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야기

서안에서 상해까지 2 (2/26)

산무수리 2006. 3. 13. 21:40
'양파'전문 - 조정권(1949~ )


옷을 잔뜩 껴입고 사는 여자가

모임에 나오곤 했었지

어찌나 많은 옷을 껴입고 사는지

비단을 걸치고도 추워하는 조그마한 중국여자 같았지



옷을 잔뜩 껴입고 사는 그 여자의 남편도

모임에 가끔 나오곤 했었지

남자도 어찌나 많은 옷을 껴입고 사는지

나온 배가 더 튀어나온 똥똥한 중국남자 같았지

그 두 사람 물에서 건지던 날

옷 벗기느라 한참 걸렸다네

우리가 잔뜩 껴입고 있는 것이 어디 옷뿐일까. 나와 당신은 높은 담을 치고 뒤란을 숨겨놓고 벽을 두르고 세 평의 거실 속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눙치다 왈칵 성내고 또 그걸 파도처럼 거듭해 남들이 종잡을 수 없다. 많은 말을 쏟아놓고 말들의 겹주름 속에 진심이 숨어 산다. 남의 말을 잘 곧이들어 손해 보는 사람이 귀하다. 퇴로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요즘은 귀하다. 그러니 똥똥한 중국남자처럼 너무 많은 옷을 껴입지는 말자.   문태준<시인>


 
비림 앞. 명대성벽이랑 바로 옆인것 같다.

아침식사를 하는데 잘 나온다.
길만 나서면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진다. 자연 과식을 하게 된다.
맑았던 어제와 달리 날이 잔뜩 흐리고 비가 내릴것 같고 춥게 느껴진다.
혹시나 비가 올까봐 들고 온 얇은 잠바를 위에 덧 입었다. 헌데도 춥다.
한국보다 날씨가 춥지 않다고 해 얇은 옷만 가져온 부부팀은 몇개씩 껴 입었는데도 춥다고 내복을 살 곳이 없냐고 한다.

짐을 챙겨 차를 타고 비림박물관으로 간다.
비림은 한마디로 돌로 된 책이란다. 그 옛날 공자의 사당이었던 곳으로 천자도 이곳으로 참배를 왔단다.
각 방마다 수많은 비석이 있고 중요한 것은 유리 속에 넣어둔것 같다.
왕희지체, 안진경체등 서체의 변화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서예를 공부한 사람이 보면 의미가 많지 싶다.
그밖에 중국 역사의 중요한 인물들을 상징하는 내용의 글과 그림등이 있다.
장비도 나오고 공자님도 나오고 기억이 나진 않지만 글과 그림을 절묘하게 조합한 명작도 많았던것 같다.
헌데 이곳은 여러 관광팀이 몰려 오래 있을 수가 없다. 한국 사람뿐이 아니라 일본인, 중국인, 더러 서양 사람들도 눈에 뛴다.

 
당현종이 주석했다는 석대효경비(石臺孝經碑)

이런 비문을 쓸때도 황제 이름이 들어간 글자는 그대로 쓰면 안된다고 한다. 글자에서 부수 하나씩을 빼고 써야 한다나?

 
탁본하는 모습

맨 마지막 방에서 탁본을 하고 있다. 그 자체가 관광거리이기도 하지만 그 탁본한걸 판다.
가이드 말대로 이 중요한 문화재를 이렇게 하는 나라는 중국 밖에 없을 거란다.
탁본 한장에 100위안이라나?
진품이라 의미가 있단다. 관심있는 2인조 녀자 팀에서 한장씩 사서 들고 다닌다.

밖으로 나오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도 차다.
정말이지 관광이고 뭐고 찜질방에 가면 딱 좋겠다.
비림 안에 있는 전시실에 들어가니 이런 저런 문화재가 있다.

 
비림 옆의 전시실의 불상들

 
석대효경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림 현판이 붙어있는 비각

이 비림이 비(碑)자에 맨 위 부수 하나가 없다.
가이드 설명으로는 중국인들이 아편에 중독되는걸 막기 위해 영국아편을 태운 임칙서를 영국 측에 서 압력을 가해 귀양을 보냈다고 한다.
자기 꿈이 실현되면 못 쓴 한 부를 마져 쓴다고 그리 적고 갔다는데 역사학자의 설명에는 비림 아래 밭전(田)이 농부를 상장하는데 그 농부를 짓누르면 안된다고 일부러 안 썼단다.

 
비림을 나가면서

 
진료소의 모습

가는 중간에 옥을 파는 공장으로 간다.
가면 다 들어가야 하고 일정시간 머물러야 한다. 가이드는 가는 차 안에서 옥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한다. 즉, 쇼핑을 부추기는 멘트다.
그래도 이 가이드는 사라고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
녀자들이 많지만 대부분 별 관심이 없는것 같다.
눈 밝은 젊은 언니가 천자옥이라나 하는 옥 목걸이를 오만원에 샀다.
이 옥이 네팔에서도 모조품이 많이 팔리고 있었다.
그때 모조품이 산에서는 한개 천원, 내려오니 천원에 두개던가?
옥은 몸에 지니면 건강에도 좋다고 하는데 진품은 불에 비쳐보면 투명하단다.

 
화청지 경내-아곳은 예전 모습같았다.

점심으로 만두를 먹는다더니 관광객이 몰려 식당이 복잡한가보다.
바로 앞 화청지부터 관광을 한단다.
화장실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은 화장실이 다 잠겨있어 결국 중국식 칸막이만 있는 화장실을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화청지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로 더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그때 궁궐을 없고 새로 지어놓은 궁궐은 드라마 세트장같이 참으로 어설프다.
그냥 빈곳으로 놔두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화청지 뒤쪽으로 오간청이란 건물이 더 역사적으로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서안사변이 일어났던 곳

장개석 총통이 부하들에게 감금되어, 중국 현대사의 한 분기점인 서안사변이 일어났던 곳이라는데 5간으로 되 있어 오간청이란다.
장학량에게 감금되었던 장개석을 부인 송미령이 와 일단 국공합작을 하기로 해 일본군을 몰아내고 그 다음 통일을 하기로 했단다.
결국 이 싸움에서 져 장개석은 대만으로 피신하게 되었고 이때 원한으로 장학량을 끌고 가 투옥 했다던가?
이곳 오간청은 그때의 총알 자국이 남아 있다. 

 
화청지내 온천이 나오는 곳

다시 화청지로 와 추운날 따뜻한 온천물에 손을 씻는다. 가이드가 그 앞에서 관리하는 사람에게 얼마간 팁을 주는것 같다.
황제의 목욕탕도 보고 양귀비의 목욕탕도 보았다.
이곳에 일반인 대상으로 목욕을 할 수 있는 곳도 운영하고 있었다.

점심은 만두로 유명하다는 교자연이다.
10여 가지의 만두가 그야말로 숨차게 나온다.
일인당 한가지를 한개씩 이라는데 단체손님들고 복잡하고 계속 만두를 가져다 주니 제대로 맛을 음미하기도 힘이 든다.
아무튼 원숭이 처럼 생긴것, 진주같은 모양...

온갖 모양의 만두가 나오는데 맛은 다 비슷하도 전반적으로 좀 짠듯 하지만 그런대로 맛이 있다.
하긴 어른 9명으로 구성된 우리 테이블은 뭐던 잘 먹는다.
나오는 음식 대부분을 깨끗하게 먹어 치우는데 가족 테이블은 학생들이 잘 못먹는 눈치다.
그래서인지 이 팀은 고추장, 라면, 김치, 심지어 개떡까지 만들어서 라면 박스 가득 부식을 챙겨가지고 다니고 곳곳에서 고구마, 과일 등을 수시로 사서 먹고 나누어 주고 한다.

진시황릉 가는 길에 북한에서 경영하는 상점에 또 들렸다.
이곳에서 시베리아에서 난다는 차가버섯을 판매하고 있다. 이곳이 시중보다 싸다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아 사기가 그렇다.
그리도 우황청심환, 개성인삼도 파네?

진시황릉으로 간다.
몇명은 안 올라간단다.

 
관광객을 위한 공연

올라가는 길에 간단한 공연을 하는데 날이 추워서 구경하는 사람이나 공연하는 사람이나 다들 고생이다.
10여분 계단으로 올라가니 무덤이라네?

 
예전엔 능 정상(!)에서 배드민턴을 쳤다나?

능에 올라서니 날씨가 뿌옇다.
관광객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다.
외국에서 만나면 전혀 반갑지 않은 내나라 동포들...
너무 많아서 일거다...
 
진시황릉을 느래서며...

이번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진시황의 병마용갱으로 간다.
차를 내려서 가는 길 초입에 장처럼 기념품 가게가 즐지어 있다.
역시나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는 상인도 많은가보다. 그나마 오늘 날씨가 나빠 장사꾼이 많지 않은것 같다.
천마총보다 더 많이 걸어들어가다 와장창 넘어졌다.
안 아프냔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아프기만한가 쪽팔리기까지 한데...

표는 우리나라 공중전화카드 같다.
이걸 하나씩 넣고 들어가야 한다. 가이드를 믿지 못해서 이리 만든것 같다.
하긴 입장료 자체가 만만치 않긴 하다.

병마용 구경하기 전 영화를 보라고 한다.
병마용이 발견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사진에서보다 실제로 보니 감동이 없다. 여기 인형들도 다 모조품이다...

실제로 병마용을 보니 사진보다 훨씬 못하다.
발굴된 곳에 세워놓은 인형들은 다 가짜고 진품 몇개만 유리관 안에 있다.
하긴 이런 중요한 문화재를 저렇게 늘어놓겠는가?

 

 
이 안에 인형들이 있다고 한다.

발굴해 놓으면 채색한 인형들이 색상이 변할까봐 일부러 발굴을 미루고 있단다.
가운데 넓은 길은 공사를 위해 후대에 만든거란다.
아무튼 이렇게 아주 일부만 보여줘도 관광객이 꼬여드는데 서둘러 발굴할 필요가 전혀 없지 싶다.
십여년전 우리나라에서도 진시황의 병마용 전시회를 한 기억이 있는데 사실은 그때도 전시품도 다 복제품이라 욕을 얻어 먹었던것 같다.

 
진품은 정말이지 정교하고 예술적 가치도 높아 보였다.

흙으로 빚어진 사람들을 보면 복장, 신발 자세 등에 따라 지위, 하는일, 혈통 등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섬세하게 잘 만들어졌다. 채색도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1974년 우물을 파다 우연히 발견했고, 그게 진시황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의 놀라움은 가히 상상이 간다.
1,2호분은 불에 타 거의 다 파괴가 되었는데 누구의 소행인지는 확실치는 않고 이런 저런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병마용 박물관을 나서기 전 지하 전시실에서는 발굴된 몇몇 문화재와 다른 나라에서 출간된 병마용 화보집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진시황의 저승길을 안내해 준다는 말. 우산은 유사시 방패로 사용했다나?

진시황릉을 보고 나니 벌써 해가 진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나보다.
몇명은 내복을 사서 입기까지 했다.
저녁을 어제 점심 먹었던 그 식당으로 또 가네?
점심보다 몇가지 반찬이 더 나온다. 배도 고프고 해서 열심히 먹었다.
공하에서 가이드는 우리를 넣어주고 헤어졌다.

공항 면세점은 별로 볼게 없다.
모처럼 중국 여행기인 책을 보고 있는데 우리 타는 게이트가 바뀌었다네?
가만히 있다 비행기 놓칠뻔 했네?
무사히 타고 정시에 출발에 장가계 도착.
역시나 장가계도 춥고 비가 내렸나보다.

오동통한 가이드가 우릴 기다린다.
헌데 가족팀 막내이모 여행가방 손잡이가 떨어졌단다.
이 집안 며느리가 항의를 했더니 빨간 새 가방으로 교환을 해 주네? 다들 감탄을 한다.
아울러 중국도 많이 달라졌다 싶다.
역시 사람은 똑똑하고 볼거다.

 
우리가 2박할 장가계 호텔

시간이 늦었다.
호텔에 가서 방 배정을 받고 짐을 풀었다.
서안 호텔보다 수준이 떨어진다. 이곳 장가계엔 호텔 이름 붙일만한게 없단다.
이 정도면 훌륭하단다.
자상한 가이드는 일일이 방을 돌아봐 준다.
촌사람인줄 아나보다...

사족-자세하게 쓴 내용은 책을 보고 쓴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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