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 송년회 (12/23) 꽃잎 1 - 김수영 (1921 ~ 68)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 모르고 자기가 가 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 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 산 이외.../2010일기 2010.12.26
출신성분 같은 사람들과의 송년회 (12/22) 바이올린 켜는 여자-도종환(1954~ ) 바이올린 켜는 여자와 살고 싶다 자꾸만 거창해지는 쪽으로 끌려가는 생을 때려 엎어 한손에 들 수 있는 작고 단출한 짐 꾸려 그 여자 얇은 아래턱과 어깨 사이에 쏙 들어가는 악기가 되고 싶다 왼팔로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내 몸의 현들을 그녀.. 산 이외.../2010일기 2010.12.26
2010 송년마라톤 뛰던날 (12.18) 간장 게장 - 지영환(1967∼ ) 1 간장처럼 짠 새벽을 끓여 게장을 만드는 어머니 나는 그 어머니의 단지를 쉽사리 열어 보지 못한다 나는 간장처럼 캄캄한 아랫목에서 어린 게처럼 뒤척거리고 2 게들이 모두 잠수하는 정오 대청마루에 어머니는 왜 옆으로만, 주무시나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아무것도.. 산 이외.../마라톤 2010.12.20
밀어서 넘어진 이야기 (12/8) 사라진 야생의 슬픔 - 박노해(1957∼ ) 산들은 고독했다 백두대간은 쓸쓸했다 제 품에서 힘차게 뛰놀던 흰 여우 대륙사슴 반달곰 야생 늑대들은 사라지고 쩌렁 쩡 가슴 울리던 호랑이도 사라지고 아이 울음소리 끊긴 마을처럼 산들은 참을 수 없는 적막감에 조용히 안으로 울고 있었다 .. 산 이외.../2010일기 2010.12.09
위문공연 (12/7) 찬란 -이병률(1967∼ )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니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하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 산 이외.../2010일기 2010.12.09
미리 버스데이 & 집들이 (12/3) 열심히 산다는 것 -안도현(1961∼ )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 산 이외.../2010일기 2010.12.03
3토 (11/20) 별을 보며 - 이성선(1941 ~ 2001)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던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 산 이외.../2010일기 2010.11.22
나름대로 후회없이 뛴 중마 (11/7) 졸음 - 황인숙(1958∼ ) 달팽이 시내를 건너갑니다 달팽이 시내를 건너갑니다 달팽이 시내를 건너갑니다 달팽이 종일토록 시내를 건넙니다 유리창 위의 달팽이 한 마리 종일토록 시내를 건넙니다 달팽이가 길을 건너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또는 달팽이가 뛰어가는 모습을 상상하셔도 좋습니다. 중요.. 산 이외.../마라톤 2010.11.08
공사 다 망한 오후 (10/30) 축, 생일 -신해욱 (1974∼ ) 이목구비는 대부분의 시간을 제멋대로 존재하다가 오늘은 나를 위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렇지만 나는 정돈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나는 내가 되어가고 나는 나를 좋아하고 싶어지지만 이런 어색한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점점 갓 지은 밥 냄새에 미쳐.. 산 이외.../2010일기 2010.11.02
둘레길 걷기반-보라매공원 인증샷 (10/30) 인천만 낙조 - 조오현 (1932 ~ ) 그날 저녁은 유별나게 물이 붉다붉다 싶더니만 밀물 때나 썰물 때나 파도 위에 떠 살던 그 늙은 어부가 그만 다음날은 보이지 않네 죽음에 대해 조오현 스님처럼 이런 말없으나 수만(數萬) 말(語)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그림을 보여줄 수 있는가. 낙조가 지는 ‘인천만’.. 산 이외.../2010일기 2010.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