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이외.../2022일기 40

독서모임 (어린왕자, 12/20)

이생진 시 읽는 건 아주 좋아 짧아서 좋아 그 즉시 맛이 나서 좋아 나도 그런 생각하고 있었어 하고 동정할 수 있어서 좋아 허망해도 좋고 쓸쓸하고 외롭고 춥고 배고파도 그 사람도 배고플 거라는 생각이 나서 좋아 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누가 찾아 올 것 같아서 좋아 시는 가난해서 좋아 시 쓰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서 좋아 그 사람과 헤어진 뒤에도 시 속에 그 사람이 남아 있어서 좋아 시는 짧아서 좋아 배고파도 읽고 싶어서 좋아 시 속에서 만나자는 약속 시는 외로운 사람과의 약속 같아서 좋아 시를 읽어도 슬프고 외롭고 시를 읽어도 춥고 배고프고 그런데 시를 읽고 있으면 슬픔도 외로움도 다 숨어 버려서 좋아 눈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눈에 파묻힌 집에서 사는 것 같아서 좋아 시는 세월처럼 짧아서 좋아..

안산 자락길 걷고 송년회 하기 (12/10)

강영은 놀란 흙 밖에 서 있는, 나는 노을을 들춘 마른번개,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당신을 붙들고 싶지 나는 자줏빛 스카프를 두른 여자, 당신의 목덜미를 휘감고 싶지 나는 무덤 속의 고요, 눈썹 아래 당신을 끌어안지 나는 어두운 숲 속의 은사시나무, 바람의 귓바퀴에 대고 속살거리지 나는 한낮의 어지러움, 촘촘히 볼우물에 고이지 나는 젖몸살 앓는 싹눈, 나풀거리는 몸짓으로 말하지 나는 독침, 말랑거리는 바닥에 착지하지 나는 높새바람, 당신의 쇄골, 부드러운 능선을 파고들지 나는 저장해둔 감자, 당신의 심장부에 핀 푸른 솔라닌, 치명적인 꽃이지. -1부 행사: 안산 자락길 걷기 (5명) 지난달 영미 사무실 시네라처 방들이 전 인왕산 산행을 했고 헤어지며 오늘 송년회를 하기로 정했다. 1부 행사로 안산 자락길을..

비산동 회동 (11/30)

이정하 그대가 어느 모습 어느 이름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어도 그대의 여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 여울되어 어지럽다 따라 나서지 않은 것이 꼭 내 얼어붙은 발 때문만은 아니었으리 붙잡기로 하면 붙잡지 못할 것도 아니었으나 안으로 그리움 삭일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을 그대 향한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다 잎잎이 그리움 떨구고 속살 보이는 게 무슨 부끄러움이 되랴 무슨 죄가 되겠느냐 지금 내 안에는 그대보다 더 큰 사랑 그대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그대가 푸르디푸르게 새움을 틔우고 있는데 비산동 주공아파트에 함께 살면서 비가 오면 우산도 대신 가져다 주고 운동회날은 음식도 준비해주던 이웃사촌들. 주공은 재건축 되 철모는 그 자리에 살고 강모는 박달동으로 이사갔고 나는 평촌에서 살고 성모는 평택에 산다고 했다.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