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혜언니 사진으로 본 오끼나와 (2016/1/14~19) 김영랑, 조두남, 모란, 동백 - 이제하(1937~ )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 먼나라 이야기 2016.04.08
이젠 집으로~ (1/18~19) 뒷골목 풍경 -이동순(1950~ ) 내가 만약 서역에 산다면 여름날 저녁마다 문 앞에 탁자를 내다놓고 장기를 두리라 벗들과 모여앉아 마작을 하리라 손주녀석 안고 나와 바람 쐬며 행인을 보리라 친한 이웃들과 삿자리 깔고 모여앉아 담소 나누리라 침침한 전등불 켜진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 먼나라 이야기 2016.03.19
센추리런 대회 참가 (1/17) 비 가는 소리 -유안진(1941~ ) 비 가는 소리에 잠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不協和)의 음정(音程) 밤비에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같은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 소리, 이 밤이 .. 먼나라 이야기 2016.03.19
잔차타기 셋째날 (1/16) 외딴섬 - 홍영철(1955~ ) 네 잘못이 아니다 홀로 떠 있다고 울지 마라 곁에는 끝없는 파도가 찰랑이고 위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단다 떼 지어 몰려다니는 것들을 보아라 홀로 떠 있지도 못하는 것들은 저토록 하염없이 헤매고 있지 않느냐 (하략) 인간의 고독을 위로하는 이 시를 일.. 먼나라 이야기 2016.03.19
잔차타기 둘째날 (1/15) 한여름, 토바고 - 데릭 월컷(1930~ ) 태양이 내리쬐는 넓은 해변들. 하얀 더위. 푸른 강물. 다시, 말라붙은 노란 야자나무들 여름에 잠자는 집에서 8월 내내 꾸벅 졸며 내가 붙잡았던 날들, 내가 잃어버린 날들, 딸애들처럼 웃자라서, 내 팔을 빠져나가는 날들. 한여름의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 먼나라 이야기 2016.03.19
넘의 나라에 잔차 타러 가기 1 (공항~오끼나와, 1/14) 고검(古劍) - 이유경(1940~ ) 박물관에서 뼈만 남은 고검 한 자루를 본다 피투성이 시간들 녹슬어 떡이 돼있고 첩첩한 어둠 한 가운데 무명 장수의 미라처럼 눕혀져 있지만 그의 뼈 속 어딘가 시퍼런 날이 숨어 있다. 박물관에서 시인이 본 것은 오래되어 ‘뼈만 남은 고검 한 자루’가 아니.. 먼나라 이야기 2016.03.19
뉴욕 그 마지막 6 (8/7~8) 탑 - 김수복(1953~ ) 곧 저녁이 다가올 것이다 등불을 밝히고 높고 비천한 어둠과 별에게, 목숨을 바쳐 몸속에 집을 짓는 하늘에서 곧 종이 울릴 것이다 새들이 죽어서 날아갈 것이다 낮이 기울고 저녁이 온다. 그게 필연이듯 늙으면 죽음이 가까이 온다. 질병과 노령은 죽음의 징후 사건들.. 먼나라 이야기 2015.10.20
뉴욕관광5 (8/6) 백자 항아리 - 허윤정(1939~ ) 너는 조선의 눈빛 거문고 소리로만 눈을 뜬다 어찌 보면 얼굴이 곱고 어찌 보면 무릎이 곱고 오백년 마음을 비워도 다 못 비운 달 항아리 백자 항아리는 비례와 대칭이 완벽하지 않다. 이 부정형의 백자 항아리는 크고 풍성한 보름달을 닮아 달항아리라고 부른.. 먼나라 이야기 2015.10.20
뉴욕관광 4 (8/5, 수) 울음의 영혼 - 이기철(1943~ ) 울음이 작별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작별은 모든 울음을 다 이해한다 울음 곁에서 울음의 영혼을 만지면서 나는 최초의 금강(金剛)을 배웠다 울음의 방식은 고독이다 고독은 너무 많이 만져서 너덜너덜해졌다 눈물은 울음이 남겨놓은 흑요석 눈물은 고독보다 훨씬 더 깊은 데서 길어올린 샘물이다 울음 하나에 담긴 백 가지의 마음 모든 미소는 울음의 누이뻘이다 (하략)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 울고 있다면 우리 대부분은 그 울음에 윤리적 책임이 있다. 꽃이 태양의 고결한 덕에 힘입어 피어나는 것과는 반대로 누군가 울 때 그것은 우리 부덕의 소치다. 누군가 흐느껴 울 때 곁에서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시인은 울음의 영혼을 만지며 “최초의 금강(金剛)”을 배우고, 눈물이 .. 먼나라 이야기 2015.10.15
뉴욕관광-오늘은 쇼핑의 날 (8/4, 화) 식물의 밤 - 이성미(1967~ ) 딱딱한 모자 속에 전구를 켜고 누가 밤보다 더 어두운 방으로 숨어드나. 비는 폭포처럼 퍼붓고 아가씨는 머리칼이 젖어 빗속을 달려가는데. 꽃잎은 으깨지고 줄기는 휘어지는데. 누가 이렇게 어려운 식물을 키우고 있나. 아침은 단호하게 시작된다. 떨어져 잿빛 .. 먼나라 이야기 2015.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