

 

 

 

 

 

 

 

 

 

 

 

 

 

 





뒤늦게 음대 대학원 공부를 한다고 하더니 다행히 합격한 여재뭉.
모처럼 흑석동에서 만나기로 한 날.
헌데 마침 오늘이 슨상님 연주회인데 함께 가자 한다.
퇴근 하자마자 빈 김치통 싸 가지고 가니 여재뭉은 벌써 와 있는데 머리 망가진다고 눕지도 않더라는 오마니 말씀.
내가 보기엔 헤어스타일 별로인것 같은데?
나나 잘하라고? 하기사...

오이소배기 해 놓았다고 한통씩 담아 놓으신 오마니.
문제는 집에 쫀누나가 걸어놓고 간 배추 4통. 보기만 해도 한숨 난다.
쫀누나 역쉬 오마니 뵈러 갔다 얻어온건데 많으면 좀 나누어 먹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지만 설마 배추를 가져다 놓을 줄 몰랐다.
무서운 배추....
무거워 오마니께 들고 올 수도 없으니 천상 해 먹어야 하는데 고추가루가 없다.
고추가루 얻고 생강도 한조각 주신다. 당근도 넣으라고 넣어 주시고...

김치 해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는지라 이것저것 물어보니 오마니 걱정 많이 되시나보다.
에이 그래도 계론경력 25년이 다 되가는데 설마 그 정도도 모를라고...
그래놓고 올 가을 김장 채금진다고 하냐고 웃는 아버지.

저녁 먹고 여재뭉 차로 예당에 갔다.
일찍 가서 야외 의자에서 책도 보고 차도 마시고...
월욜이라 야외분수도 쉰단다.
여기저기 중년 녀자들의 수다. 멀미난다.
지나가는 사람들 옷구경도 재미있다.
설걷이 하다 뛰쳐 나온 사람들도 간간히 보이지만 다들 나름대로 한 패션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음악계 원로들도 간간히 보이는데 누가 누군지 음악계를 떠난지 오래인지라 기억조차 없다.

KCO String Quartet `현악4중주의 밤`

공연 8시 시작. 너무 늦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 올 수록 졸립니다.
두 곡은 처음 듣는 곡이고 그나마 맨 마지막 곡이 드보르작의 아메리카.
관객은 거의 다 녀자에 어린 자녀들이 특히나 많았다.

연주자도 여자가 많은데 오늘은 연주자 4사람이 다 남자라 연주가 박력이 있어 좋다는 여재뭉의 말.
헌데도 멘델스존의 첫곡은 졸았다. 집중이 잘 안된다. 이미 음악회 정서에서 비껴간지가 오래인지라...
두번째 곡은 한 악장이고 연주기법도 재미나 다행히 졸 새가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곡.
많이 듣던 곡인데도 눈 앞에서 연주하는걸 보니 시작은 비올라가 시작하고 첼로, 그 다음에 바이올린이 따라 나오네?
듣기만 할 때와 보고 들으니 느끼는 감각이 다르다.
유명한 곡은 역시나 아름다웠다. 마음이 찡했다. 특히나 2악장이 제일 아름다웠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데 여재뭉이 날 보고 숨소리가 거칠어 졌다면서 또 졸았냐고 한다.
아니, 감동되서.....
아마추어의 연주는 듣는 사람이 조마조마 한데 프로의 연주는 역시나 뭐가 달라도 달랐다.

모처럼 정신의 사치를 누린 저녁.
일욜 생일이었던 여재뭉.
선물을 선불로 준지라 까먹었다.
늦었지만 추카해~ 입학도 추카하고.....
열공하셔~
짐도 무거운지라 집 앞까지 택배 해 주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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