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설기며 주왕지맥 졸업하다 (주왕산, 12/21) 크고 헐렁헐렁한 바지 - 장석주(1955~ ) 어렸을 때 내 꿈은 단순했다. 다만 내 몸에 꼭 맞는 바지를 입고 싶었다 이 꿈은 늘 배반당했다 난 아버지가 입던 큰 바지를 줄여 입거나 모처럼 시장에서 새로 사온 바지를 입을 때조차 내 몸에 맞는 바지를 입을 수가 없었다. (…) 작은 옷은 곧 못 입.. 산행기/2014 산행 2014.12.23
모처럼 넷이 만나 산행을 하다 (삼성산, 12/14) 내 작은 비애 - 박라연(1951~ ) 소나무는 굵은 몸통으로 오래 살면 살수록 빛나는 목재가 되고 오이나 호박은 새콤달콤 제 몸이 완성될 때까지만 살며 백합은 제 입김과 제 눈매가 누군가의 어둠을 밀어낼 때까지만 산다는 것 그것을 알고부터 나는 하필 사람으로 태어나 생각이 몸을 지배.. 산행기/2014 산행 2014.12.14
침엽수와 활엽수를 넘나들며 주왕기맥 가기 (영월끝-윤지교, 12/7)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1970~ )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 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 산행기/2014 산행 2014.12.14
영등회와 영봉가기 (북한산, 12/6) 잃어버린 것과 가져온 것 - 곽효환(1967~ ) (…) 차에서 첫걸음을 내디딘 일행에게 땀에 전 남루한 옷차림의 한 작은 소녀가 수줍게 들꽃 한 송이를 내밉니다 구걸이 아닌가 하는 당혹감에 잔뜩 경계심을 풀지 못한 낯선 동양인 사내에게 자신을 닮은 꽃을 건넨 소녀는 이내 등을 돌려 저만.. 산행기/2014 산행 2014.12.12
영춘기맥 졸업산행 (영월 태화산, 11/16) 벽지는 나무다 - 강병길(1967~ ) 벽지는 색이 바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다 뿌리와 잎을 지녔던 나무였다고 보여주는 것이다 안개와 비를 맞는 숲에서 새와 짐승들의 산에서 살아있고 싶은 것이다 그늘에 갇혀 그늘을 만들지 못하는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고 고육을 .. 산행기/2014 산행 2014.11.28
가을지리 2 묵뫼 - 신경림(1936~ ) 여든까지 살다가 죽은 팔자 험한 요령잡이가 묻혀 있다 북도가 고향인 어린 인민군 간호군관이 누워 있고 다리 하나를 잃은 소년병이 누워 있다 등 너머 장터에 물거리를 대던 나무꾼이 묻혀 있고 그의 말 더듬던 처를 꼬여 새벽차를 탄 등짐장수가 묻혀 있다 청년단.. 산행기/2014 산행 2014.10.12
가을지리 1 (10/1~3) 그늘의 발달 - 문태준(1970~ )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 감나무가 너무 웃자라 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 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 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 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 우리 집 지붕에는 폐렴 같은 구름 우리 집 식탁에는 매끼 묵은 밥 우리는 그늘을 앓고 먹는 .. 산행기/2014 산행 2014.10.12
영등회 퇴임 기념산행 (10/9, 북한산) 2호선 - 이시영(1949~ ) 가난한 사람들이 머리에 가득 쌓인 눈발을 털며 오르는 지하철 2호선은 젖은 어깨들로 늘 붐비다 사당 낙성대 봉천 신림 신대방 대림 신도림 문래 다시 한 바퀴 내선순환을 돌아 사당 낙성대 봉천 신림 가난한 사람들이 식식거리며 콧김을 뿜으며 내리는 지하철 2호.. 산행기/2014 산행 2014.10.12
주왕지맥에서 가을을 만나다 (모릿재-하일동, 10/5) 곰삭은 젓갈 같은 - 정희성(1945~ ) 아리고 쓰린 상처 소금에 절여두고 슬픔 몰래 곰삭은 젓갈 같은 시나 한 수 지었으면 짭짤하고 쌉싸름한 황석어나 멸치 젓갈 노여움 몰래 가시도 삭아 내린 시나 한 수 지었으면 어렸을 때 마포나루로 새우젓을 사러 갔었다. 6월에 담은 육젓이 가장 비쌌.. 산행기/2014 산행 2014.10.10
프로젝트 끝내고 집으로~ (돌산지맥2) 쉬었다 가자 - 김형영(1945~ ) 내가 날마다 오르는 관악산 중턱에는 백년 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요 내 팔을 다 벌려도 안을 수가 없어서 못이긴 척 가만히 안기지요. 껍질은 두껍고 거칠지만 할머니 마음같이 포근하지요. 소나무 곁에는 벚나무도 자라고 있는데요 아직은 젊고 허리.. 산행기/2014 산행 2014.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