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KT art hall (2/6) 주유소 / 윤성택 단풍나무 그늘이 소인처럼 찍힌 주유소가 있다 기다림의 끝, 새끼손가락 걸 듯 주유기가 투입구에 걸린다 행간에 서서히 차오르는 숫자들 어느 먼 곳까지 나를 약속해줄까 주유원이 건네준 볼펜과 계산서를 받으며 연애편지를 떠올리는 것은 서명이 아름다웠던 시절 끝내 부치지 못했..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2.11
한산 월례회의 (2/9) ‘조용한 일’-김사인(1955~ )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 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미처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내 적막의 발 아래 천 길로 떨어지는 나락을 조용히 지탱해 준 당신이 있었음..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2.10
마리안느 정원에서 (2/2) 어느새 / 최영미 사랑이 어떻게 오는지 나는 잊었다 노동과 휴식을 바느질하듯 촘촘히 이어붙인 24시간을, 내게 남겨진 하루하루를 건조한 직설법으로 살며 꿈꾸는 자의 은유를 사치라 여겼다 고목에 매달린 늙은 매미의 마지막 울음도 생활에 바쁜 귀는 쓸어담지 못했다. 여름이 가도록 무심코 눈에 ..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2.04
2009 몸+몸 전시회를 보고 (1/30) '젊음을 지나와서’ 부분 - 김형수(1959∼)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추억은 사치처럼 화사한 슬픔 뒤에 숨고 아무 낙이 없을 때 사람들은 배운다 고독을 견디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보아라, 한 차례 영광이 지나간 폐허의 가슴에선 늦가을 햇살처럼 빠르게 반복되는 희망과 좌절이 다시 또 반복되는 기쁨..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1.31
이에스 리조트에서 놀기 (1/17) ‘아파트에서 1’-이원(1968~ ) 한 남자의 두 손이 한 여자의 양쪽 어깨를 잡더니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살 속으로 쑥쑥 빠졌다 여자가 제 몸속에 뒤엉켜 있는 철사를 잡아 빼며 울부짖었다 소리소리 질렀다 여자의 몸에서 마르지 않은 시멘트 냄새가 났다 꽃 피고 새가 울었다 도무..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1.21
동계서락 프로젝트 3 (하산 후) 오늘밖에 없다는 소리 / 이생진 이젠 된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소리 50대 60대 70대에서는 그것을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젠 오늘이 마지막이고 여기가 마지막이고 네가 마지막이라는 말이 마지막이다 ‘내일이 없다고 생각하라’ 며 덤빈 적이 있지만 그건 언제고 작심삼일 나흘 닷새 지나면 나사처럼 ..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1.21
서울국제사진 페스티벌 (1/6) 밤을 지새우며/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조인스 블로그에서 사진전 관람권이 당첨. 1/15까지라고 해 어영부영..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1.09
1회 졸업생 (1/3) ‘관계’ -손현숙 (1959~ ) 도둑맞아 어수선한 내 집에 앉아 나는 왜 그 흔한 언니 하나 없는 걸까, 무섭다는 말도 무서워서 못하고 이불 둘둘 말아 쥐고 앉아서 이럴 때 느티나무 정자 같은 언니 하나 있었으면. 아프다고, 무섭다고, 알거지가 되었다고 안으로 옹송그리던 마음 확 질러나 보았으면. 언니, ..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1.07
1월1일 달력을 떼어 내며 - 이해인 묵은 달력을 떼어내는 나의 손이 새삼 부끄러운 것은 어제의 시간들을제대로 쓰지 못한나의 게으름과 어리석음 때문이네 우리에게 늘 할말이 많아 잠들지 못하는 바다처럼 오늘도 다시 깨어나라고멈추지 말고 흘러야 한다고 새해는 파도를 철썩이며 오나 보다 잘때는 일찍 ..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