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함께 한 송년산행 (모락산, 12/31) 미시령 노을/이성선(1941~2001) 나뭇잎 하나가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툭 내려앉는다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너무 가볍다 팔손이라는 토종 나무가 있다. 변변할 것 없는 이 나무에서 우주의 조화를 느낀 건 가을에 피는 꽃이 아니라 겨울에도 지지 않는 푸른 잎에서였다. 잎맥..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2.31
로칼 가이드 따라 계양산 가기 (12/26) 대숲 바람소리/송수권(1940~ ) 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2.28
숙원사업 또 하나를 이루던 날 (방태산, 12/24) 모감주나무/온형근(1960~) 꽃이 피어 아 꽃이 피었구나 했다 그 사이에 있고 없음 묻고 답함이 스쳐갔다 그 꽃이 살짝 입힌 노란색 꽈리로 새 옷 입은 것을 보고서야 꽃은 지는 게 아닌 것을 꽃이 하나인 것을 내 눈길이 젖어 있었다 강을 버려야 물은 바다에 이르고, 꽃을 버려야 나..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2.26
눈 밟으며 호남정맥 잇기 (염암재-소리개재, 12/18) 흔들릴 때마다 한 잔/감태준(1947~) 포장술집에는 두 꾼이, 멀리 뒷산에는 단풍 쓴 나무들이 가을비에 흔들린다 흔들려, 흔들릴 때마다 한 잔씩, 도무지 취하지 않는 막걸리에서 막걸리로, 소주에서 소주로 한 얼굴을 더 쓰고 다시 소주로, 꾼 옆에는 반쯤 죽은 주모가 살아 있는 참..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2.20
낙엽 밟으며 호남길 잇기 (쑥재-염암재, 12/4) 별 만드는 나무들/이상국(1946∼) 설악산 수렴동 들어가면 별 만드는 나무들이 있다 단풍나무에서는 단풍별이 떡갈나무에선 떡갈나무 이파리만한 별이 올라가 어떤 별은 삶처럼 빛나고 또 어떤 별은 죽음처럼 반짝이다가 생을 마치고 떨어지면 나무들이 그 별을 다시 받아내는데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2.07
숙원사업 성취산행 ( 금원-기백산, 11/27) 벌레의 그림 - 이수명(1965~ ) 벌레 한 마리 뒤집혀져 있다. 바닥을 기던 여섯 개의 다리는 낯선 허공을 휘젓고 있다. 벌레는 누운 채 이제 닿지 않는 짚어지지도 않는 이 새로운 바닥과 놀고 있다. 다리들은 구부렸다 폈다 하며 제각기 다른 그림을 그린다. 그는 허공의 포위를 두려..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2.01
호남정맥길에 들어서다 (북치-쑥재, 11/20) 낙엽- 안경라(1964~) 생각을 비우는 일 눈물까지 다 퍼내어 가벼워지는 일 바람의 손 잡고 한 계절을 그대 심장처럼 붉은 그리움 환하게 꿈꾸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 가을 날 저물 무렵 단 한번의 눈부신 이별을 위해 가슴에 날개를 다는 일 다시 시작이다. 투명한 나뭇잎 사이로 가..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1.21
만추에 실시한 청소년 등산교실 (유명산, 10./22) ‘가을 손’-이상범(1935∼ ) 두 손을 펴든 채 가을볕을 받습니다 하늘빛이 내려와 우물처럼 고입니다 빈손에 어리는 어룽이 눈물보다 밝습니다 비워 둔 항아리에 소리들이 모입니다 눈발 같은 이야기가 정갈하게 씻깁니다 거둘 것 없는 마음이 억새꽃을 흩습니다 풀 향기 같은 성좌가 머리 위에 얹힙..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0.24
금북 졸업을 하다 (장재-안흥진, 10/16) ‘달’ - 박목월(1916 ~ 78) 배꽃가지 반 쯤 가리고 달이 가네. 경주군 내동면 혹은 외동면 불국사(佛國寺) 터를 잡은 그 언저리로 배꽃가지 반 쯤 가리고 달이 가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아름다운 시다. 아주 예쁜 언어의 스케치이면서도 여기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배꽃 가지 사이로 얼굴을 가리고 지나..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0.21
인왕산-안산을 염두에 두었으나... (10/9) 딱따구리 소리 - 김선태(1960~ ) 딱따구리소리가 딱따그르르 숲을 맑게 깨우는 것은 고요가 소리에게 환하게 길을 내어주기 때문이다, 고요가 제 몸을 짜릿짜릿하게 빌려주기 때문이다. 딱따구리소리가 또 한 번 딱따그르르 숲 전체를 두루 울릴 수 있는 것은 숲의 나무와 이파리와 공기와 햇살 숲을 지..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