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우공양 (1/29) 인사동으로 가며 - 김종해(1941~ ) 인사동에 눈이 올 것 같아서 궐(闕) 밖을 빠져나오는데 누군가 퍼다 버린 그리움 같은 눈발 외로움이 잠시 어깨 위에 얹힌다. 눈발을 털지 않은 채 저녁 등이 내걸리고 우모(羽毛)보다 부드럽게 하늘이 잠시 그 위에 걸터앉는다. 누군가 댕그랑거리는 풍경.. 산 이외.../2013 일기장 2013.02.04
땅끝에 다시 서다 (병동리-세류촌임도, 1/20) 소 - 김기택(1957~ )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1.22
여군삼총사 삼성산에 뜨다 (1/19)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 황인숙(1958~ ) 비가 온다. 네게 말할 게 생겨서 기뻐. 비가 온다구!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너를 흠뻑 적실 거야. 유..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1.22
원효, 의상능선 찍기 (북한산, 1/12) 겨울 아침 - 나희덕(1966~ ) 어치 울음에 깨는 날이 잦아졌다 눈 부비며 쌀을 씻는 동안 어치는 새끼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친다 어미새가 소나무에서 단풍나무로 내려앉자 허공 속의 길을 따라 여남은 새끼들이 푸르르 단풍나무로 내려온다 어미새가 다시 소나무로 날아오르자 새끼들이 푸..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1.13
봉대신 꿩 (삼각산, 12/31) 아침 - 문태준(1970~ ) 새떼가 우르르 내려앉았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 열매를 쪼고 똥을 누기도 했다 새떼가 몇발짝 떨어진 나무에게 옮겨가자 나무상자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나무가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의 물처럼 한번 또 한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번 출렁했다 출렁.. 산행기/2012 산행일기 2013.01.08
지리를 접고.. (삼성산, 12/30) “응” - 문정희(1947~ )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文字)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 산행기/2012 산행일기 2013.01.01
관악산 설경도 이리 멋질 수 있구나.. (12/22)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 이곳이 누구의 숲인지 알 것 같네, 그의 집은 비록 마을에 있지만. 그는 내가 여기 멈춰 선 걸 모를 거야, 눈 덮인 그의 숲을 보기 위해. 내 작은 말도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가까이 농가도 없는 이곳에 멈춘 것을. 한 해 중 가장 어두운 .. 산행기/2012 산행일기 2012.12.23
맘에 맞는 친구와 모락-백운 가기 (12/15) 소금 한 포대 - 박후기(1968~ ) 천일염 한 포대, 베란다에 들여놓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누런 간수 포대 끝에서 졸졸 흘러내립니다. 오뉴월 염밭 땡볕 아래 살 태우며 부질없는 거품 모두 버리고 결정(結晶)만 그러모았거늘, 아직도 버릴 것이 남아있나 봅니다. 치매 걸린 노모, 요양원에 들.. 산행기/2012 산행일기 2012.12.19
화기애애 당나귀 송년산행 (호남정맥, 주랫재-청능마을, 12/16) 숲으로 간다 - 백무산(1955~ ) 높은 산에 올라 구름 아래 마을을 보면 사람과 마을들이 저리 하찮다 그러나 산을 처음 올라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결론에 고개 끄덕이지 않는다 저것이 저리 하찮은 게 아니라 천지가 저리도 크다 우리가 살다 가는 곳이 티끌보다 작고 짧으나 그것도 한 세.. 산행기/2012 산행일기 2012.12.19
철사모 송년회 (12/11) 백화白樺 - 백석(1912~1996)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모든 것이 .. 산 이외.../2012 일기 2012.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