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4년

공작새 대신 닭이 뛴 관악산 야간산행(11/24)

산무수리 2004. 11. 25. 12:51
정병근(1962~ ), 단호한 것들

나무는 서 있는 한 모습으로
나의 눈을 푸르게 길들이고
물은 흐르는 한 천성으로
내 귀를 바다에까지 열어 놓는다

발에 밟히면서 잘 움직거리지 않는 돌들
간혹, 천길 낭떠러지로 내 걸음을 막는다
부디 거스르지 마라, 하찮은 맹세에도
입술 베이는 풀의 결기는 있다

보지 않아도 아무 산 그 어디엔
원추리 꽃 활짝 피어서
지금쯤 한 비바람 맞으며
단호하게 지고 있을 걸

서 있는 것들, 흔들리는 것들, 잘 움직이지 않는 것들,
환하게 피고 지는 것들
추호의 망설임도 한점 미련도 없이
제 갈길 가는 것들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들


야간산행 바람을 넣었던 바람꽃은 당분간 잠수를 한단다.
헌데 왜 그 대타가 나인가?
꿩도 아닌 공작새 대신 닭?
공작새는 늑대 둘과는 산행을 못한다더니 닭은 늑대에게 해당사항도 없나보다.
주말 산행에 못오면 야간산행에는 꼭 온다던 김상우도 역시나 안온다.
약속을 자주 어기는 사람을 믿을 수가 없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안하는게 좋겠지.....

아무튼 5시 사당에서 만났다.
헌데 오늘도 지남철은 좀 일찍 도착해서 먼저 산행을 시작한단다.
진짜 반칙이다, 반칙.
이슬비와 둘이 부지런히 가는데 오늘은 영 먹거리가 부족하다.
퇴근길에 사 온 만두와 과자, 그리고 이슬비가 산 전.



17:20 등산로 입구 도착. 이슬비 장비착용.
난 등산화와 랜턴, 장갑만 달랑 들고왔다.
산에 간다고 말 안하고 온지라 눈치가 보여서....
그나마 어두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올라가려니 오늘도 5분타령을 하는 이슬비 툴툴댄다.
부지런히 정자에 가도 없다, 약수터에 올라가도 지남철 안 보인다.



만났다.

하마바위를 지나니 마당바위에서 불빛이 깜박거린다.
부지런히 도착을 하니 좌선을 하고 있다.
오늘따라 배가 고프다.
만두, 전, 지남철의 겁나는 도너츠를 하나 먹으니 배가 부르다.
오늘 이슬비 처음으로 교재 준비를 안 했단다.
지남철의 독한교과서를 꺼내며 걱정을 하니 이슬비 그래서 더 좋단다.
지남철 왈, 나도 독한게 좋아~~~
진짜 못말리는 장학생들이네.....

겨울치고는 포근한 날씨다.
혈압때문에 몸 사리는 지남철도 날이 포근하다고 좋아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선두에 서면 누구나 발이 빨라지는데 빨라지면 늘상 이슬비가 툴툴댄다.

군대시절 60KG의 짐을 지고 60Km의 천리행군을 1달을 해 봐서 자긴 장거리는 자신 있단다.
단, 속도가 빠르면 안된단다. 오로지 지구력, 지구력만 자신 있단다.
겨울방학 지리산 동계종주를 하자고 한다.
짐을 질 자신이 있고 믿을만한 가이드도 책임지고 구한단다.
지남철, 겨울엔 혈압 때문에 자신없고 여름엔 꼭 해 본단다.

누군들 지리산 종주를 하고 싶지 않을까. 더구나 동계종주야 하고 나면 얼마나 뿌듯할까.
헌데 하계종주도 올해 겨우 했는데 동계종주를 한다는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산행은 욕심만으로 되는건 아닌지라.....



연주암에서

단촐한 멤버 덕에 19:30 연주암 도착.
툇마루에 앉아서 잠시 남은 음식을 먹는다. 커피도 한잔 빼 마시고....
과천향교길은 계단이라 싫다는 이슬비.
허나 밤에는 안전한, 확실한 길로 가자고 둘이 우겨서 하산을 한다.
오늘따라 야간산행을 오는 사람들이 많다.
삼삼오오 그룹으로 시간이 늦었는데도 많이들 올라온다.
수능이 끝나서인지 연주암은 의외로 한적하다.



연주암 툇마루에서

지남철의 글솜씨가 너무 아깝다고 컬럼을 만들라고 부추긴다.
알고보니 ㅅ대 학보사 기자출신이란다.
어쩐지....
학교때 쓴 시 노트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단다.
지남철 컬럼 만들면 나와 이슬비는 완전히 깨갱해야 할것 같다.
운동도 일가견이 있고, 등산도 젊어서 한가락 했고, 거기다 말발에 글솜씨까지....



애마(?) 위에서



생머리, 역시나 초라하다 못해 청승맞네 그랴...

아침 운동을 하고 오는데 집 뒤 관악산에 올라가고 싶어 혼났단다.
산이 너무나 정겨워 그 품에 안기고 싶단다.
야간산행 때문에 참느라고 혼났단다.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지남철 애마(?)에 잠시 쉬었다 과천향교에 도착한 시간이 20:50.



저녁 대신 호프나 한잔 하잔다.
헌데 못보던 탄두리 치킨집이 있다.
탄두리는 화덕에 굽는 요리를 말하는데 인도요리다.
인도여행이 생각 나 들어가 호프와 함께 치킨을 먹었다.
인도 요리의 그 맛은 아니지만 튀김보다는 담백하고 살코기가 대부분이다.



비록 공작새 대신이었지만 그럭저럭 재미난 산행이었다.
다음주 공작새의 컴백을 기대하면서~~~

Secret Garden - Adag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