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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귀천에서 정릉으로 (북한산, 9/30)

이병률 거미가 실을 잘못 사용한다면 꽃대가 진 꽃을 내려놓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리 세상의 많은 조합일지니 이해할 때까지 비가 마를 때까지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리 가을이 여름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리더라도 그래서 감기로 잠시 아프더라도 정녕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리 그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는 것도 당신이 그 사람에게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하는 것까지도 아무도 안 가는 시장에 간 것 나의 잘못은 아니리 오후에 붙들려서 길을 따라 나선 것은 생각을 안 만나고 싶은 날인 것이라 조금 맨발이 되자는 것이다 마음이 구덩이로 빨려 들어가 휘감기는 것도 구덩이에서 꺼내지는 것도 찬바람이 길을 지나는 동맥의 내용일 테니 애써 모른 체한들 나의 잘못은 아니리 코스개관: 북한산우이역 2번 출구-할렐루야 ..

우중 예봉산 산행 (9/26)

김초혜 묵은 그리움이 나를 흔든다 망망하게 허둥대던 세월이 다가선다 적막에 길들으니 안 보이던 내가 보이고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 무상이 나부낀다 코스개관: 팔당역-예봉산 1번 등산로-정상-율리봉-운길산역 (비가 산행 내내 내리던 날, 둘) 추석 전 화욜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이샘은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어 산에 못 온다고 해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예봉산에 가기로 했다. 9시 팔당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급행을 타고 졸다 가니 전철 한칸에 나만 남았다. 조금 일찍 도착해 노느니 듀오링고 조금 하니 산나리 도착. 날씨 예보가 비가 온다고 하다 9시 소강이라 하더니 비가 내린다. 맞을 비는 아니다. 오랫만에 이쪽으로 와 길 찾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이정표가 잘 되어 있고 여기도 개발이 되어 완전 딴 동네..

산행도 하고 밤도 줍고 (남산+물소리길, 9/20)

최원정 물컹물컹 애상의 나락으로 빠져들려 하는 속수무책인 전염병이듯 비가 내리기만 하면 감염되는 이 고질병은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찾아들고 치유할 명약을 찾다가 따뜻한 차 한잔 만들어 다독여 보지만, 헛일이기에 차라리 그대, 내 안에 드리우니 오슬오슬 춥던 비 가을햇살 솟아오르는 이른 아침에 싸리비로 쓸어 놓은 앞마당처럼 정갈하고 따뜻하다 아신역-친구집-남산 왼쪽으로 올라가기-오빈마을-양근성지-물안개공원-물안개수목원 담장길 걷기-남산 오른쪽으로 올라가기-친구집 (하루종일 비, 셋) 매주 수욜에는 선약이 없는 한 일시적으로 전원생활을 하는 친구 부부와 양평 일원의 산을 간다. 헌데 거의 대부분의 날 비가 내렸다. 오늘도 비 예보가 있지만 일단 출발해 만나기로 했다. 9:30 산나리와 만나 예정된 산행을 ..

로칼 가이드따라 아차산 2배 즐기기 (9/17)

정아지 나를 가둔 세상, 푸름뿐인 세상 비와 바람은 고독을 가르치며 통통한 초록대 만들었지만 어느 날 너를 만나고부터 나만의 색깔을 지워야 했다 물 속에 빠져 정신을 잃고 나의 의지를 졸도시키면서 소금물 속에서 가볍게 다시 태어난 몸 붉은 양념과 부대끼며 뜨겁도록 애무를 했다 보리밥과 어우러져 구수한 삶에 취하고 시골집 긴긴 밤에 고구마 만나 열정과 희열을 알게 되었다 조상 대대로 내림 속에 키운 사랑 부대끼며 달아오르는 감칠맛 이제, 너에게 그 맛을 길이 새겨주마 코스개관: 광나루역 1번 출구-아차산-구리둘레길-시루봉-사이길 3거리-지석영묘-망우산-용마산-용마산폭포공원-사가정역, 당나귀 4명, 더위가 남아 있던 날) 원래 계획은 정선 가리왕산을 가기로 했다. 산행 기점과 끝나는 지점이 달라 차 2대로 ..

우면산은 공사중 (9/16)

정호승 개가 밥을 다 먹고 빈 밥그릇의 밑바닥을 핥고 또 핥는다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몇 번 핥다가 그만둘까 싶었으나 혓바닥으로 씩씩하게 조금도 지치지 않고 수백 번은 더 핥는다 나는 언제 저토록 열심히 내 밥그릇을 핥아보았나 밥그릇의 밑바닥까지 먹어보았나 개는 내가 먹다 남긴 밥을 언제나 싫어하는 기색 없이 다 먹었으나 나는 언제 개가 먹다 남긴 밥을 맛있게 먹어보았나 개가 핥던 밥그릇을 나도 핥는다 그릇에도 맛이 있다 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코스개관: 사당역 3번 출구-우면산-형성마을-양재천-선바위역 (오전엔 비 소강상태로 더웠음, 둘)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오늘도 둘만 산에 가게 되었다. 비는 오후에 내린다고 한다. 10시 사당역에서 만났는데 오라방뻘 사람들이 많다. ..

철도 파업날 경의선 타고 부용산 가기 (9/15)

박연준 우산은 너무 오랜 시간은 기다리지 못한다 이따금 한번씩은 비를 맞아야 동그랗게 휜 척추들을 깨우고, 주름을 펼 수 있다 우산은 많은 날들을 집 안 구석에서 기다리며 보낸다 눈을 감고, 기다리는 데 마음을 기울인다 벽에 매달린 우산은, 많은 비들을 기억한다 머리꼭지에서부터 등줄기, 온몸 구석구석 핥아주던 수많은 비의 혀들, 비의 투명한 율동을 기억한다 벽에 매달려 온몸을 접은 채, 그러나 비들을 추억하며 그러나 우산은, 너무 오랜 시간은 기다리지 못한다 코스개관: 국수역-형제봉-부용산-하계산 좌회-양수역 (비가 오락가락 하던 날, 셋) 수요일 가던 산행을 하늘 생파로 화욜로 바꾸었는데 공주님이랑 북스테이 가자고 해 가야 한단다. 금욜 오카리나 강습이 없어 금욜 가자고 해서 날을 잡았는데 비 예보가 ..

하늘 생파하기 (9/13)

박병금 귀엣말처럼 피었누나 하얀 달빛 아래 부서져 수천수만 모여서 적막이다 밤 하늘 굽이굽이 은하수 꿈길 같은 사랑아 천리향처럼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복사꽃처럼 흩날려 뽐내지도 않으며 하얗게 피어오른 지상의 등불 온 들녘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수주웁게 피었네 아, 실바람 불어오면 가녀린 대궁 품에 안길 듯 너울거리는 그 모습이야 아직 시간이 좀 있는데 하늘이 곧 아들 만나러 상하이에 간다고 해 올해는 조금 일찍 만났다. 여산과 철모 오라방도 부르면 좋은데 오라방이 백내장 수술을 해 외출이 힘들다고 해 여학생끼리 만났다. 광화문 산채향 더덕밥에 오랫만에 갔는데 입구가 예뻐졌다. 예전 그집이 아니라 이전을 했다고. 어쩐지... 맛좋고 건강한 한정식을 먹었고 성곡미술관 카페에 가니 문을 닫았다. 바로 앞 카페에..

모처럼 나름팀 산에 가기 (백련산, 9/9)

강재남 오늘의 구름을 자네에게 보내네. 뭉클한 기운이 계절을 건너고 그러는 동안 꽃이 피는 순간을 이해하기로 했네.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이 구름의 발성법으로 소리를 내더군. 노래를 불러주세요 기꺼이 앵무새가 되어주세요. 바람이 놀다간 자리에 비밀이 풀리고 있었네. 비밀을 다시 감아야 하는 자네는 술래이면서 숨어야하는 사람이라네. 어제를 뭉치니 어제가 되더군. 어둠은 삼켜도 어둠이었지. 말린 어제가 어둠을 끌고 갔다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숨바꼭질은 끝나지 않은 채 돌아갔다네. 그립지 않은 것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밤은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득하더군. 오늘을 넘기는 자네는 무슨 생각에 빠져있었나. 화살이 된 말에 심장을 찔리고 심장이 단단하고 심장이 반짝이고 그러는 동안 새가 날아오르는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