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여행기 1 (인천-로마, 2019/7/22~23) <장마> 유봉희 숲은 한 마리 새도 무거워 던져 버린다 새 맞고 눈물 쏟는 하늘 다시 시작하는 창세기 2017년 언제인지 해외여행을 위해 돈을 모은다고 날 보고도 갈거면 합류하라고 한다. 몇달 늦은지라 늦은만큼 더 냈고 매달 10만원씩 자동이체를 시켰다. 가기 전 300만원 예상인데 혹.. 먼나라 이야기 2019.08.15
홋카이도 권 사진 생명 보험 -김기택(1957~) 병원마다 장례식장마다 남아도는 죽음, (…) 삶은 언젠가 나에게도 죽음 하나를 주리라. 무엇이든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내 두 손은 공짜이므로 넙죽 받을 것이다. (…) 그렇잖아도 죽음에 투자하라고 부동산 투자보다 훨씬 안전하고 수익도 높다고 (…) 공짜였던 .. 먼나라 이야기 2017.11.25
홋카이도 김사진 5 (8/9~11) 남해 푸른 물 -김광규(1941~) 창밖으로 남해의 푸른 물 보인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에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햇빛 가끔 큰 화물선이 지나간다 파도 소리와 갈매기 노래 바람에 실려 바닷가 외딴 방 창문을 넘나든다 바다가 잔잔한 날은 영원이 어떤 색깔인지 보여주기도 한다 .. 먼나라 이야기 2017.11.25
홋카이도 김사진 4 (8/7~8) 받들어 꽃 -곽재구(1954~)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 장난감 무기들을 횡대로 늘어놓고 에잇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미사일 받아라 끝내는 원자폭탄 받아라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 짓눌린 303호.. 먼나라 이야기 2017.11.23
홋카이도 김사진 3 (8/5~6) 독수리 시간 -김이듬(1969∼ ) 독수리는 일평생의 중반쯤 도달하면 최고의 맹수가 된다 눈 감고도 쏜살같이 먹이를 낚아챈다 그런 때가 오면 독수리는 반평생 종횡무진 누비던 하늘에서 스스로 떨어져 외진 벼랑이나 깊은 동굴로 사라진다 거기서 제 부리로 자신을 쪼아댄다 무시무시하게 .. 먼나라 이야기 2017.11.23
홋카이도 김사진 2 (8/3~4) 나팔꽃 -권대웅(1962~ )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젊은 부부 단칸방이어도 신혼이면 날마다 동방화촉(洞房華燭)인 것을 그 환한 꽃방에서 부지런히 문 열어주고 배웅하며 드나들더니 어느새 문간방 반쯤 열려진 창문으로 갓 낳은 아이 야물딱지게 맺힌 까만 눈동자 똘망똘망 생겼어라 여름이 .. 먼나라 이야기 2017.11.23
홋카이도 김사진 1 (8/1~2) 실패의 힘 - 천양희(1942~ ) 내가 살아질 때까지 아니다 내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애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비가 그칠 때까지 철저히 혼자였으므로 나는 홀로 우월했으면 좋겠다 지상에는 나라는 아픈 신발이 아직도 걸어가고 있으면 좋겠다 오래된 실패의 힘으로 그 힘으로 아프다. 시인.. 먼나라 이야기 2017.11.22
홋카이도 여행기 10 (오타루-서울, 8/10~11) 아침 -문태준(1970~) 새떼가 우르르 내려앉았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 열매를 쪼고 똥을 누기도 했다 새떼가 몇 발짝 떨어진 나무에게 옮겨가자 나무상자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나무가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의 물처럼 한번 또 한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번 출렁했다 출렁출.. 먼나라 이야기 2017.11.22
홋카이도 여행기 9 (삿포로 관광, 8/9) 화학선생님 -정양(1942~) 중간고사 화학시험은 문항 50개가 전부 ○X 문제였다 선생님은 답안지를 들고 와서 수업시간에 번호순으로 채점결과를 발표하셨다 기다리지도 않은 내 차례가 됐을 때 “아니 이 녀석은 전부 X를 쳤네, 이 세상에는 옳은 일보다 그른 일이 많다는 걸 어떻게 알았.. 먼나라 이야기 2017.11.22
홋카이도 여행기 8 (리시리섬-삿포로, 8/8) 이마 -신미나(1978~)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 게 마음이라면 거기 들어가 눕고 싶었다 요를 덮고 한 사흘만 조용히 앓다가 밥물이 알맞나 손등으로 물금을 재러 일어나서 부엌으로 젊은 시인인데 시의 목소리는 이 세상을 이미 한 바퀴 돌아온 사람처럼 제대로 익었다. 여기.. 먼나라 이야기 2017.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