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온(臥溫)에 오면’-김춘추(1944~ )
우린, 다 눕는다
늙은 따개비도 늙은 부락소도
늙은 늦가을 햇살도
눕는다
순천만이 안고
도는 와온에 오면
바람이 파도가 구름이
세월처럼 달려와
같이 눕나니
어쩌랴, 와온에 와
나 너랑 달랑게 되어
달랑게 되어
갯벌에
달랑 누운
따스한 이 눈물 자욱을
너
또한
어쩌랴…
깊어가는 가을 속 황량하게 펼쳐진 개펄. 개펄 저 너머로 질척이며 빠져드는 해. 개펄 물골 사이사이 차 들어오는 물 아닌 붉은 노을. 순천만 흐드러진 갈대숲 안고 돌다 끝자락 와온에 이르면 이래서 ‘나 또한 어쩌랴’ 하는 탄식 절로 난다. 바람 파도 구름 세월 달려와 노을 속에 누운 개펄 와온. 내 질척이는 마음속 풍경 끝자락 봐버렸으니 이제 어쩌랴. <이경철·문학평론가>
중청 대피소는 난방이 쎄 더워 자기 힘들었다. 헌데 세석은 담요 한장 깔고 한장 덮으니 자기 딱 좋은 온도.
내 왼쪽 여자는 들어오기 전부터 자더니 어느새 사라졌고 오른쪽도 2칸 정도 비어 널널한 내 자리.
깨다 잠들다 반복하다 4시반경 일어나 짐을 챙기니 정잘난이 부른다. 짐 챙겨 들고 나가는데 창문엔 빗방울이 뭍어있고 밖을 내다보니 우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에이, 비 오나보네....
막상 나가보니 비는 내리지 않고 가스가 끼어 시계가 아주 나쁘다.
취사장에 불도 켜 있지 않아 불 켜고 밥 하고 어제 남은 찌개 데워 먹기로 했다. 날씨 탓인지 아침 취사장은 제법 붐빈다.
이감탄표 김치를 썰어 오지 않아 여산이 손으로 찟어 숟가락에 하나씩 얻어 준다. 엄마 처럼.....
밥 먹고 사진 한장 찍고 출발한 시간이 6시경.
세석에서 장터목 넘어가는 아름다운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너무 아쉽다. 이 길이 초행인 이감탄은 그래도 좋기만 하단다.
세석에서 본 지리터리풀을 처음 알았고 이름을 알고 보니 이 꽃이 정말 많았다. 아는 만큼 보이는거 맞다니까...
마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조망을 상상해 가면서 늘 가깝게 느껴졌던 이 길이 오늘은 멀게만 느껴진다.
간간히 반대로 오는 사람이 보이고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거의 속도가 비슷하다.
군산중에서 왔다는 범생(자칭) 들이 아직 멀었냐고 아우성 치면서 지나간다.
드디어 장터목. 이감탄 인증샷 찍고 간식 먹고 이젠 천왕봉을 향해 출발~
큰 배낭 맨 한팀이 내려오고 있어 박산행 했냐고 하니 공식적으로는 아닌지 중봉박을 했다는데 쓰레기가 한 봉다리다.
제석봉 올라가는 길도 이렇게 가파랐는지 오늘 처음 알았다.
천왕봉 가는길도 이렇게 오래 걸린것도 오늘이 처음이다. 힘든건 우리만이 아닌지 다들 속도가 굼벵이. 누가 늦게 가나 시합 하는것 처럼 기다시피 아무튼 천왕봉에 섰다. 어찌나 기쁘던지.....
어디로 내려가냐는 정잘난의 말은 들은체도 안하고 (이 컨디션에 중봉으로? 보면서도?) 인증샷 하고 간식 먹고 중산리 하산하는데 어찌나 기쁘던지....
이제 올라오는 사람들을 걱정해 가면서 룰루 랄라 하산해야 하는데 기운 없이 내려가는 하산길은 더 위험한지라 조심조심 젖은 돌을 밟고 내려가기...
천왕샘은 물이 거의 없고 개선문도 늦게야 나타났고 법계사 가는 즈음 한 학생이 발목에 붕대를 감고 있다. 삔것 같다. 로타리 대피소에서 파스 주기로 했다. 비가 내린다. 우비를 꺼내 입었다.
법계사는 정잘난과 이감탄만 보기로 했고 나와 여산은 로타리 대피소에서 난 다친 학생 파스 붙이고 붕대도 전문가스럽게 다시 감아주고 주의사항 설명해 주기.
비가 소강상태인줄 알았는데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는데 순두류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길은 우리도 초행인데 칼바위쪽보다는 거리는 길지만 길은 순한편. 그리고 하산해 법계사 봉고를 이용할 수 있다고....
다들 이길로 쉬지도 못하고 사진도 안찍고 내려오니 12:10. 헌데 봉고차가 안온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기사님께 전화를 하니 점심 식사 중이라며 올라오신단다. 거의 30분 기다렸더니 차가 온다. 비는 완전히 쏟아지는 모드.
부자팀이 내리다 스틱을 식당에 놓고 내렸다고 도로 내려간다고 한다. 기사님은 차에 기름 넣으러 내려가야 한다고 하니 함께 동승한 한 장비 하는 부부팀에서 말을 잘 해 원지 나가는 버스 종점까지 다같이 타고 나가기로....
덕분에 편하게 내려와 차 시간을 보니 막 떠난것 같다. 거의 1시간을 기다려야 할것 같아 밥 먹고 나가기로 해 거목식당에 가 씻을 수 있냐고 하니 샤워장에서 씻으라고 배려해 준다.
산채정식 시키고 교대로 무사히 씻고 허겁지겁 밥 먹고 무사히 차 타고 원지로 나가며 서울 가는 차편도 예약했다.
비 때문인지 하산한 사람들이 많아 버스는 만원으로 서서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차는 3:20 차인데 시간이 많이 남는다. 차 마실 시간은 안되는지라 새로 확장한 농협에 가 아이스크림, 커피, 도너츠 먹으면서 기다리기.. 발목 다친 부자팀도 안양권 사람이라 함께 버스 타고 남부 터미널로...
짬짬히 차에서 자고 휴게소에서 뉴스를 보니 지리산 입산 통제라고...
정말이지 우린 운이 너무 좋다 하면서 안도하며 가는데 천안 다 가니 폭우가 내리더니 남부터미널 도착하니 소강상태.
전철 타고 집 앞에서 마을버스 내리니 비가 내리기 시작.
폭우 내리기 전 절묘하게 지리에 잘 다녀올 수 있었다....
여산과 나눈 후일담.
지리산이 갈수록 힘들어 진다는데 공감.
다른 산을 다니며 비교를 해서인지 우리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아무튼 전엔 지리산 종주 실패한 사람들을 솔직히 이해 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포기하고 하산하는 사람들 심정을 이해 하고도 남는다. 이런 저질 체력으로는 화대종주는 꿈도 꾸지 말아야 겠다는데 동감.
여산, 자기 사진 보고 산돼지여서 충격 먹었다고 사진 올리지 말라 아우성이다. 자신의 모습이 이런줄 정말이지 몰랐다고....
이감탄은 몇년 전만 해도 산에는 절대로 안 간다고 했다는데 여산과 친하게 지내며 탁구 동호회에 꼬가 끼기 시작해 산에 다니니 시작하더니 이리 가뿐하게 지리 종주에 성공했다. 장족의 발전이다.
힘들텐데도 대피소에서 먼저 물 떠오는 매너. (이거 사실 쉽지 않다)
집에 가니 볶음 고추장 볶아 주신 오마니께서 장하다 칭찬하셨다고.... (가다 힘들면 되돌아 오라 했다나?)
아무튼 지리 사람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미산샘이 부상때문에 산행을 못하는 심정을 내내 생각했다.
그래도 부상 당했던 도솔산인님도 컴백 하셨으니 미산샘도 곧 지리로 돌아오시리라...
헌데 박 산행은 확실히 몸이 무리를 주는것 같다. 박산행의 매력을 놓기는 아쉽지만 체력은 저질이 되가고 도가니도 자꾸 신경 쓰이니 가급적 짐을 줄이는 대피소에서 자는 산행을 해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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