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네에 오는 눈 -신경림(1935~ )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라서
눈도 제일 먼저 온다
깁고 꿰매고 때워 누더기가 된
골목과 누게막과 구멍가게 위에
눈은 쌓이고 또 쌓인다
때로는 슬레이트 지붕 밑을 기웃대고
비닐로 가린 창틀을 서성대며
남 볼세라 사랑놀음에 얼굴도 붉히지만
때와 땀에 찌든 얘기
피멍 든 노래가 제 가슴 밑에서
먹구렁이처럼 꿈틀대는 것도 눈은 안다
이 나라의 온갖 잘난 것들 모여들어
서로 찢고 발기고
마침내 저네들 발붙이고 사는
땅덩이마저 넝마로 만든
장안의 휘황한 불빛을 비웃으면서
눈은 내리고 또 내린다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라서
눈도 제일 오래 온다
눈처럼 가벼운 걸 무엇에 비유하나 하다가 눈처럼 무거운 걸 무엇에 비유하나 하다가 그저 ‘눈’이라고 쓰는 것 말고는 아무 소용이 없겠구나 싶어 좀처럼 저 무서운 눈, 눈은 건드리지 말아야지 한 적이 있습니다. 상상 속의 눈은 얼마나 예쁘던가요. 상상 속의 눈은 얼마나 따뜻하던가요. 오늘 내리는 눈은 사단입니다. 내일 내릴 눈이 예고되었다면 그야말로 사태입니다. 눈이 좋아서든 눈이 싫어서든 눈과 벌이는 삶에서 사람은 평생 맥을 못 춘다는 얘기지요. 화장대 앞에 앉아 새로 산 스킨을 뜯는데 4500년 전 대형 화산 폭발 때 형성된 아이슬란드 빙하수로 만들었다는 광고 문구가 길게 접혀 들어 있습니다. ‘이건 뭔가요’와 ‘느낌 아니까’라는 유행어 사이에서 맴을 돕니다. 어젯밤 내가 왜 26년 전에 나온 신경림 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를 꺼내 읽다 잠들었는지, 아무튼 그 시절 시가 이 시절 시만 같으니 이 나라 시계는 아무래도 거꾸로 가는 모양입니다. <김민정·시인>
산행일: 2014. 2.10~11 (월, 화)
코스개관: 동서울터미널-백무동-장터목-천왕봉-장터목-세석(1박)-벽소령-연하천-화개재-뱀사골-반산
멤버: 둘
날씨: 출발 전부터 내리던 비가 하루 종일 조금씩 내리고 둘째날은 화창해 다소 덥게 느껴지던 겨울날
정혜씨가 지리를 너무 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렵게 날을 잡고 산행을 천천히 진행하는지라 푸르름도 함께 가자 했다.
신샘도 지리를 중산리, 노고단 이쪽 저쪽 당일로 주로 다녀 종주는 한번도 안 해봤다고 이번에 함께 하기로 했다.
대피소 예약도 했고 버스표도 끊어 놨는데 푸르름이 독감 수준의 감기가 걸리 병원을 2번이나 다녀왔는데도 감기가 나아지지 않아 눈물을 머금고 포기.
지리 간다고 큰 배낭에 헤드랜턴, 아이젠까지 구입했는데.....
대피소 취소하니 연하천은 2일 후라 위약금이 없고 세석만 20% 공제가 된단다.
헌데 일욜 심야 버스를 타야 하는데 저녁 6시 경 정혜씨 전화. 아무래도 체력도 안되고 짐도 아직 싸지도 못해 안가면 안되냐고...
못가는 사람은 오직해야 못가겠냐 싶지만 한편으로는 기가 막힌다.
부랴부랴 버스표 1장 또 취소하고 (인터넷 카드 결제인데 결재 취소되고 재 결제로 위약금이 없다)
신샘에게 전화를 하니 할 말을 잊는다. 신샘도 여러가지 걸리는게 있는데도 약속을 한지라 가기로 한것 같다. 신샘 아니면 계획 자체가 취소될 뻔 했다.
멤버가 반으로 준지라 급히 먹을걸 덜어내고 밥도 햇반 대신 알파미 2개를 챙기고 신샘에게는 햇반 1개만 가져오라 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신샘을 만나 버스를 타는데 그래도 간간히 손님은 있다.
헌데 기사님 왈 백무동쪽 눈이 많이 오고 있다고 버스가 못 들어갈것 같다고 함양 찜질방에서 자고 백무동 들어가는 첫차 타고 가는건 어떠냐고 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이러다 아예 입산도 못하는거 아니야?
일단 자리가 널널해 뒷자리로 가 길게 누워 비몽사몽 잤다.
휴게소 쉬고 함양에 정차하니 세명 빼고 다 내린다. 헌데 생각보다 눈이 별로 없다.
내려야 하나 망설이는데 일단 인월 가는 손님이 한명 있어 인월까지는 들어가야 한단다. 그러더니 생각보다 눈이 많이 안 내렸다고 백무동까지 가 보자 한다.
헌데 요즘 동절기에는 5시 이전에는 입산을 안 시켜준다고 우리를 걱정해 준다.
여자 2명 설마 밖에 세워놓기야 하겠냐는 배짱으로 백무동 도착하니 3시 40분.
헌데 작년에는 화장실도 잠가놓았는데 오늘은 화장실 불도 켜 있고 난방을 해 놓아 화장실에서 스패츠 차고 스틱 들고 눈이 내리는지라 고어 잠바로 바꾸어 입고 아무도 밟지 않는 눈을 밟고 출발. 눈 내린다고 입산 통제하는건 아닌가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막상 입구에 가니 문은 열려있고 불은 켜 있는데 사람이 안 보인다. 그래서 조용히 입장.
눈발이 굵지는 않지만 계속 내린다. 눈이 덮여 있지만 길은 잘 나있는 편.
아이젠은 하지 않고 올라갈만 하다. 아무것도 안 보이고 산에 우리 둘 밖에 없는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건 킬리만자로 원정 때 몸 상태가 최악이던 신샘이 많이 좋아져 얼굴에 화색도 돌고 살도 조금 붙은것 같다.
검사 결과도 잘 나왔다고 한다.
백무동 길 사실 별로인데 그나마 눈이 덮여 있으니 훨씬 낫다.
한참만에 참샘이 나온다. 물이 쫄쫄 나와 둘이 한 바가지씩 떠 먹고 올라가니 경사가 점차 급해지니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아무래도 아이젠 하는게 덜 피곤할것 같아 아이젠 차고 진행.
꽤 올라선것 같고 어둠도 조금씩 걷혀 가는데 눈은 그칠것 같으면서도 계속 내린다.
마침내 하산하는 한팀을 만났다. 대피소가 그만큼 가까워 졌다는 증거.
4시간 만에 장터목 무사히 도착. 일단 1차 시기는 무사히 통과한것 같아 기뻤다.
그새 장터목 공사가 끝났는데 다 지은걸 보니 대피소가 아니라 취사장. 아마 대피소랑 떨어지게 일부러 지은것 같다.
CCTV 가 설치되어 있는지 누군가 취사대 올라가니 올라가지 말라고 방송이 나온다. ㅎㅎ
우리도 여기서 떡만두국으로 간단하게 아침 먹고 간식과 물병만 들고 배낭은 놓고 천왕봉으로 출발.
배낭 없이 올라가니 한결 쉬울텐데 신샘이 갑자기 고관절 부위가 아프다고 잘 걷지 못한다.
처음엔 다리를 끌듯 걷더니 다행히 조금씩 나아져서 천천히 진행.
간간히 내려오는 사람이 있고 올라가는 팀들은 추월까지 했다.
정상에 가까워 갈 수록 상고대가 장난이 아니다. 해가 날듯 눈이 그칠듯 그치지 않는다.
정상에 가니 한팀이 막 내려가려고 해 부탁해 둘이 사진 겨우 찍고 우리 둘만 정상에 남았다.
가을 줄서던 정상이 이렇게 한갖질 수가 있다니....
무사히 정상을 찍고 나니 2차 시키도 무사히 통과한것 같아 기뻤다.
한결 개운한 마음으로 장터목으로 내려오며 정상 깨끗히 비워놨다고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덕담을 나누었다.
로타리에서 1박 하고 올라오는 부자 팀이 보이는데 3학년 초등학생은 경사가 있는 곳에서는 눈썰매를 타고 간다. ㅎㅎ
제석봉에 오니 해는 나는데 눈발은 펄펄 날리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
2시간 만에 장터목에 오니 그새 멤버들이 바뀌었다. 오늘 세석에서 1박 하는데 긴긴 오후를 어찌 보내야 하나?
장터목에서 세석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 길.
거의 사람이 없고 이쪽이 눈이 더 많은것 같다. 눈은 아직도 조금씩 내리고 있다.
쌓여있는 눈이 작년에 비해 아주 적다. 오늘 내린 눈 덕분에 그나마 설경을 볼 수 있는것 같다.
천천히 가자는데도 신샘 질주 본능이 있는지라 속도가 늦춰지지 않는다. 눈 때문에 딱히 앉을만한 곳도 없어 쉬기도 그렇다.
아무튼 12시반 세석 도착.
바깥 테이블에 앉아 있으려니 썰렁하다. 점심을 건너뛴지라 이른 저녁 먹자 하니 그럼 저녁에 뭐 하느냐고 점심은 찹쌀떡으로 요기하고 저녁을 조금 일찍 먹기로 했다.
혹시나 해 몇시에 입장 시키냐고 하니 5시란다. 헐~
마루에 들어와 있어도 된다는데 바닥이 차 발이 시리다. 궁상맞에 앉아 있는게 보기에 딱했는지 침낭 하나를 빌려주어 신샘 매트레스 깔고 침낭 덮고 한참 앉아 있는데 부부 팀이 들어와 구급약을 찾는다.
성삼재에서 출발했는데 벽소령 지나 넘어지며 머리와 얼굴을 바위에 부딪친것 같다. 상처는 크진 않은데 머리가 약간 찢겼고 입술이 많이 부어있다.
대피소 소독약으로 소독하고 피가 완전히 지혈 되지 않아 압박 붕대가 있어 감아 주었다.
3시 채 안됐는데 들어가라고 한다.
제일 먼저 자리 배정받고 담요 깔고 앉아 있으려니 해는 나는데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다.
예전처럼 자리 남으면 예약 안해도 잘 수 있으면 벽소령으로 갔을텐데 요즘은 절대로 안 재워주고 하산 하라고 하니 허송세월 하려니 참 그렇다.
두 백성이 안오는 바람에 이런 사태가 일어났다.
잠시 누워있다 깜빡 잠이 들었다. 어두워지기 전 저녁으로 알파미 한봉지와 신샘이 가져온 미역국 데워 먹는데 알파미 한봉이 의외로 양이 많다.
둘이 먹다 남겨 내일 아침에 먹기로 했다.
양 적은 신샘과 다니니 자연 나도 덜 먹게 된다. 이러다 살 빠지겠다. ㅎㅎ
신샘은 킬리만자로에 비하면 아주 잘 먹는다고 놀리니 한국 음식은 안 가리고 잘 먹는다고....
취사장에 인심 좋은 산객에게 한우 한점 얻어 먹었다.
대피소 사람이 적은지라 남자는 1층, 여자는 2층에 있는데 예전 동계에 비해 여자가 의외로 많아 놀랬다.
홀로 온 분도 있고 미녀 3총사도 있고 부부팀도 있는것 같다.
긴긴밤 다소 추운듯 하게 자다깨다 반복하며 잤다.
내일은 연하천까지 가 뭐하고 노나 고민하면서.....
'산행기 > 2014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운이 더 많은데 왜 이리 힘든지 (영춘기맥, 6번도로-칠송고개, 2/16) (0) | 2014.02.18 |
---|---|
산행 후 버스데이 축하하기 (우면산, 2/14) (0) | 2014.02.14 |
지리를 떠나다 (0) | 2014.02.13 |
관악산 언저리 산행 (2/1) (0) | 2014.02.03 |
징하게 길었던 영춘기맥 (전재-황곡,1/19) (0) | 2014.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