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아래 벗어놓은 신을 바라봄
골목에 불 켜진 마지막 집을 바라볼 때처럼
열넷에 어머니가 물속으로 사라진
그는 왜 ‘신(神)은 없다’라는 그림에
여자 구두
아니, 여자 신 한짝을 그려넣었을까
책상 아래 벗어놓은 신을 말없이 바라봄
어느 먼 곳에 신이 손톱으로 파놓았다는 호수
신이 아픈 이빨을 뽑아 던져 생겼다는 봉우리를 바라보듯
골목의 끝에는 ‘화수목’이라는 구잇집
뚝딱뚝딱 수리를 해놓고 개업 한 주일도 못되어서
문을 닫았네
씨멘트 반죽을 부어놓은 보수중인 길,
그 위에 마구 발자국을 찍어넣는
금치산자처럼
책상 아래 놓인 신을 말없이 바라봄
신의 분실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어느 유명 음식점
신을 정리하는 일만 맡은 종업원처럼
책상 아래 벗어놓은 신을 바라봄
먼 기류에 먼저 닿아 있는 펼쳐진 맹금류
날개의
책상 아래 벗어놓은 자기 신을 무망히 바라보는 이런 시간의 이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과거 이야기도 없고 미래 이야기도 없는 탈락의 시간, 현존만이 벌어지는 틈입의 시간이라고 할까. 몸을 벗은 신은 마치 신(神) 같아서 물속으로 사라진 열네살짜리의 어느 어머니를 꺼내기도 한다. 몸을 벗은 신이 몸을 입은 신보다 더 신처럼 보일 때는 몸을 가진 인간이 근원적 슬픔으로 가득 차오른 때. 기류에 닿아 펼칠 날개가 없는 인간은 몸을 다시 신발에 구겨 넣어야 한다. (이진명)
산행일: 2011.3.12~13 (토요 무박)
코스개관: 계라리고개-복덕산-첨봉-427봉-주작산덕룡봉-작천소령-오소재 (4:55~12:15)
날씨: 덥게 느껴진 봄날
기타: 독천낙지집에서의 뒷풀이
7회로 나누어 진행하는 땅끝 기맥이 4번째 산행. 월출산을 건너뛰고 진행하느라 이번 산행은 땅끝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구간인 주작, 덕룡 구간.
2년 전 주작덕룡 산행을 해 본지라 내심 큰 어려움 없지 진행할 줄 알았다. 헌데 착각이었다.
처음 열기에 비해 헐렁한 버스. 지난번은 비 때문에 그렇다 쳐도 이번 산행은 주작, 덕룡인데 의외다.
헌데 요즘 산악회마다 섬 산행 열기가 뜨거운가 보다. 대간, 정맥 하는 분들이야 어차피 목적 산행이라 상관없이 진행하지만 땅끝기맥은 상대적으로 목적성이 떨어지나 보다. 아무튼 31명 비교적 널널하게 가게 되어 넓은 자리 찾으니 놀대장이 맨 뒷자리 앞뒤로 넓다면서 앉으라고 해 얼떨결에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버스 출발 직전에는 잠이 쏟아졌는데 막상 고속도로 들어서니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낮에 결혼식, 제사 등 공사 다 망하게 지냈는데 자야 하는데?
휴게소 쉬고 어딘지 모를 곳에서 아침 먹는다고 내리고 난 초밥 싸온지라 차 안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한참 지체하다 지난번 산행 기점에 도착.
5시 출발이라는데 5분을 참지 못하고 출발한다. 쫓아 올라가는데 포장도로인데 경사가 꽤 급한데 계속 오르막이다. 밥 먹은게 덜 좋은건지 컨디션이 안 좋은지 숨 쉬기가 불편하다.
컴컴한 곳에서 큰 나무숲을 헤치고 지나는데 안 보이는게 서운하다. 30 여분 올라가니 이정표가 보이고 이곳에서 길은 꺾여 유턴한다. 너무 힘이 들고 신발끈도 고쳐맬 겸 잠시 쉬는새 완전 후미가 되 버려 앞도 뒤도 안 보인다. 혼자 가니 긴장이 된다. 아무튼 부지런히 가는데 후미대장은 뒤에 있을텐데 기척이 안 보인다.
설마 버리고 가진 않았겠지? 뒤에서 여유 부리는 거겠지?
무덤가에서 길을 헷갈릴뻔 했는데 그래도 방향은 예측한 곳이 맞아 곧 표지기나 나타난다. 한참 쉬지도 못하고 비틀거리며 가니 임도가 나오고 이곳에서 길을 건넜다.
헌데 건너편에서 보이는 불빛 세개.
누구세요? 무수린데요?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가 맞는데요? 그래요?
대장님 3분이 초장 유턴 지점에서 직진했다 오느라 이제야 온다며 여자 혼자 두고 갔냐고 미안해 하신다. 혼자 가는거야 겁나지 않는데 길을 잘못 들을까봐 긴장 된건 사실이다.
아무튼 이젠 대장님도 만났겠다 걱정없이 가면 좋겠지만 내 페이스에 맞게 천천히 가 주지만 부담 백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걷고 사진도 거의 찍지 않고 열심히 가니 앞쪽에서 소리가 난다. 해가 떴다고....
헬기장 올라가보니 해는 이미 떳고 다들 사진 한바탕 찍고 떠나고 후미 한명만 겨우 뒷모습 봤다. 우리도 잠시 쉬고 사진도 찍고 랜턴 집어넣고 다시 출발.
원래 후미그룹 몇명이 있는데 오늘은 다들 앞서 가 버리고 나 혼자 후미다. 내가 약해진 건지 넘들이 체력단련을 한건지....
서봉 갈림길에 오니 시야가 트이고 바다가 보인다. 땅끝기맥에 온 걸 오늘 처음 실감하게 된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어느새 서봉까지 찍고 온다. 부러워라....
조금 올라가니 시야가 트여 강진만이 햇살에 비쳐 반짝거리고 구름까지 중간에 걸려있어 뽀안 산겹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다들 작품활동 하느라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진 몇장 찍고 가는 길은 앞도, 뒤도 다 환상의 경치. 암봉과 어울어진 능선미가 아주 그만이다.
4월 진달래 철에 오면 더 예쁘겠지만 그때는 인파도 장난이 아닌데 지금은 한갖지고 전보다 길도 정비되어 깨끗한 느낌.
덕룡산 갈림길 지나자마자 암릉에 올라서니 보여주는 흑석산, 강진만, 주작산 능선이 우릴 잡는다.
우와~ 여기 저기 작품 활동 하느라 바쁜 모습들.
주작산덕룡봉에서 정상 사진 찍고 간식도 한판 먹고 출발.
작천소령 지나 주작산 갈림길에서 앉아서 쉬기.
선두들은 주작산도 찍는다고 가 버리고...
걷다 사진찍다 반복할때는 좋았는데 감당할 만한 암봉 올라갈 때는 좋았는데 갈수록 암봉 난이도가 쎄진다.
신발이 닳은건지 물기때문에 바위에서 자꾸 미끄러지니 겁이 나 더 버벅거리게 된다. 특히나 암봉 한곳은 혼자 힘으로 올라 챌 수가 없어 위에서 끌어 올려주어 겨우 올라갔다. 웬 민폐 백성인지... 이 정도인줄 나도 정말 몰랐다. 미안하고 쪽팔리고...
그래도 후미 대장님들은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농담 해 가면서 압박 하지 않으면서 진행을 해 주어 너무 고맙다.
스틱을 아무래도 넣는게 좋을것 같아 접고 올라가니 이젠 완전히 온몸 산악회 모드.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는데 다치는게 제일 겁나니까 다치지 않게 온몸으로 기다시피 걷는다.
앞서서 가던 한분은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고 걸음이 늦어졌고 선두 몇분은 서봉에 이어 주작산까지 찍고 온다고 가버려 오늘은 후미는 확실하게 면할것 같다.
나름대로 후미 그룹이 형성되어 경치 좋은 곳에서 사진 찍고 간식도 나누어 먹고 하면서 가니 힘이 덜 들긴 했지만 간식 먹은 힘이 5분만 지나면 도로 소진되어 오르막에서 걸음이 느리긴 해도 별로 쉬진 않았는데 오늘은 정말 정말 힘들어 몇번이나 쉬었는지 모르겠다.
난이도 제일 쎈 곳은 나무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한숨 덜었다.
이젠 한 봉우리만 넘어가면 오소재인것 같다. 스틱 다시 꺼내 들고가니 확실히 힘이 덜 드는 느낌.
후미 시간이 9시간 이라고 했는데 7시간 채 안걸리고 무사 하산해 정말 기뻤다.
헌데 12시가 훨씬 지난 시간인데 이제 산행 시작하는 팀들도 있다. 오늘 봄날 치고 아주 더운데 한창 더운 날씨에 이제 올라가면 언제 내려오나 넘의 일이지만 걱정되는 상황.
주차장에 와 보니 일찍 온 사람들은 씻고 쉬고 있다. 우리도 간이로 씻고 옷 갈아입고 약수터에서 물도 떴다.
선두에서 넘들 안 가는곳 두군데나 다녀온 분들은 겨우 후미를 잡았다고 하마트면 망신 당할뻔 했다고 후미와 함께 도착.
차로 이동해 낙지 먹기.
낙지탕탕탕(산낙지)와 연포탕을 먹었는데 연포탕은 특히 시원하고 아주 맛이 좋았다.
낙지 안 먹은 백성들에게 맥주 서비스 하는 명산님. 이 팀은 차 안에서 음주가 안되는지라 차 밖에서 맥주 마시기....
차 안 뒷좌석은 술 없이 이루어지는 대화의 광장. 그 대화의 중심에 풀초롱이 여주인공.
남자 주인공들은 더블 캐스팅. 사당에서 2차를 기약하던데 예정되로 2차를 갔는지는 모르겠다.
남은 구간은 월출산, 두륜산, 달마산 등 예쁜 곳만 남았다. 힘은 들겠지만 기대는 된다.
-사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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