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여행기 7 (리시리산, 8/7) 분수 -이형기(1933~2005) 너는 언제나 한순간에 전부를 산다. 그리고 또 일시에 전부가 부서져 버린다. 부서짐이 곧 삶의 전부인 너의 모순의 물보라 그 속엔 하늘을 건너는 다리 무지개가 서 있다. 그러나 너는 꿈에 취하지 않는다. 열띠지도 않는다. 서늘하게 깨어 있는 천개 만개의 눈빛을 .. 먼나라 이야기 2017.11.21
홋카이도 여행기 6 (레분섬~리시리섬, 8/6) 세상을 만드신 당신께 -박경리(1926~2008) 당신께서는 언제나 바늘구멍만큼 열어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이제는 안 되겠다 싶었을 때도 당신이 열어주실 틈새를 믿었습니다 달콤하게 어리광부리는 마음으로 어쩌면 나는 늘 행복했는지 행복했을 것입니다 목마르.. 먼나라 이야기 2017.11.21
홋카이도 여행기 5 (레분산 8시간 코스를 가다, 8/5) 산호 캐러 가다 -김광섭(1905~77) 갈매기 나래를 얻어 푸른 동해 바다를 날다. 바다가 안긴 하늘가 지평선 영원히 비장된 세계로 향하다가 바위에 부딪히는 흰 물결 속으로 나는 빠져서 빠져서 들어간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물결도 푸르고 마음도 푸른 날 하늘과 땅과 바다의 얘기.. 먼나라 이야기 2017.11.10
홋카이도 여행기 4 (왓카이나-레분섬, 8/4) 반성 743 -김영승(1959~)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 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웠다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 이빨 같은 무릎 위에 놓인 가지.. 먼나라 이야기 2017.11.10
홋카이도 여행기 3 (아사히카와-왓카이나, 8/3) 채플린 Ⅱ -이세룡(1947~ ) 1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빈속에서 소리가 나는 건 뱃속의 녹슨 파이프를 쪼아대는 딱따구리 때문이다. 빈 지갑 속에서 채플린이 낡은 바이올린을 켜기 때문이다. 2 이 세계에 영원한 것은 두 개밖에 없다. 반찬 없이 먹는 밥의 슬픔과 밥과 고기반찬이 마주 볼 때 .. 먼나라 이야기 2017.11.10
홋카이도 여행기 2 (비에이, 8/2) 두부 -이영광(1965~) 두부는 희고 무르고 모가 나 있다 두부가 되기 위해서도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 아무것도 깰 줄 모르는 두부로 살기 위해서도 열두 모서리, 여덟 뿔이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 깨지지 않기 위해 사납게 모 나는 두부도 있고 이기지 않으려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 먼나라 이야기 2017.11.10
홋카이도 여행기 1 (서울-아사이카와, 8/1) 다시 아침 -도종환(1955~ ) 내게서 나간 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진 날은 돌아와 빗자루로 방을 쓴다 떨어져 나가고 흩어진 것들을 천천히 쓰레받기에 담는다 요란한 행사장에서 명함을 잔뜩 받아온 날은 설거지를 하고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찬물에 차르를 차르를 씻겨나가는 뽀얀 소리를 .. 먼나라 이야기 2017.11.10
친구야 놀자 (다낭 여행기) 3 오리 한 줄 - 신현정(1948~2009) 저수지 보러 간다 오리들이 줄을 지어 간다 저 줄의 말단(末端)이라도 좋은 것이다 꽁무니에 바싹 붙어 가고 싶은 것이다 한 줄이 된다 누군가 망가뜨릴 수 없는 한 줄이 된다 싱그러운 한 줄이 된다 그저 뒤따라 가면 된다 뒤뚱뒤뚱하면서 엉덩이를 흔들면서 .. 먼나라 이야기 2017.02.26
친구야 놀자 (다낭 여행기) 2 봄 - 이성부(1942~2012)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 먼나라 이야기 2017.02.26
친구야 놀자 (다낭 여행기)1 (2.11~15) 아들을 꾸짖다(責子) - 도연명(365~427) 흰 머리는 귀밑을 덮고 살도 더는 실하지 못한데 다섯이나 되는 아들놈들 하나같이 글공부 싫어하네. 서(舒)라는 놈은 벌써 열여섯 살이건만 천하에 둘도 없는 게으름뱅이 선(宣)이란 놈도 곧 열다섯인데 도무지 글읽기엔 관심도 없네. 같은 열세 살 옹.. 먼나라 이야기 2017.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