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외.../마라톤

동마에서 4시간 30분 벽을 깨다 (3.18)

산무수리 2007. 3. 19. 18:51
'마음' - 곽재구(1954~ )

아침 저녁

방을 닦습니다

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이며

흙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닦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작은 창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움켜쥔 걸레 위에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쏟아붓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찾아와 앉을 그 자리

언제나 비어 있지만

언제나 꽉 차 있는 빛나는 그 자리입니다.

아침 저녁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한 군데. 나의 중심인 한 자리. 그곳은 외지고 남루한 틈새. 오늘도 당신 위해 호오~ 숨결 불어 그 자리 치우고 닦아둡니다. 먼 훗날 당신을 향한 나의 오랜 묵언과 당신을 읽어 온 묵독이 햇살에 녹는 눈송이처럼 자취 없어질 때까지. 내 사랑은 비워두는 만큼 꽉 차오나니, 오늘 내가 닦아둔 그 자리에 내일의 당신이 오롯합니다. <김선우.시인>




드림팀 다시 만나다~


응원 나와 준 여산과 함께

작년 참담하던 동마의 기억. 그 기억 덕(!)분에 연습이라는 걸 하게 된 나에겐 정말이지 약이 된 대회.
같은 대회를 처음으로 두번째 뛰는 대회이기도 한 나 나름대로 의미있는 이 대회.
문제는 년 2회만 풀 겨우 뛰던 사람이 2주 전 풀이 과연 득이 될까 해가 될까...

요즘 일 때문에 연습은 커녕 집에도 잘 못 들어오는 남푠이 토요일 저녁에 와서 밥도 안 주고 늦게 왔다고 심술을 부린다. 초밥을 사다 주니 먹고 자는데 난 그때부터 찰밥하고 미역국, 나물을 했다.
왜? 생일날 집에 못 와 늦었지만 생일 미역국을 끓여 주느라.. 역쉬나 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자야 하는데 결국 늦게 자게 되었다. 헌데 이번엔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작년에 비해 푸근한 날씨. 그래도 긴팔, 긴바지를 입기로 했다.
조금 늦장을 부리다보니 바쁘다. 차 한대 놓치고 다음차를 타니 계속 늦어진다. 이촌동 가는데 여산의 전화.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온다더니 벌써 도착했단다. 산이슬이 와 있으니 우선 먼저 만나라고 했다.
전철 안에는 2/3가 마라톤 참가자와 그 관계자들. 대부분 추리닝에 모자, 운동화 패션이다. 등산객들은 이렇게 이른시간엔 그리 많지 않다. 아마 오늘 산도 일요일 치고는 헐렁했을것 같다.



이럴때 아니면 내가 언제 풍선 단 관계자하고 사진을 찍어보리... 그것도 얼짱, 몸짱들과...

7시 넘어 시청에 내려 화장실 들렀다 부지런히 광화문에 가 여산과 산이슬과 그 페이싱 팀을 만났다.
차회장, 천관장님이 산이슬과 E그룹 4:50 페이싱을 한단다. 같은 그룹이라 함께 달릴 수 있을것 같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절대로 같이 달릴 수 없는 멤버들이다.
산이슬은 주변 곳곳에 팬들이 많아 인사 받느라 바쁘다. 남푠은 먼저 뛰고 먼저 가야 한다고 해서 아침에 같이 만나 사진 한장 겨우 찍고 바로 B그룹으로 갔다.
여산이 사진을 찍으니 내 디카는 꺼내 보지도 못했다.




몸풀기 체조하기

7;30까지 짐을 맡겨야 한다. 바쁘게 짐 맡기고 추워하니 산이슬이 배낭 안에서 잠바를 꺼내준다. 그래서 덕분에 춥지않게 입고 있었다. 자기도 반바지에 추울텐데...
울트라 연습겸 뛰는 페매라 배낭까지 매고 뛴단다.
역시 마라톤 대회 사회는 배동성이다. 헌데도 내가 두번째여서인가?
작년 대회에 비해 차분하다. 잘은 모르겠는데 작년엔 너무 추워서인가 어수선하고 사람도 더 많은것 같이 느껴진 다.올해는 좀 안정된 느낌이다.





8:00 출발하고 차차 우리도 세종문화회관쪽으로 이동을 한다. 막판 화장실 다녀오고 잠바 벗어주고 출발한 시간이 8:17.
산이슬과 패메팀과 나란히 뛰어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말 시키는 사람, 아는체 하는 사람들. 이젠 산이슬과 차회장이  유명인사가 되 주로에서 인사 받기 바쁘다.
마라톤 하는 사람들은 사교도 주로에서 하는걸 보고 웃음만 난다. 하긴 산꾼들은 산길에서 사교가 이루어 지지만 그래도 말 할 때 숨 차지는 않으니까...

후미그룹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줄 몰랐다는 산이슬.
계속 말 시키고 페이스가 너무 빠르다고 따지는 사람들. 이에 탄력적으로 진행한다는 차회장의 멘트. 빨리 뛰는 사람 만큼이나 천천히 뛰는 사람이 더 힘들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오바페이스 하지 않기위해 페이스 조절을 하는것 같다.
난 달리는 동안 시계 보지 않기로 했다. 페이스대로 뛸 자신도 없고, 욕심 낸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그냥 내 몸에 맞게 뛰는게 작전 아닌 작전이다.
그리고 은계언니의 말씀을 진리삼아-아무리 천천히 뛰는 사람도 걷다 뛰다 하는 사람보다는 낫다-걷지 않고 뛰는게 작전이다.
남대문을 올해는 돌지 않고 옆으로 해서 을지로 5K까지 산이슬과 함께 뛰었는데 근처에 사람이 너무 많아 자꾸 어깨와 팔을 건드린다. 나 혼자 독차지 해서는 안될것 같다. 그래서 먼저 가겠노라 하고 앞서서 뛰기로 했다.

작년 주장각과 함께 뛰면서 초반 너무 빨리 뛰어 내심 불안했고 결국 둘다 걷다 뛰다 하면서 개죽을 썼다. 그때를 생각하며 내 수준에 맞는 속도로 뛰느라 노력했다. 남들 빨리 갈때 나도 가고 싶고 자꾸 추월하는 사람을 보면 쫓아 가고 싶기도 했다. 허나 마라톤은 초반 페이스보다 후반 페이스가 더 중요하다는걸 이제는 조금 알것도 같다.
청계천 돌아 종로로 들어서니 주장각과 헤어진 지점이 나타난다. 그때 헤어지지 않고 끝까지 서로 격려해 가면서 뛰었다면 기록은 좋지 않을지라도 그나마 즐겁게 달렸을텐데 하는 생각과 이 길을 올해는 혼자 뛰어야 한다는 외로움에 마음이 울컥 했다.
한 아자씨, 이 페이스면 어느정도 뛰난다. 아마 30분 대 일거라고...
서울마라톤에서 날 봤단다. 발소리가 듣고 알았단다. 발소리가 좀 크죠?
서울에서 31K에서 자길 추월 해 갔다면서 빨라 앞서 가라신다.
나도 앞서 가고 싶다... ㅎㅎ

4:40 페매를 잡았고 동대문 지나서는 눈 앞에 4:30 페매도 보인다. 전엔 페매를 보고도 쫓아 갈 수가 없었는데 쫓아 갈것도 같다.
20K 넘어 간식을 준다. 파워젤 하나 미리 먹었고 물 마셨고 바나나, 초코파이까지 하나씩 먹었다. 그리고 뛴다.
발바닥도 아파오고 발가락도 아파온다. 그래도 작년에 초반부터 아팠던 팔은 괜찮다. 좋은 징조같다.
작년에 걸었던 구간이 나오기 시작한다. 올해는 걷지 않고 뛰어 가니 그 길도 정겨워 보인다. 작년엔 아주 지긋지긋해 보였는데...
이봉주가 1등으로 역전승 했다는 소식을 응원객들이 알려주며 힘을 내란다. 한국선수가 우승한 대회를 뛴다고 생각하니 기분도 좋고 새롭다.
둘이 동반주 하는 한 남자가 날 보고 10K 부터 쫓아왔는데 자세가 안정되고 페이스가 꾸준하단다. 아마 처음 뛰는 사람 동반주를 해 주는것 같다.
아 예... 이럴때 뭐라 해야 하나?
여자가 많지 않으니 이런 인사도 듣는다. 뒷태가 너무 고운가? ㅎㅎ
산이슬네 페이싱팀인 천관장은 남자인데 여자보다 더 곱고 머리까지 길어 뒤에서 여자인줄 알고 막 쫓아 오다 앞에서 보고 실망 한다던가? 그럼 달리기를 하도 많이 해 가슴이 없어졌다고 농담까지 한다나?
밤에 달리기 하면 운전하는 사람들이 자꾸 쫓아온단다. ㅎㅎ
춤도 한 춤 춰 광화문에서 음악이 나올때 몸 흔드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공연 할 때 기회되면 오란다.
하긴 대회를 다녀보니 특징적으로 생긴 여자들은 얼굴은 몰라도 뒷모습과 옷을 보면 누군지 알것도 같다. 애주가 티를 입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 이기도 하고...
동대문 팀인 한 여자도 춘마에서 봤고 서울마라톤에서도 봤는데 오늘도 역시나 내 앞에서 뛰다 결국 추월 당했다. 춘천에서는 그래도 나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는데 이번엔 아니다...

작년의 회한을 없애기 위해 30K 가며 놓쳤던 4:30 페매를 간식대에서 잡았다. 웬지 바나나, 초코파이 냄새도 싫다. 그래서 이온음료만 마시고 그냥 달렸다.
작년 걷고 있는데 지나가는 4:30, 40분 페매를 바라보았던 참담하던 기억....
뛰다 달리다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그래도 대부분은 뛰는 사람들이다. 조금씩 페이스가 늦춰지는 사람도 있고 날 추월해 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추월 당하는 사람이 조금 더 많은듯 하다.
파워젤도 마지막으로 먹었고 이 페이스대로 유지하면 30분 벽을 깰 수도 있을것 같다. 불가능 할 줄 알았는데....
작년엔 40K 넘어서도 걸었다. 올해는 멋지게 뛰어야지...
애주가는 현수막만 걸려있고 응원팀 한명도 못봤다. 30 넘은 지점에 재작년 함께 첫 풀을 뛰고 시집가면서 이사간 홍당무만 보았다.

잠실에 가까울 수록 응원소리가 커져간다. 드디어 막바지인가보다.
얼마 안 남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후회없는 대회로 기억하고 싶다.
운동장 주로에 들어섰다. 기록 갱신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달렸다.
전광판을 보니 30분 벽은 확실하게 깬것 같다~
아,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죽 쒔던 대회에서 나의 신기록을 세웠다는 이 기쁨.

조금 있으니 4:30 페매가 들어온다. 거의 시간에 맞춘것 같다.
조금 기다리면 산이슬이 들어올것 같아 골인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니 참 재미있다.
작년처럼 추우면 기다려 달라고 해도 못 기다릴텐데 오늘은 날씨가 따뜻해 기다리는 일이 즐겁다.
저마다 마지막 사진을 의식한 포즈들. 그리고 기록에 상관없이 완주했다는 그 기쁜 표정들.
이때 만큼은 -3 주자 부럽지 않아 보인다.
누군가 골인 지점은 정신은 빠져 나가고 육신만 들어온다고 표현했던가?
드디어 산이슬 페매팀 셋이 나란히 손을 들며 들어온다.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 기뻤다. 함께 축하해 준다.

 
기록 단축의 공로자 산이슬과


산이슬 페이팅 팀-광화문 팀원(영광이옵니다~)

친구 덕분에 달리기가 더 즐거워 졌고 연습도 부지런 떨게 되었다.
대회 와서 친구도 만나고 기록단축이라는 큰 상까지 챙겼다. 어찌 좋지 않을까?

여산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들어오는건 못 봤고 산이슬 팀은 보았단다. 청진동에서 아침먹고 오니 이봉주가 1위로 골인하는 장면을 봐서 기분 좋았단다.
헌데 -3 주자가 1000명도 넘는다며 놀란다. 어느 회사는 떼거지로 -3를 하더란다.
산이슬 차회장 왈, 그 회사는 마라톤 결과를 인사 고과에 반영하는 회사라고 한다.



칩을 신발에서 풀러주는 자봉을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하고 있다.
산이슬이 연하의 남자한테 서비스 받는다고 웃긴다. ㅎㅎㅎ
칩 반납하고 메달 받고 짐 찾는데 한참 나가야 한다.
짐 찾고 옷 갈아입고 함께 광화문 팀에 가서 점심을 얻어 먹었다.
코디님이 손수 막걸리를 서빙하고 계시다.
애주가도 어딘가 있을텐데 모임에 잘 나가지 않아 가기가 좀 그렇다.
산이슬네 버스는 4시 출발 예정이란다.
남푠과 통화하니 연습 못했는데 생각보다는 기록이 좋다. 3.32.33. 나랑 -1 기록이다.
홍미모의 문자, 첨 풀을 뛰었는데 4시간 2분. 흐미, 겁나부려....
-4 할뻔 했는데 아깝네...


광화문 모임에서 밥먹기

기록단축 턱을 내라는데 주변에 마땅한 곳이 없다. 배도 이미 부르고...
시원한 녹차라떼를 한잔씩 마셨다.
차회장이 은근히 웃긴다. 여산과 날보고 교육달 서울멤버로 등록 하란다. ㅎㅎ
족저근막염으로 기록단축을 못하고 페이싱을 주로 하는데 이제는 선수양성을 해야 한다나 하면서 또 웃긴다.
술이나 먹을걸 권해 안 받으면 상처 받는다고 협박이다.
탄천에 차가 있단다. 그래서 같이 탄천에 가니 거기도 판이 벌어져 있어 또 빈대가 되어 얻어 먹고 마시고....
같은 라이센스가 있어 역시나 통한다. 더구나 달리기라는 공감대가 있으니 처음 만났어도 부담이 없다.
산이슬 블로그에서 많이 본 얼굴과 이름들.
대나무, 용하장군, 푸른하늘, 뛰고파, 솔찬히.....

산이슬과 헤어지고 여산과도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데 피곤한데 잠이 잘 오질 않는다.
오늘도 역시나 목간통에 들렸다 집에 갔다.
물집이 세군데 생겼지만 이 고통 쯤이야.....

후일담-애주가도 -3 주자가 4명이나 나왔다. 여자 고수는 -4 할 뻔 했는데 몇초 부족했다.
대부분 자신의 기록을 경신한것 같다.
난 여자 당 서열이 하나 올라갔다~ ㅎㅎ(기록순, 나이로는 거의 지존)


이봉주 골인 사진이랍니다~

사진-산이슬, 여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