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20산행

퇴직 기념 지리 종주 도전기 1 (2/10~12)

산무수리 2020. 2. 12. 23:33

<빙하기>

 

김리영

 

 

아침에 커튼을 열면

산꼭대기에 눈 쌓인 면적이 늘어나 있고

사람들은 조금씩 자기 체온을 잃어간다.

마침내 얼어붙은 눈의 벽면 안에서

잠들어 있는 시간을 맞이할 지 모른다.

나는 차디찬 매트리스 위에서 꿈을 꾼다.

언젠가 볼 수 있는 태양을,

아름답게 허물어지는 빙산의 일각을...

 

빙하기를 보내며 공룡들은 멸종되었다지만,

어느 날 늦게 뜬 해가 들판을 비추면

다시 시냇물이 돌돌 흐르고

동네 강아지들이 뛰어놀기 시작하고

앞집 목도리를 두른 노인이 산책을 나설 것이다.

그 날은 지붕 밑 다락방에 웅크린 내 마음도

무지개 빛으로 녹아내릴 것이다.


2/10 (월) 백무동-장터목-천왕봉-장터목 (1박)

2/11 (화) 장터목-세석-벽소령-연하천 (2박)

2/12 (수) 연하천-음정



2년 전 회갑기념 지리산 산행을 함께 한 차영샘에게 이번엔 퇴직 기념 지리 종주를 하고 싶다고 했다.

아주 내켜하진 않았지만 내년보다는올해가 힘이 좀 남아있을때 무리하지 않고 2박으로 널널하게 하기로 해 해외여행 다녀온 다음날부터 3일 날을 잡았고 장터목, 연하천 산장 예약을 했다.

막상 비행기박을 하고 일욜 오후 귀국하고 나니 내일 산행이 너무 욕심은 아닌가 싶은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수요일 비 예보까지 있고 보니 그나마 하루라도 빨리 잡은게 나았다 싶었다.

동서울 7시 차를 타러 가는데 남의편도 오늘 소백산 간다고 7시 차를 타러 간다더니 전철 하나 앞차를 타겠다고 먼저 나갔고 나도 다음차 타고 도착했는데 차영샘 도착했냐고 전화.

만나니 어느새 남의편과 만나 갈때 먹으라고 음료수와 빵까지 사줬단다. 생전 나한텐 뭐 하나 안 사주더니 웬일이니....

처음엔 모르는체 지리산 가세요? 했더니 차영샘이 깜짝 놀라더란다. ㅎㅎㅎ

버스 타고 비몽사몽 가다 백무동에서 내려 늘 가던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는데 반찬이 옛날만 못하다.

서비스로 고로쇠물을 주는데 아주 맛있다. 먹고 12시 출발 하는데 입구에서 예약 확인을 한다.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눈이 많냐고 하니 곧 아이젠을 해야 할거라더니 하동바위 전부터 눈이 쌓여 있다.

2월 지리에 생각보다 많은 눈이 눈을 즐겁게 한다.

참샘도 웬일로 물이 아주 잘 나온다.

가끔 추월도 해 가면서 한갖진 지리를 올라간다.



























적어도 동계 지리는 백무동-장터목 코스가 나쁘지 않다. 눈이 아이젠 하기 딱 좋을 지금은 더 그렇다.

아무튼 올 겨울도 지리를 올 수 있음을 행복해 하면서 일찍 도착하면 천왕봉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가끔 내려오는 사람도 있고 올라가는 사람도 있는데 평일이고 2월이어서인지 이렇게 한갖진 지리도 참 오랫만이다.




장터목은 그새 화장실 공사를 해 깔끔해 졌고 변기도 앉으면 열리는 재래식인데 냄새 나는건 별로 개선이 안된것 같다.

아무튼 쭈그리지 않아도 되고 클래식 음악이 나온다.

4시다. 아직 시간도 있고 자리 배정도 안되는것 같아 일단 배낭 내려놓고 색에 잠바, 물, 간식, 헤드렌턴만 들고 천왕봉 다녀오기로.....

























천왕봉 올라가는 길이 오늘처럼 순한날도 별로 없지 싶다.

장터목에서 올라가는 계단은 녹았다 얼었다 하며 빙벽을 이루는데 오늘은 거의 눈으로 덮혀있다.

간간히 넘어오는 사람도 보이고 배낭 놓고 올라갔다 오는 사람들도 보인다.

어린 부자가 내려오는데 10살 된다는 꼬마인데 고글까지 쓰고 있다.

내려가면 잘 데가 나오냔다. 그럼 나오지~ 다왔어. 너 정말 멋지네....

1시간 안 걸릴줄 알았고 배낭을 내려놓아 쉬울줄 알았는데 전혀 쉽지 않았고 기운도 없고 겨우겨우 1시간 만에 정상에 가는데 정상 막바지도 거의 눈으로 덮혀있어 그나마 길은 좀 순해졌다.

정상에는 우리 둘 밖에는 아무도 없다. 이렇게 춥지 않고 한갖진 정상도 정말이지 처음인것 같다.

둘다 앞뒤로 널널하게 사진 찍고 트랭글은 일몰 얼마 안 남았다고 알람이 울린다.















석양을 보기에는 해가 아직은 떠있다.

부지런히 내려와 자리 배정 받는데 이제 왔냐고 한다. 6시까지 자리 배정 한다며 담요도 지금 받아 가라고 한다.

담요 가져다 놓고 물을 뜨러 갔는데 물이 조금씩 나와 여러병 뜨는데 눈치가 보일 지경이다.

대피소 일몰을 보고 저녁을 해 먹고 있는데 초등생은 저녁 먹고 기운이 나 한참 까불다 들어갔다 아빠 안 들어온다고 쫓아 나왔다.

아빠는 내일 아침 해 놓고 들어간다고 하더니 집에 화상 통화 하는데 집에 아이가 2명이 더 있는것 같다.

거의 8시 다 되 대피소 들어오니 여자방은 널널하고 바닥은 따뜻하다.

시차인지 한밤중 잠이 깨다 들다를 반복하고 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