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게 없으니 거둘 것도 없어라 (춘마를 뛰고, 2012.10.28) 시월 - 이시영 심심했던지 재두루미가 후다닥 튀어 올라 푸른 하늘을 느릿느릿 헤엄쳐간다 그 옆의 콩꼬투리가 배시시 웃다가 그만 잘 여문 콩알을 우수수 쏟아놓는다 그 밑의 미꾸라지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봇도랑에 하얀 배를 마구 내놓고 통통거린다 먼 길을 가던 농부가 자.. 산 이외.../마라톤 2012.10.31
연습 부족으로 죽을만큼 힘들더라...(2012 동마, 3/18) 폐차장 1 - 이하석(1948~ ) 산에 가 붙들리고 싶다. 너의 어깨 위로 너의 모자 그늘 아래로 산이 멀리 있다. 우리가 다툰 지도 오래 되었다. 우리의 욕망이 서로 높아가는 만큼 산은 저렇게 낮고 낮다. 그러나 산봉우리에 걸린 구름은 여전히 내려오지 않고. 우리는 욕망의 기름 덮인 검은 흙 .. 산 이외.../마라톤 2012.03.18
미녀 삼총사, 한강을 달리다 (국민건강 마라톤, 2011.12.3)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길상호(1973~)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으면 낮 동안 바람에 흔들리던 오동나무 잎들이 하나씩 지붕 덮는 소리, 그 소리의 파장에 밀려 나는 서서히 오동나무 안으로 들어선다 평생 깊은 우물을 끌어다 제 속에 허공을 넓히던 나무 스스로 우물이 되어버린 나.. 산 이외.../마라톤 2011.12.07
러너는 비가 와도 멈추지 않는다 (중마 참가기. 11/6) 11월/김남극 (1968~) 거친 사포 같은 가을이 와서 슥슥 내 감각을 갈아놓고 갔다 사포의 표면이 억센 만큼 갈린 면에 보풀이 일었다 그 보풀이 가랭이를 서늘하게 만드는 바람에 스닥일 때마다 몸속에서 쇳소리가 났다 내가 서걱거리면 몸속에 든 쇠종이 윙윙거렸다 몸이 통째로 울.. 산 이외.../마라톤 2011.11.08
만추의 춘천을 즐기다 (춘마 참가기, 10/23) 아득하면 되리라 -박재삼(1933~1997)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 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 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산 이외.../마라톤 2011.10.24
하프도 힘드네.. (하이서울 마라톤, 10/9) 현관문 - 김소연(1967~ ) 열어둔다 바닥에 빗자루를 댄다 오늘 아침은 빗자루가 쓸지 않고 있다 타일바닥을 쓰다듬고 있다 네가 오면 제일 먼저 누가 오기로 한 날이 아닌 날에도 매일 아침 현관문 앞에 알록달록 꼴람을 그려놓던 인도사람 얘기를 해줘야지 무성하게 자란 보스톤 고사리를 문밖에 내둔.. 산 이외.../마라톤 2011.10.10
모처럼 대회에 나가니 (화성 효마라톤 참가기. 5/5) 변명 - 이상국 (1946 ~ ) 어느날 새벽에 자다 깼는데 문득 나는 집도 가족도 없는 사람처럼 쓸쓸했다 아내는 안경을 쓴 채 잠들었고 아이들도 자기네 방에서 송아지처럼 자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생각이 왔는지 모르지만 그게 식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에게 창피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날이 밝으려.. 산 이외.../마라톤 2011.05.06
2010 송년마라톤 뛰던날 (12.18) 간장 게장 - 지영환(1967∼ ) 1 간장처럼 짠 새벽을 끓여 게장을 만드는 어머니 나는 그 어머니의 단지를 쉽사리 열어 보지 못한다 나는 간장처럼 캄캄한 아랫목에서 어린 게처럼 뒤척거리고 2 게들이 모두 잠수하는 정오 대청마루에 어머니는 왜 옆으로만, 주무시나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아무것도.. 산 이외.../마라톤 2010.12.20
나름대로 후회없이 뛴 중마 (11/7) 졸음 - 황인숙(1958∼ ) 달팽이 시내를 건너갑니다 달팽이 시내를 건너갑니다 달팽이 시내를 건너갑니다 달팽이 종일토록 시내를 건넙니다 유리창 위의 달팽이 한 마리 종일토록 시내를 건넙니다 달팽이가 길을 건너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또는 달팽이가 뛰어가는 모습을 상상하셔도 좋습니다. 중요.. 산 이외.../마라톤 2010.11.08
가을의 전설이 전설의 고향 될뻔... (춘마를 뛰고.. 10/24) 한길의 노래 - 휘트먼(1819~1892) 도보로 경쾌하게 길을 나선다 튼튼하고 자유롭고 세계가 내 앞에. 내가 택하는 곳 어디로든 인도하는 긴 잿빛의 길이 내 앞에 있다. 이제부터 나는 행운을 구하지 않으리라 나 자신이 행운 자체인 것을. 이제부터 난 훌쩍이지 않으리, 미루지 않으며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 산 이외.../마라톤 2010.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