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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5 (마르세유~니스, 3/26)

홍일표 촌스런 계집아이처럼 뾰조름 내민 수줍은 얼굴은 서릿발 풀린 하얀 달빛에 빚은 꽃 오뉴월 솜털 솟은 텃밭에 허수아비 반겨 삼삼히 묻어나는 엄니처럼 뙤약볕에 종일 흰 수건 덮어쓰고는 풍년 들 거라 기도하는 이제 껍질을 벗어 서걱거리는 치마폭 담아낸 속내 봉오리마다 웃음으로 벙그는 아침 같은 새큼한 파꽃입니다  오늘은 마르세유에서 니스로 가는날. 기차 시간이 10:20 이라 아침을 천천히 먹기로 해 8:30 만나 아침을 럭셔리하게 먹었다.출발 시간까지 여유가 있는지라 하늘 빼고 식당 가는 차림으로 역사 근처를 돌아보기로 했다.헌데 수산나는 맨발인데 밖에 나오니 춥다. 역사에 가봐도 앉을 자리도 제대로 없어 얼른 들어왔다.   체크아웃 하는데 신나는 음악이 나온다. 음악에 대한 예의로 춤을 추니 웃긴다고..

먼나라 이야기 2024.05.04

남프랑스 4 (마르세유, 3/25)

남정림 누가 너를 보잘것없다 했느냐 잠간 피었다 지는 소임에 실핏줄이 훤히 드러나도록 솜털이 요동칠 정도로 있는 힘을 다했는데 ​땅에 납작 엎드려 살아도 햇살 한줌 머무르는 변두리 골목 귀퉁이를 데우는  너는 하늘의 눈물로 키우는 꽃  이 호텔은 역 바로 옆이어선지 아침 일찍부터 조식이 가능하다고 한다. 호텔 수준도 조금 높아서인지 조식도 다양하고 선택의 여지가 많아 많이 먹었다. 그리고 내일은 아침 출발인지라 실제 마르세유 관광 할 시간은 오늘 하루 밖에 없다.다소 쌀쌀한 날씨에 출발. - 마르세유 역사 앞 호텔을 나서면 바로 마르세유 역.역 앞 계단에서 인증샷 하고 일단은 바닷가로 출발.마르세유는 항구도시로 역사가 아주 긴 프랑스에서 제일 오래된 도시라고 한다. 여기가 치안이 안 좋은건 아랍계 사람들..

먼나라 이야기 2024.05.03

남프랑스 3 (고르드~엑상 프로방스, 3/24)

김선우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먼나라 이야기 2024.05.02

남프랑스 2 (레보드 프로방스-아를, 3/23)

이병률한 오만 년쯤 걸어왔다며 내 앞에 우뚝 선 사람이 있다면 어쩔테냐 그 사람 내 사람이 되어 한 만 년쯤 살자고 조른다면 어쩔테냐 후닥닥 짐 싸들고 큰 산 밑으로 가 아웅다웅 살 테냐 소리소문 없이 만난 빈 손의 인연으로 실개천 가에 뿌연 쌀뜨물 흘리며 남 몰라라 살 테냐 그렇게 살다, 그 사람이 걸어왔다는 오만 년이 오만 년 세월을 지켜온 지구의 나무와, 무덤과, 이파리와, 별과.. 짐승의 꼬리로도 다 가릴 수 없는 넓이와 기럭지라면, 그때 문득 죄지은 생각으로 오만 년을 거슬러 혼자 걸어갈 수 있겠느냐 아침에 눈뜨자마자, 오만 개의 밥상을 차려 오만 년을 노래 부르고, 산 하나를 파내어 오만 개의 돌로 집을 짓자 애교 부리면 오만 년을 다 헤아려 빚을 갚겠느냐 미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는 봄날,..

먼나라 이야기 2024.05.01

남프랑스 1 (파리-아비뇽, 3/22)

박규리  나에게도 소원이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낮게 드리운 초라한 집 뜰에 평생을 엎드려 담장이 될지언정 스스로 빛나 그대 품에 들지 않고 오직 무너져 흙으로 돌아갈 한 꿈밖엔 없는 돌이 되는 겁니다 구르고 구르다 그대 발 밑을 뒹굴다 떠돌다 떠밀리다 그대 그림자에 묻힌들 제아무리 단단해도 금강석이 되지 않고 제아무리 슬퍼도, 그렇지요 울지 않는 돌이 되는 겁니다 이내 몸, 이 폭폭한 마음 소리없이 스러지는 어느날, 그렇게 부서져 고요히 가라앉으면 다시 소쩍새, 다시 소쩍새 우는 봄날에 양지바른 숲길에 부풀어오른 왜 따스한 흙 한줌 되지 않겠습니까 지쳐 잠든 그대 품어안을 눈물겨운 무덤 흙 한줌, 왜 되지 않겠습니까  아침 일찍 우리도 출발 준비를 했고 주인이 와서 열쇠 받고 짐을 들어 준다는데 큰 ..

먼나라 이야기 2024.05.01

프랑스 한달살기 14 (몽파르나스 타워, 3/21)

임두고 늦은 사월 사방이 수초처럼 젖어 있어 까닭 모를 내 그리움 그 속 깊은 곳까지 젖고 있다. 문득 젖은 알몸으로 다가서는 뜰 앞의 박태기 박태기나무 꽃들은 그저껜가 그그저껜가 계단 위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던 그녀의 치마폭처럼 자줏빛 지울 수 없는 자줏빛이다. 박태기 박태기나무 꽃이여 하필이면 네 꽃이름이 박태기인가 아무렇게나 불리워진 네 꽃이름으로 인하여 나는 지금 아무렇게나 나뒹굴던 어린 시절 마른 수수깡 팔랑개비처럼 가벼워진다. 그리움은 젖을수록 가벼운 날개를 다는가 내 가슴은 지금 그 모순을 접어 만든 팔랑개비 누가 작은 바람끼만 건네도 천만 번 회오리치며 돌아버릴 것 같은 미쳐버릴 것 같은 가벼움 속으로...... 나는 지금 그렇게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있다. 박태기 박태기나무 꽃이여 네 꽃이 ..

먼나라 이야기 2024.05.01

프랑스 한달살기 13 (몽생미셸, 3/20)

이진명 베란다 창이 가른 검은 그늘의 안쪽에서 바깥의 찬연한 햇빛 속, 잔꽃송이들을 새빨갛게 뭉쳐 매단 명자나무를 익히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명자야, 하고 불러버렸다. 외로움과 시름이 탕, 깨어나더니 명자야. 뭐하니. 놀자. 명자야. 우리 달리기 하자, 돌던지기 하자.숨기놀이 하자. 명자야. 나 찾아봐라. 나 찾아봐라. 숨어라. 나와라. 나와라. 베란다 창이 가른 검은 그늘의 안쪽에서 바깥의 찬연한 햇빛 속, 잔꽃송이들을 새빨갛게 뭉쳐 매단 명자나무를 익히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명자씨, 하고 불러버렸다. 외로움과 시름이 땅, 달려나가더니 명자씨. 우리 결혼해. 결혼해주는 거지. 명자씨. 우리 이번 여름휴가 땐 망상 갈까.망상 가자. 모래가 아주 좋대. 명자씨. 망상 가서, 망상 바다에 떠서, 멀리 멀리로. ..

먼나라 이야기 2024.05.01

프랑스 한달살기 12 (라파에트~에펠탑, 3/19)

김종제 캄캄한 어둠에 한 줄기 빛을 던져주어 꽃도 나무도 눈을 번쩍 떴으니 새벽, 당신이 스승이다 얼어붙은 땅속에 숨쉬고 맥박 뛰는 소리를 던져주어 온갖 무덤의 귀가 활짝 열렸으니 봄, 당신이 스승이다 정수리를 죽비로 내려치며 한순간 깨달음을 주는 것은 말없이 다가오므로 스쳐가는 바람처럼 놓치지 않으려면 온몸으로 부딪혀 배워야 하는 법 흘러가는 강물과 타오르는 횃불과 허공에 떠 움직이지 않고 바닥을 응시하는 새와 제 태어난 곳을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고 죽어가는 물고기도 감사하고 고마운 스승이다 죄 많은 우리들 대신에 십자가에 사지를 못박히는 일과 생을 가엾게 여기고 보리수나무 아래 가부좌하는 일이란 세상 똑바로 쳐다보라고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 라파에트 오픈런  이번 여행 미션 중 샤넬백 구입을 ..

먼나라 이야기 2024.05.01

프랑스 한달살기 11 (라발레 빌리지 아울렛, 3/18)

박인혜겨우내 비밀스레 숨어있던 그들이 환하게 피어났다. 벚꽃 세상을 만들었다. 벚꽃을 닮은 사람들이 다가오자 벚꽃은 꽃잎을 바람에 날리며 환영해준다. 벚꽃의 세상이다. 벚꽃 아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점심을 먹는다. 벚꽃 같은 사랑을 피우고자 하는 연인들이 모여든다. 벚꽃 닮은 강아지가 뛰어다닌다. 벚꽃나무와 함께 아이들이 웃는다. 벚꽃 세상의 사람들이 벚꽃 아래에서 벚꽃처럼 즐거워한다, 벚꽃 세상에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은 벚꽃처럼 아름답다.  일단 뮤지엄 패스는 나름 알뜰하게 사용했고 오늘부터는 패스에 매이지 않고 그야말로 자유로운 시간.여기까지 왔는데 아울렛을 가줘야 한다는데 동의해 아침 먹고 나비고 충전 (사람이 없어 기계에서 무사히 충전 성공) 을 했고 환승해 RER A 선 타고 이동. 기차..

먼나라 이야기 2024.04.30

프랑스 한달살기 10 (빌라 사보아~라 데팡스, 3/17)

이상복 죽음은 삶의 먼 반대편에서 서성이며 막연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 내가 삶의 비릿한 고통의 바다에 허우적거리는 동안, 꼭 그만큼의 거리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매끄러운 지느러미를 흐느적거리니 정라항 포구에서 처음 먹어본 곰치국은 곰치의 살이 부드럽다 못해 흐물거렸다 순두부처럼 몸의 살이 흐물흐물 풀어져 줏대도 없이 높은 곳이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한없이 낮게 구부리며 예, 예 하고 밑으로 흐를 줄만 아는 내 옆, 누군가의 그 물의 성향을 많이 닮았다 울긋불긋 각종 양념으로 얼큰하게 끓여온 동해 바다, 한 그릇 곰치의 뼈와 살이 다 풀어진 수평선을 조심스럽게 헤집으며 떠먹으며 그의 본래의 모습은 어디 있나(나의 모습은 또 어디 있나) 끝내 (못 다한 말이 있다는 듯) 입을 크게 주..

먼나라 이야기 2024.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