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멤버와 관악산 가기 (10/5) 자반고등어 - 박후기 (1968~ ) 가난한 아버지가 가련한 아들을 껴안고 잠든 밤 마른 이불과 따뜻한 요리를 꿈꾸며 잠든 밤 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껴안고 잠든 밤 소금 같은 싸락눈이 신문지 갈피를 넘기며 염장을 지르는, 지하역의 겨울밤 넉 줄밖에 안 되는 이 시행 사이엔 무수한 서사가 들어 있다.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0.10
인수 맛보기 (10/3) 빨래 너는 여자 - 강은교(1945∼ ) 햇빛이 ‘바리움’처럼 쏟아지는 한낮, 한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그 여자는 위험스레 지붕 끝을 걷고 있다, 런닝 셔츠를 탁탁 털어 허공에 쓰윽 문대기도 한다, 여기서 보니 허공과 그 여자는 무척 가까워 보인다, 그 여자의 일생이 달려와 거기 담요 옆에 펄럭인다,..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0.10
목장길 따라 정맥길 잇기 (개심사-모가울고개, 10/2) 시멘트 -송승환(1971~ ) 사람들이 인파 속을 걷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잡은 그녀의 손은 바닷가에서 주운 돌이었는지도 모른다 공사중인 빌딩 안으로 그녀는 들어갔다 반죽은 굳어지기 마련이다 햇빛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멘트, 철근 같은 것들은 이제 풀, 나무처럼 도시의 자연이 됐다. 나무, 이.. 산행기/2011 산행기 2011.10.04
지리에 스미다 (9/23~24) 작은 풀꽃 - 박인술(1921~ ) 후미진 골짜기에 몰래 핀 풀꽃 하나 숨어 사는 작은 꽃에도 귀가 있다. 나직한 하늘이 있다. 때때로 허리를 밀어 주는 바람이 있다. 초롱초롱 눈을 뜬 너는 우주의 막내둥이. 바위틈에서 한 포기 구절초가 순백의 꽃을 피웠다. 한 줌 흙에 묻혀 뿌리를 내렸다. 돌보는 이 없어도..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9.29
금북의 하이라이트를 가다 (까치고개-개심사, 9/18) 그게 배롱나무인 줄 몰랐다 - 김태형(1970~ ) 오래된 창문 밖에 마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 그 동안 누가 저 나무 아래 웅크리고 앉아 겨드랑이를 간질이고 갔는지는 모르지만 등줄기가 가려울 때마다 몇 차례 누런 허물을 벗고 딱딱한 비늘에 윤기마저 도는지 세 치쯤 되는 공중이 이내 그늘을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9.19
지리 태극을 꿈꾸었으나... (9/10 밤머리재-진자마을) 미안하다 - 이희중 (1960 ~ ) 꽃들아 미안하다 붉고 노란 색이 사람의 눈을 위한 거라고 내 마음대로 고마워한 일 나뭇잎들, 풀잎들아 미안하다 푸른 빛이 사람들을 위안하려는 거라고 내 마음대로 놀라워한 일 꿀벌들아 미안하다 애써 모은 꿀들이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거라고 내 마음대로 기특해 한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9.17
아, 가을이다~ (금북정맥: 각흘고개-차동고개, 9/4) 먼나무 - 박설희(1964~ ) 바로 코 앞에 있는데 먼나무 뭔 나무야 물으면 먼나무 쓰다듬어 봐도 먼나무 끼리끼리 연리지를 이루면 더 먼나무 먼나무가 있는 뜰은 먼뜰 그 뜰을 흐르는 먼내 울울창창 무리지어서 먼나무 창에 흐르는 빗물을 따라 내 속을 흘러만 가는 끝끝내 먼나무 ‘나무를 아는 것은 느..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9.05
2011 청소년 백두대간 생태탐방기 4 (8/3~4) 해방촌 -황인숙(1958~ ) 보랏빛 감도는 자개무늬 목덜미를 어리숙이 늘여 빼고 어린 비둘기 길바닥에 입 맞추며 걸음 옮긴다 박카스병, 아이스케키 막대, 담뱃갑이 비탈 분식센터에서 찌끄린 개숫물에 배를 적신다 창문도 변변찮고 에어컨도 없는 집들 거리로 향한 문 활짝 열어놓고 미동도 않는다 우리..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8.31
2011 백두대간 생태탐방기 3 (8/2. 삽당령-닭목재) ‘없는 하늘’ - 최종천 (1954~ ) 새는 새장 안에 갇히자마자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이제까지 새는 의미가 아니어도 노래했지만 의미가 있어야 노래한다 하늘과는 격리된 날개 낱알의 의미를 쪼아보는 부리 새의 안은 의미로 가득하다 새는 무겁다 건강한 날개로도 날 수가 없게 되었다 주저앉은 하늘..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8.30
절친과 산넘어 집에 가기 (삼성산, 8/20) (詩)를 찾아서 - 정희성(1945~ )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 지금까지 시를 써오면서 시가 무엇인지 시로써 무엇을 이룰지 깊이 생각해볼 틈도 없이 헤매어 여기까지 왔다 (……) 한여름 뜨락에 발돋움한 상사화 꽃대궁만 있고 잎은 보이지 않았다 한줄기에 나서도 잎이 꽃..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