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이윤학(1965∼ )
오리가 쑤시고 다니는 호수를 보고 있었지.
오리는 뭉툭한 부리로 호수를 쑤시고 있었지.
호수의 몸속 건더기를 집어삼키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을 쑤시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 떠 있었지.
꼬리를 흔들며 갈퀴손으로
당신 마음을 긁어내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너무 깊고 넓게 퍼져
나는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
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
나는 마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뒤뚱거리며
당신 마음 위에 뜨곤 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서 자지 못하고
수많은 갈대 사이에 있었지.
갈대가 흔드는 칼을 보았지.
칼이 꺾이는 걸 보았지.
내 날개는
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
휴가랍시고 혼자 경주에 다녀왔어요. 호텔에 틀어박혀 먹고 자다 아침이면 꼬박 세 시간을 산책하는 데 써버리곤 했지요. 그때마다 보문호 위를 둥둥 떠가는 오리를 만날 수 있었어요. 어느 방향에서든 나 오리요 할 만큼 컸고요, 그래 봤자 날 수 없으니 기껏해야 오리 배란 얘기였는데 요게 아주 명물이더라고요. 근처 경주월드에서 꺅 소리를 지르며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려와도 무심한 듯 오리는 그저 지그시 쳐다만 보고 있었어요. 뭐가 저리 즐거울까… 그때 귀마개만 한 시꺼먼 이어폰을 낀 침엽수림 같은 북유럽풍의 여자가 나를 툭 치고 지나갔어요. 뭐가 그리 기운 날까… 민소매에 반바지에 빨개진 살빛으로 조깅을 하는 금발머리 여자를 처연한 듯 오리는 그저 지그시 쳐다만 보고 있었어요. 꺾인 날개일 때 접힌 마음일 때 어디 갈 곳 모를 때 내가 경주행 열차를 끊는 이유, 아무래도 오리가 여기 있어 그랬나 봐요. <김민정·시인>
밤새 자다 깨다 반복을 했다. 옆의 두 여인들은 피곤한지 생각보다는 잘 잔다.
새벽이 되어 부지런한 사람들은 하나 둘 나가는데 우리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만 일어나야지? 오늘 일정 짧은데 왜 서두르냐는 경란씨.
뭐가 짧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자긴 곤도라가 삿갓재에 있는 줄 알았다고...
쫀누나와 경란씨는 곤도라 타고 내려갈테니 우리 둘은 끝까지 종주하라나? ㅎㅎ
배낭을 싸서 취사장에 내려와 어제 남은 오뎅국과 알파미로 아침을 먹으려는데 누군가 찾는다.
초등 밴드에 덕유산 삿갓재에 1박 한다고 올렸는데 동창의 고교 동창도 삿갓재에서 1박 한다고 찾아보라 했단다. ㅎㅎ
인사 하고 그 팀은 반대편으로 가서 인사 하고 8시 조금 전 출발.
아침 안샘이 물 한번 떠오고 쫀누나도 물 한번 떠오더니 힘들어 죽겠단다.
쫀누나 무릎 보호대 경란씨 빌려서 아픈 다리에 차고 이쪽은 눈이 많다고 처음부터 아이젠 착용.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팀으 두팀 정도 되나보다.
홀로 온 남자분이 우리를 추월해 가고 우리는 멋진 경치에 감탄해 가면서 사진 찍으며 행복해 하면서 진행한다.
오늘 후미는 안샘이 맡아 준다고 해 선두에 내가 서고 경치 좋은곳 있으면 사진 찍으며 진행하니 간격이 벌어지지 않고 산행 속도도 부담이 적은것 같다.
2월 덕유에 눈은 거의 없어 설경이나 상고대는 없어 아쉽지만 덕유산 주능선의 아름다움은 한눈에 보이고 아주 멋지다.
오면 올 수록 산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건 그만큼 아는게 많아진건지 뭔지....
하긴 그래서 온 산을 또 반복해 오는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홀로 온 분이 담배 피우느라 쉬고 계셔서 사진을 부탁해 단체 사진을 찍었다.
무사히 무룡산 찍고 동엽령 가는 길은 내리막이 더 많아 덜 힘들고 주능선이 한눈에 보여 힘도 덜든다.
동엽령에 와 간식도 먹고 놀고 있으려니 홀로 온 분이 오셔서 오신 김에 사진을 부탁했다. 이분은 무주리조트로 하산해 셔틀 버스를 타고 올라갈 계획인것 같다.
우리가 한발 앞서서 출발.
신풍령 삼거리에서 홀로 온 분이 점심을 드시고 간단다. 헌데 큰 종이 박스를 세워 놓는데 김이 모락모락 난다.
뭔가 물어보니 전투식량이라고 인터넷에서 샀다는데 물과 연료 없이 뎁혀지는 카레라이스.
무게가 좀 나가고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맛을 보니 그런대로 괜찮다.
우리도 후미 기다리다 물 끓여 커피와 함께 점심을 빵으로 해결.
쫀누나 이름을 부르니 누가 권씨냐고 묻는 이 분. 자기랑 종씨란다. 봉천동에서 오셨다는데 주로 관악산을 다닌다고 한다.
쫀누나랑 이야기 해 보더니 쫀누나가 아줌마 뻘이라 졸지에 조카와 아지매가 되었다. ㅎㅎ
쫀누나는 체했다고 빵도 안 먹고 힘들게 중봉 계단을 겨우겨우 오더니 자긴 중봉 안 올라온다며 오수자길로 간다.
거기 아니거든? 여기로 와야 하거든?
중봉에는 관광 모드의 팀들도 많이 보인다. 이젠 정말이지 얼마 안남았거든?
중봉 지나면 고사목과 주목과 구상나무가 있어 경치가 좋다.
눈이 쌓여있으면 그야말로 환상의 경치.
아무튼 여기까지 무사히 온것만 해도 너무 행복하다. 행복해 하면서 사진을 찍다 디카가 또 말썽이다.
스마트폰으로 아쉬워 하면서 사진 찍고 향적봉 도착해보이 쫀누나 조카님이 인사 못하고 갈 뻔 했다고 아는체를 하신다.
이분은 아무래도 구천동으로 하산해야 마무리가 될것 같다 하면서 단체 사진 찍어주고 가셨다.
향적봉 올라오며 아이젠을 뺐는데 설천봉 내려가는 길도 만만하지 않아 버벅대며 겨우겨우 1:30 하산완료.
아무튼 무사히 설천봉에 오니 정말 기뻤다.
인증샷 하고 배낭 정리하고 곤도라 매표하는데 9천원이나 한다. 너무 비싸다.....
곤도라 타고 하산하니 편해서 너무 좋단다.ㅎㅎ
택시에 전화를 하니 바로 리조트 앞에 있다고 차가 대기. 5만원 주기로 하고 육십령 가면서 맛있는 식당을 물어보니 육십령 휴게소 식당의 세프가 호텔에 근무하던 분이라 일부러 그곳으로 먹으러 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래?
택시 안에서 종주의 성공에 기뻐 웃고 떠들다 택시기사 하마트면 사고 낼 뻔 했다.
장수돈가스 2개와 까르보나라 1개 시켜 넷이 나누어 먹으니 양이 딱 맞다.
소스도 독특하고 감칠맛이 나고 맛이 좋다.
밥 잘 먹고 3:30 출발.
쉬지 않고 조금만 막히고 안양 온천에서 목욕까지 하고 저녁 먹기.
간단하게 저녁 먹기로 하고 국수집을 찾으니 보이는 '면사무소' (호계동 905-21)
예쁜 아가씨 둘이 하는데 맛도 가격도 착하다.
김밥과 라면으로 저녁을 먹고 문전택배 해 주는 착한 경란씨.
앞으로 하계 지리 종주도 해야 하고 한라산도 가야 한단다.
그래 가자 가~
마음에 맞는 멤버들 덕분에 힘들었지만 무사히 종주를 해 고맙고 기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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