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야기

알프스 원정기 5 (등정을 포기하고..)

산무수리 2008. 8. 21. 23:26
암호’ - 이승훈(1942~ )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은 동해안에 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 바다-거기 하나의 암호처럼 서 있습니다. 아무도 가본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이 거기 닿을 때, 그 역은 총에 맞아 경련합니다. 경련 오오 존재. 커다란 하나의 돌이 파묻힐 때, 물들은 몸부림칩니다. 물들의 연소 속에서 당신도 당신의 몸부림을 봅니다. 존재는 끝끝내 몸부림 속에 있습니다. 아무도 가본 사람은 없습니다. 푸른 파편처럼, 바람부는 밤에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이 보입니다.

읽어도 가닥이 잡히지 않는 시. 이것이 현대성의 시. 이처럼 시가 어려워진 것은 시 그 자체의 변화를 포함해 사회문화 담론의 진화와 인간 주체의 분열 등과 같은 여러 사유 구조와 맞물려 있어서다. 함께 맞물려 있는 것이기에 시의 ‘미적 모더니티’는 중층적이고도 다성적(多聲的)인 모습을 띤다. ‘환상’은 ‘실재’와 경계를 이루는 것으로 이는 꿈, 신화, 무의식, 욕망, 상상력 등을 거느리며 실재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을 특수한 심리적 메커니즘에 의존하여 무엇인가에 도달하려는 ‘심리적 현실’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환상’은 존재의 신비를 포착하려는 전복적(顚覆的)인 노력으로 실재 너머에 마술적 살림을 차린다. 이 시는 이러한 기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시. 다시 한 번 반복하여 이 시를 읽어보자. <박주택·시인>


7.31 (목)

한밤중인데도 일찍 출발하는 팀은 벌써 준비하느라 부산하고 아침식사가 2:00 부터라 식당에서 찌그러져 자던 사람들도 1:30이면 기상을 해야 했다.
우선 2:00부터 예약한 사람부터 아침을 먹고 나서 우리들도 아침을 사 먹을 수 있었다.
헌데 아침이라봐야 바게뜨빵 2쪽, 치즈 한쪽, 커피가 전부였다. 애개...
이나마도 박교감은 속이 좋지 않은지 거의 손도 못댄다. 아마 이 팀원 중 고산에 처음 와 고소증세가 오는것 같다. 약산 멍한 상태로 보였다. 물도 두병 사서 빈 수통을 채웠다.

아침이 늦으니 출발도 당연히 늦었다.
구떼 산장 뒷쪽부터는 당장 만년설이 쌓여 있다. 12발 아이젠 하고 안자일렌하고 연등하면서 올라가야 한다.
서로 안에서 기다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무거운 장비 산장 선반에 올려놓고 출발하니 3:30이 다 되가나 보다. 괜히 맘이 바쁘다.

선두에 류샘이 서고 바로 다음이 나, 그 다음이 박교감, 그리고 황샘. 뒷 자일에는 오샘, 신샘, 후미에 홍샘이 나란히 나란히 올라간다.
컨디션 좋지 않은 박교감 힘들어 천천히 가자하고 거기다 황샘이 의외로 힘들어하며 못 올라와 줄이 자꾸 당겨지나 보다. 난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너무 힘들어 잠시 쉬면서...

깜깜한 눈밭에 렌턴 불빛이 꼬리지어 올라가는 모습은 아주 장관이었다. 문제는 우리팀이 자꾸 추월을 당해 류대장은 마음이 바쁜 눈치다.
날은 염려한 만큼 춥지는 않은데 눈발이 날리고 가스가 낀다. 우린 점점 속도가 느려져 가면서 힘겹게 올라가는데 하산하는 사람들이 벌써 보인다.
아니 벌써 정상 갔다 돌아오는 건가?
홍샘이 물어보니 날씨가 나빠 되돌아 오는거라고 한다. 우리도 백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백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 눈발도 그치지 않는다. 마음이 흔들린다. 홍샘이 백하자 하니 뒷 팀은 다 백하는 분위기다.

우리팀에서는 황샘이 자기때문에 처지니 자일 푸르고 천천히 혼자 따라간다고 했단다. 헌데 난 황샘도 하산한다는 줄 알았다.
여기서 포기하기엔 시간의 여유도 있고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발로대피소까지라도 가봐야 하는거 아닌가?
그래서 류샘, 나, 박교감 셋이라도 발로대피소까지 가 보고 날씨가 계속 좋지 않으면 하산하기로 했었다.
헌데 곧 박교감도 마음을 바꾸어 하산한단다. 그럼 둘이 올라가라고?
그건 아닌것 같다. 대세가 하산하는데 류샘은 몰라도 내가 뭐 그리 산행을 잘한다고 진행하는건 너무 내 욕심만 차리는것 같다.


백 하기로 하고..

결국 다같이 하산하기로 했다. 류샘은 계속 불만인것 같다. 허나 어쩌랴. 이미 대세가 그리로 기운걸.
이쪽 사람들은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하산을 하는건지, 아니면 안내산행 아닌 사람들만 하산을 하는건지 내막은 잘 모르겠다.
눈보라가 치는 날도 아니고 기온이 많이 떨어진 악천후는 분명히 아닌것 같은데...

문제는 우리팀이 원정간다고 돈만 모았지 그동안 팀산행을 한번도 하지 않은게 문제인것 같다.
산행 전 모임도 다들 바빠 몇번 만나지도 않았다. 의사소통에 서로 문제가 있는것 같단다.
황샘도 혼자 자일 매지않고 올라간다고 했다는데 가스가 낀 상황에서 등반대장이 그냥 혼자 오라고 할 수 없는게 대장의 입장이지 싶다.


곧 해도 뜰텐데 해도 뜨기 전에 하산을 하게 되었다...

결국 산행 3시간 만에 하산 결정. 3800m에서 시작해 4200정도 올라갔다 나머지 600을 못 올라가고 하산을 하게 되었다.
기분 정말 그지 같았다.
오늘 남는 시간은 다 뭘 하나? 다시 여길 오나 봐라...

 
마음은 참담해도 설산의 모습은 멋졌다~


내 기분도 이런데 등반대장은 얼마나 기분 개같았을까...



얼마 안 올라온것 같은데 내려가려니 또 한참이었다...

 
해가 뜨는지 좀 훤해져 그나마 사진도 찍고...

내려오는건 순식간이었다. 일단 구떼 산장에 있으려니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과 일시에 하산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더구나 내린 눈이 깔려있어 어제 올라올때 보다는 길도 미끄러운 상태.
현지인들은 거의 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둘, 셋 씩 안자일렌 하고 내려가고 있다. 자연 속도도 아주 느리다.

여기서 날씨 좋아지는걸 기다릴 준비도 되 있지 않아 더 밀리기 전에 하산하기로 했다.
8:00 부터 하산 시작.
눈이 약간 내리긴 했지만 우리나라 산에서 이 정도의 눈에 아이젠을 끼고 하진 않기에 우리들도 각자 확보줄을 설치물에 각자 확보를 하기로 하고 하산 시작.
자연 우리들의 속도가 이쪽 사람들보다 빨라져 추월하면서 하산.

 
날을 맑아져 언제 눈이 왔나 싶게 해 우리를 또 속상하게 하고...

어제 물이 줄줄 흘렀던 빙하도 오늘은 얼어 미끄러울것 같아 조심스러운데 현지인들은 위에 높게 매달린 확보줄에 자일을 걸고 가지만 우리들은 무대뽀로 그 길을 스틱에만 의지해 건너왔다. 정말 무식한 사람들이라고 했을것 같다.

 
떼떼 산장 가는길도 눈이 많아졌고...

박교감은 속이 좋지 않은지 화장실이 급한가 보다. 떼떼산장까지 뛰듯이 가고 나도 뒤따라 내려가 대장님을 찾아 보았으나 이미 하산하셨는지 보이지를 않는다.


부실한 아침도 못 먹고 기운없어 먼저 내려가라 하신다.


꿀꿀한 기분에 하산을 하면서...

박교감이 속도 좋지않고 어지럽다며 천천히 간다며 먼저 내려가라 하신다. 그런줄만 알고 먼저 내려왔다.


잘 내려오던 신샘도 지친것 같다...


이번 원정을 가장 많이 망설이다 온 오샘

황샘이 무인대피소 앞에서 쉬고 있다. 난 열차 보면 먼저 타고 내려간다고 했다. 이 시간 놓치면 또 점심시간이라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니 내려가 대장님 찾아 본다고...

 
꽃 사진도 찍어보고...

올라갈땐 못 느꼈는데 하산하는데 발바닥이 불나는것 같다. 바위와 잔돌이 많고 깔창이 앏아서 그런것 같다. 발가락에 물집 생길것 같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드디어 니데글 역사가 보이고...

 
빙하쪽에 가 보았으나 역시 대장님은 보이지 않고...

 
어디나 개판이고...

12:50 버스가 출발하려는지 사람들이 장사진이다. 뛰어서 겨우 탔다. 헌데 바로 내 뒤로 류샘과 오샘이 함께 그 기차를 탔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20분 정도 타고 내려와 하산.
그곳에 대장님이 계셨다.


홀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대장님

어찌 지내셨냐고 하니 떼떼에서는 다행히 자리가 있어 안에서 주무셨고 저녁에 오믈렛을 사먹었는데 쌀은 하나도 없더란다. 산악회 회원증이 있냐고 있으면 할인이 된다고 했단다. 그래서 고어자켓의 한산로고를 보여주며 이게 회원증이라고 하셨단다. ㅎㅎ
일본 사람과 옆에서 자게 되었는데 맥주를 사 주어 얻어 마셨고 영국 부자가 산행을 와 영국에도 산이 있다고 놀러오라 하셨단다.
이를 닦고 보니 물이 없더란다. 할 수 없이 생수를 한병 사셨는데 4유로였단다. 구떼는 5유로였다.

케이블카 한가할때 타고 내려가야 할것 같아 내려가 기다리가로 하고 넷이 먼저 하산.
목도 마르고 배고 고프고 해서 하산해 생맥주 한잔씩 마시며 기다리는데 영 오질 않는다.

 
후미를 기다리며...

점심시간 지나고 사람이 몰리면서 케이블카도 번호표 받고 타야 했단다. 더구나 박교감 상태가 아주 안 좋아져 아무데나 쉴 자리만 있으면 매트를 끌어앉고 누워 있었단다.
물을 마셔도 토해 물도 못 마시게 했더니 기운없어 완전히 탈진 상태였다고 한다.
하도 안 내려와 홍샘이 되집어 올라가 배낭을 대신 지고 내려왔다고 한다.
그런줄도 모르고 환자를 두고 내려왔다. 내가 너무 상태를 낙관한것 같다. 환자가 괜찮다고 해서 정말 기운만 없지 괜찮은줄 알았는데...
정말 미안했다.

후미조가 2:30 기차를 타고 내려와 케이블카도 밀려서 늦게 타 다 내려오고 장보고 샤모니 야영장에 되돌아가니 4시.
오늘 먹고싶은것 해 준다는 황샘.
오늘 메뉴는 김치와 호박전, 파전.


김치 담그는 황샘

야영하던 모녀가 주고 간 멸치젓이 있고 마늘, 고추가루는 가지고 온게 있어 마트에서 배추 한포기, 파, 호박, 당근, 오이 등을 사서 봉지에서 절이고 씻고 버므리고 순식간에 걷절이를 만드는 황샘. 정말 재주도 좋다.
호박전까지 하네? 거기다 계란말이까지?

우리들은 잘 먹어 좋은데 탈 난 박교감은 먹지도 못하고 완전히 뻗었다.
손가락 사혈해 주고 물 마시게 하고 한숨 자고 나더니 상태가 많이 호전 되었다.
본인은 밥 먹고 싶다지만 죽을 아주 묽게 쑤어 김하고만 드시라고 했다. 하도 김치가 먹고 싶다고 해 작은 쪼가리 두개만 드시라고 했더니 나중에 실토하기를 아무도 안 볼 때 3조각 더 먹었단다. ㅎㅎ
그나마 상태가 나아져서 천만 다행이었다. 이 상태에서 정상도전을 했다면 상태가 점점 나빠졌을테고 하마트면 헬기 뜰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하산하길 잘 한것 같다.
등정도 좋지만 사람이 우선 아닌가....

어제 아침 이후로 처음 제대로 된 밥을 먹으니 다들 살것 같았다.
일단 내일 하루는 푹 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