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더
- 황인찬(1988~ )
교탁 위에 리코더가 놓여 있다
불면 소리가 나는 물건이다
그 아이의 리코더를 불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그랬다
보고 있었다
섬망도 망상도 없는 교실에서였다
리코더는 입으로 부는 것인데 그걸 불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도 없었는데 왜? 시인이 소심하다. 그게 아쉬웠던가. 이 장면을 좀처럼 잊지 못한 모양이다. 삽을 들고서 당시의 교실을 떠다가 나르기로 작정한다. 과거에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잘되지 않는다. 쉽게 될 리도 없다. 캠코더로 촬영해두어야만 했었던 것이다! 너무 비싸서 캠코더를 사지 못했던가. 지금도 마찬가지일까. 사러 가는 대신 시의 제목을 레코더로 삼는다. 이렇게 과거의 사소한 일 하나를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해, 지금 살고 있는 현실로 이전하는 방법을 발명했다. 망상에 빠지지도 않고 독특한 상상력에 의존하지도 않고서, 어릴 적 교실을 여기에 실어 나르는 데 멋지게 성공한다. 혹시 우리 몰래 도라에몽에게 뭔가를 빌린 건 아닐까.<조재룡·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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