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9년 산행기

레자미 찾아가기 산행 (모락-백운산, 11/14)

산무수리 2009. 11. 16. 23:19

‘그리움’-박건한(1942∼ )


빈 곳을 채우는 바람처럼

그대 소리도 없이

내 마음 빈 곳에 들어앉아

나뭇잎 흔들리듯

나를 부들부들 떨게 하고 있나니.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아니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어둠처럼

그대 소리도 없이

내 마음 빈 곳에 들어앉아

수많은 밤을 잠 못 이루게

나를 뒤척이고 있나니.


시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삶과 죽음의 끝없는 시작인, 너와 나의 외로움이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인, 하여 우주의 궁극인 그리움을 대뜸 시제(詩題)로 내걸다니. 수십 년 시적 침묵에도 박목월이 가장 아낀 시인답군요. 보일 것도 같고 만질 수 있을 것도 같고 닿을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끝끝내 그리할 수 없는 것들. 함께할 수 없는 너와 나의 순수의 인력(引力). 잠 못 이루고 수많은 밤 뒤척이게 하는 그리움 잡힐 듯 말 듯.<이경철·문학평론가>

 

코스개관: 모락중-정상-절터약수터-백운산-정상-왕곡동 (우성고등학교 앞)

날씨: 쌀쌀한 바람이 제법 불었던 날.

  

 

 

 

 

 

 

 

 

 

 

토욜 하늘과 리사를 위한 웰빙산행을 염두에 두었으나 하늘 사정으로 취소.

일욜은 전국구 산행으로 못 간 지역구 산행을 하기로 한 날. 이번에도 빠지면 지역구에서 완죤히 짤릴것 같은 위기의식.

토욜 온몸산악회를 염두에 두었으나 다들 공사다망 하단다.

모처럼 늦잠을 잤고 영화한편 보고 오후 겨우 집을 나섰다.

 

모처럼 가는길 참 멀었다.

모락산에는 간간히 사람이 있지만 일욜 치고는 한갖진편. 날씨가 추워져 그런것 같다.

모락산 정상 찍고 절터약수터 지나 백운산 방향의 길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라 낙엽이 많이 쌓여있어 아주 조심스런 산행을 해야 했다.

모락산 벗어서 백운산으로 들어서니 의왕 공동묘지 지나는 등산로에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백운산 정상에서 백운사 방향으로 가다보니 왕곡동 갈림길이 나와 왕곡동으로 가는데 하산길이 완만하긴 했는데 정말 길었다.

백운산 정상에서 쉬지않고 내려오는데도 하산에 1시간 이나 걸렸다.

 

 

 

 

 

 

 

 

 

 

 

 

 

여기서 레자미 찾기.

내려와보니 모락산 등산로 입구와 백운산 등산로 입구는 100m 떨어진곳.

이곳에서 계요정신병원을 찾으니 바로 옆 보이는 인스빌 아파트.

이 아파트 지나 GS 마트 가기 전 의왕등기소 정류장 근처에 위치한 '레자미'

범계역에 있을땐 참새 방아간처럼 들리던 곳인데 1년만에 다시 이곳에 문을 열었다고...

들어서는 날 보고 깜짝 놀라는 정애씨.

 

가게는 예전에 비해 코딱지 만한다.

매장에 붙은 곳에 주방이 있어 사장님은 홀로 빵 만드시느라 여념이 없으시다.

남 쓰지않고 둘이 하니 인건비가 들어가지 않아 밥은 먹고 산다고..

다 좋은데 하루종일 둘이 있어 때로는 답답하다고..

평촌에서 손님 한번 다녀가면 매상이 팍 오를만큼 일일 매상도 적고 빵도 많이 못 만든다고 한다.

오늘 산행은 전적으로 백운산 하산길에 빵집이 있다고 해 잡은 코스다.

이왕이면 홍보도 할 겸 사진도 몇장 찍었다.

전화로 주문하면 집이 평촌이니 퇴근길에 배달도 해 준다고. (031-427-3838)

마침 나온 번을 커피와 함께 맛 보니 참 좋았다.

밥 사준다고 저녁 먹고 가라는데 집에 가 청소도 해야 낼 산행을 해야겠기에 사양하고 오랫만에 레자미 빵 한보따리 사서 집으로~

맛좋은 빵도 사고 친구도 만나고 마음이 뿌듯한 하루였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기사.

사장님인 윤성찬씨가 태권도 지망생이었다네요..

 

▨ 한국제과학교 홍행홍 교장 & 레자미과자점 윤성찬 대표
이야기 셋, 제자의 그림자가 되어준 스승의 사랑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4년, 17살의 태권도 국가대표 지망생이었던 윤성찬 씨(사진 오른쪽)는 부상으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그런 그가 선택한 곳은 한국제과학교.

그곳에서 빵과 과자에 대한 열정을 키운 윤성찬 씨는 제과인으로써 새출발을 하게 된다. 현재 ‘레자미과자점’의 오너쉐프로 대한민국 기능장이 된 윤성찬 씨의 성공은 언제나 애정어린 관심을 보여주었던 스승, 한국제과학교 홍행홍 교장의 사랑이 있어서 가능했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분이었어요. 쉬는 시간이면 씨름이나 탁구 등을 함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교장으로 재직 중이지만 당시에는 제과 담당 강사였던 홍행홍 교장은 학생들에게 자상한 ‘삼촌’같은 존재였다. 1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을 잘 이끌 수 있었던 것도 홍 교장의 학생들에 대한 넓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윤 사장이요?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학생이었어요. 성실하게 수업 듣고 부지런하게 연습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성찬이’에서 ‘윤 사장’으로 어느새 호칭이 바뀐 홍행홍 교장은 윤성찬 씨에 대한 기억을 떠올이며 추억에 젖는다.

홍 교장은 ‘대한민국 제과기능장’, ‘제1회 Siba 대회 최우수상 수상’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닌 윤성찬 씨에 대해 “반듯한 제과인으로 성장해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윤성찬 씨는 “모두 선생님 덕분”이라고 쑥스러운 듯 얼굴이 붉어진다.

30년 넘게 재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홍행홍 교장은 “풋내기 학생에서 어엿한 사장이 되는 모습을 보면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고 미소 짓는다. 이제는 함께 제과 업계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된 이들의 모습이 가슴 흐뭇하게 만든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는 윤성찬 씨에게 5월 15일 ‘스승의 날’ 계획을 묻자 홍행홍 교장은 “아이구, 그날 얼마나 바쁜데...” 하며 손을 내젓는다. 패기에 찬 학생과 젊은 강사는 30년이 지나 제과점 사장과 황혼을 바라보는 교장이 됐지만 이들을 묶어주는 사제간의 끈끈한 정은 오히려 더욱 그 빛을 환하게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