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산행기

봄 설악을 가다 (오색-천불동, 5/31)

산무수리 2024. 6. 7. 22:33

<계란 한 판>
 
                   고영민

대낮, 골방에 쳐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 …(짧은 침묵)
계란 한 판 …(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 …(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다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치다
인이 박혀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코스개관: 오색-대청봉-중청-소청-희운각-양폭-귀면암-비선대-와선대-설악동 (바람불어 좋은날, 둘)

 

 

5.15 설악 경방이 풀리는 날이었다.

각자 노는물이 달라 날짜를 어렵게 맞췄다. 

당나귀 회장님은 5.17~18 희운각에서 1박 하며 설악을 다녀오셨는데 그때 눈이 내려 미끄럽고 피던 털진달래가 냉해를 입었다고.

빵, 떡을 샀고 아침에 먹을 유부초밥도 싸고 커피, 물도 얼렸다.

전철 첫차를 타고 강변역에서 6:30 버스를 탔는데 자리가 거의 다 찼다. 

전에는 용대리에서 한참 섰는데 오늘은 그 전에 서더니 용대리는 그냥 패스. 여기서 김밥 사면 밥 굶을뻔.

차가 시간이 촉박한지 달린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계령에서 많이 내렸고 9시 오색에는 몇명만 내렸다.

밥 먹고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다 출발.

그래도 우리가 추월할거라는 산양. 

 

 

우리 출발 직전 오색에서 남자 2명이 올라오는데 색 하나 맨 가벼운 차림이다.

그러다니 산행을 시작한다. 올라가다 사람들에게 길을 묻더니 산양과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걸음은 잘 걷는데 준비가 부족한것 같다. 젊어서 설악을 왔고 최근에는 한라산도 다녀왔다는데 먹을것 마실것도 거의 없는것 같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앞에 가는데 웬지 미덥지가 않다.

아무튼 이 팀은 물도 부족하니 설악폭포에서 물 뜬다고 해서 여기서 헤어졌다. 쫓아올까봐 부지런히 올라가며 몇명 사람들을 추월할 수 있었다.

처음 쉬며 빵 간식으로 먹고 출발.

 

 

겨울 산행보다는 덜 쉬며 올라가는데 나는 자신이 없어 한계령으로 하산하자고 하니 교통편이 나쁘다고 설악동으로 가잔다. 천천히 가면 된다고. 헌데 말로만 천천히지 전혀 천천히 갈 수 없다.

쉼터에서 쉬는데 겁없는 다람쥐가 먹을걸 달란다. 뭐 좀 주라는데 주지 말라는데 뭘 줘 하고 아무것도 안줬다.

 

 

정상 올라가며 이 철에는 꽃이 별로 안 보인다. 털진달래도 피다말고 지는것 같고 철쭉이 간간히 화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날씨는 그늘이나 바람 불면 덥지 않아 산행은 생각보다는 덜 힘들다.

드디어 정상. 춥지 않으니 쉬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인증샷 하고 출발하는데 산양은 사진 찍느라고 지체.

 

 

원래 중청에서 쉬며 간식을 먹어야 하는데 중청은 공사중이라 쉴 곳이 없다. 할 수 없이 통과.

조감도를 보니 중청을 없애는것 같진 않고 새로 짓는것 같다.

 

 

중청 지나 그늘을 찾아봤으나 없다. 소청에 가도 그늘도 없고 앉을 곳도 없다.

할 수 없이 희운각으로 내려서는데 눈이 있을땐 눈 때문에 무섭고 지금은 너덜성 계단으로 힘들다. 아무튼 의자를 찾았으나 안 나타나 그늘 앉을만한 곳을 겨우 만나 여기서 쉬며 간식먹고 충전하기.

 

 

희운각에는 의자가 있지만 여기도 쉴만하지가 않고 취사장은 있지만 물 뜰곳도 안 보인다. 화장실만 들렸다 부지런히 내려와 계곡 옆에 앉아 맥주로 갈증 달래기.

 

 

천불동쪽 데크 공사는 완료가 되었고 이쪽에 오니 사람들이 많아졌고 올라오는 사람도 간간히 만날 수 있다.

나름 최선을 다해 부지런리 내려왔고 귀면암에 겨우 올라서 쉴 줄 알았는데 산양이 내려가버려 소리를 질렀다.

여기서 쉬어야지 어디가?

대충 바위 위 그늘에 앉아 간식과 얼음물 먹고 몇명 추월하고 드디어 비선대. 무사히 비선대에 와 감개무량했다.

 

 

비선대에서 와선대 지나 설악동 내려오는 길도 아주 길지만 그나마 평지라 무릎에는 부담이 적다.

미친듯이 걸어 내려와 화장실에서 옷 갈아입고 버스타고 속초로 나오기.

겨울 산행보다 기록을 단축했나 싶었는데 세상에나 시간이 똑같이 걸렸다. 헐~

 

 

겨울에 갔던 해장국집에서 저녁 시켜놓고 버스표 예매 하는데 7시표가 매진이다.

7:30 표 예매하고 막걸리 한잔에 밥 천천히 먹고 발도 닦고 양말도 갈아신고 터미널에서 버스타기.

이 버스도 만석이었고 7시 차는 양양에 들렸는데 이 버스는 강남터미널 직행이다.

중간 휴게소에서 쉬고 터미널 도착해 계단 내려오는데 다리가 너무 아프다. 힘이 들긴 들었나보다.

기록 단축을 감히 마음 먹다니. 나이 먹어도 속도가 그대로인걸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