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소포’-김승희(1952~ )
한사람이 걸어간다
몹시 가난한 사람인가보다
겨울 추위에도 입을 옷이 없어
넝마 위에 푸대 종이를 걸쳐 입었다
무엇을 담았던 푸대였을까
푸대 종이 걸친 등짝에 이런 글자가 인쇄되어 있다
‘이 물건은 연약하니
함부로 취급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당신은 내 앞에 놓여 있다
소포로 배달된 달걀꾸러미처럼
갈비뼈와 갈비뼈 마주치며
한사람은 한사람을 처음인 듯 전율한다
그대를 모셔와 서늘한 고방에 새끼로 엮어 고이 달아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 고방이 없고. 그대를 불러와 따뜻한 갈짚 아래에 고이 품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 갈짚이 없고. 하는 수 없이 당신을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었습니다. 갈비뼈와 갈비뼈처럼 나란히. 한 사람과 한 사람처럼 둥글게. 연약한 사람끼리 오래 견디기 위해 세상은 이렇게 추운가 봅니다. 갑자기 문이 열리는 어느 저녁, 프라이팬 위 냉장고 불빛처럼 환하게 쏟아질 당신! <신용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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