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관광2 (8/3, 월) 복숭아 - 강기원(1957~ ) 사랑은… 그러니까 과일 같은 것 사과 멜론 수박 배 감… 다 아니고 예민한 복숭아 손을 잡고 있으면 손목이, 가슴을 대고 있으면 달아오른 심장이, 하나가 되었을 땐 뇌수마저 송 두리째 서서히 물크러지며 상해 가는 것 사랑한다 속삭이며 서로의 살점을 남김없이.. 먼나라 이야기 2015.10.14
뉴욕관광 1 (8/2, 일) 올 여름도 그냥 가지는 않는구나 - 조정권(1949~ ) 눈 어두운 사람 귀밖에 없어 비야 부탁한다 라디오 좀 틀어보렴 전국에서 목숨의 대행진이 벌어지고 있다 부탁한다 저 저수지같이 어두운 텔레비전도 켜보렴 필요하다면 네 이빨을 써서라도 여름이 깊어간다.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에도, .. 먼나라 이야기 2015.10.14
나이아가라 그 마지막 (캐나다편, 8/1) 모닥불 - 백석(1912~96) 새끼 오리도 헌 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 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 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 살이 아이도 새 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 도 주인도 할아.. 먼나라 이야기 2015.10.08
나이아가라 가는길2 (미국편, 7/31) 성스러운 뼈 - 유자효(1947~ ) 불에도 타지 않았다 돌로 찧어도 깨어지지 않았다 고운 뼈 하나를 발라내어 구멍을 뚫었다 입을 대고 부니 미묘한 소리가 났다 (…) 번뇌를 달래는 힘이 있었다 (…) 고통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힘 오직 사람의 뼈이어야만 했다 평생을 괴로워하면서 살아 그 .. 먼나라 이야기 2015.09.23
나이아가라 가는길 1 (Washington D.C, 7/30) 내외 - 윤성학(1971~ )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오붓한 산길을 조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숨.. 먼나라 이야기 2015.09.16
뉴욕 가기 (서울~뉴욕, 7/29) 여름의 문장 - 김나영(1967~ ) 공원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곁에서 서성거리던 바람이 가끔씩 책장을 넘긴다. 길고 지루하던 산문(散文)의 여름날도 책장을 넘기듯 고요하게 익어가고 오구나무 가지 사이에 투명한 매미의 허물이 붙어 있다. 소리 하나로 여름을 휘어잡던 눈과 배와 뒷다리.. 먼나라 이야기 2015.09.13
사진으로 보는 발칸반도 4-순한부부 버젼 타이어의 못을 뽑고 - 복효근(1962~ ) ( … )타이어에 박힌 못을 함부로 잡아 뽑아버리고서 알았다 빼는 그 순간 피식피식 바람이 새어나가 차는 주저앉고 만다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 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둔 채 정비소로 가든지 폐차장으로 가든지 갈 데까지는 가는 것 갈 때까지는 가.. 먼나라 이야기 2014.08.26
사진으로 보는 발칸반도 3-순한부부 버젼 사막 - 박태일(1954~ ) 게르는 둥글다 게르에선 발소리도 둥글다 게르 앞에서 아이가 돌멩이를 굴린다 둥글게 금을 긋고 논다 아이 얼굴도 둥글다 햇볕에 씹혀 검고 마른 꽃을 잔뜩 심었다 아이는 여자로 잘 자랄 수 있을까 더위를 겉옷인 양 걸친 양떼 헴헴헴 게르 앞을 지나간다 슬픔을 둥.. 먼나라 이야기 2014.08.26
사진으로 보는 발칸반도 2-순한부부 버젼 나를 열어주세요 - 나희덕(1966~ ) 옆구리에 열쇠구멍이 있을 거예요. 찾아보세요. 예, 거기에 열쇠를 꽂아주세요. (…) 몇 걸음이라도 걸어야 살 것 같아요. 열쇠를 찾을 수 없다고요? 당신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있잖아요. 손가락만큼 좋은 열쇠는 드물죠. 때로는 붓이 되기도 하고 칼.. 먼나라 이야기 2014.08.26
사진으로 보는 발칸반도 1 -하늘 버젼 결에 관하여 - 조창환(1945~) 나무에만 결이 있는 게 아니라 돌에도 결이 있는 걸 알고 난 후 오래된 비석을 보면 손으로 쓰다듬는 버릇이 생겼다 돌의 결에 맞추어 잘 쪼아낸 글씨를 보면 돌을 파서 글자를 새긴 것이 아니라 글자를 끌어안고 돌의 결이 몸부림 친 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 먼나라 이야기 201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