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안장을 누가 뽑아가 버렸다’ 부분 -박서현(1954∼ )
자전거를 샀다. 안장에 은빛으로 꽃무늬가 새겨진, ‘간지 나는’ 미니벨로다. 인터넷 벼룩시장에서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을 뺏겼다. 고르고 골라 한 달 전에 샀다며 청년은 자전거와 헤어지는 걸 아쉬워했다. 지하철역을 나와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려 했는데, 자전거를 탄 지 너무 오래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달달 끌고 걸어왔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자전거 안장을 누가 뽑아가’ 버리면 얼마나 황당할까. 그 상황과 닮은 삶이라니 얼마나 불안정할까. <황인숙·시인>
이 동네에서만 벌써 세 번째다
가볍게 몸을 얹고 중심을 잡아 달릴 수 있던 자리
두 다리가 맘 놓고 걸터앉아 페달을 돌리던 곳
집에서 회사까지 오가는 동안
내 가늘고 보푸라기 진 길을
둥글고 보드랍게 감아주던 길패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출근해 보니 책상 치워져 있던
그 어느 날 같다
( ……… )
안장을 잃은 자전거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천천히 따라온다 대기발령장을 받아들고
집으로 가던 내 어느 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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