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들 산에 들다 (삼각산, 3/6) 무생물도 봄을 기다린다 -최금녀(1941~ ) 백통으로 만든 새 두 마리가 날 자신이 생겼다는 듯 마당에서 날개를 뒤로 모아 푸드득거리고 깎아 만든 나무오리 다섯 마리가 주둥이를 더 높이 쳐들고 막 달려갈 기세이고 모처럼 거풍 나온 오리털 이불 3개는 빨래 줄에서 기분이 좋은 듯 흔들 흔들 입 꾹 다물.. 산행기/2010산행기 2010.03.10
비가 눈이 되던 날 (양주 감악산,3/1) ‘겨울비1’ - 박남준(1957~ ) 먼 바람을 타고 너는 내린다 너 지나온 이 나라 서러운 산천 눈 되지 못하고 눈 되지 않고 차마 그 그리움 어쩌지 못하고 감추지 못하고 뚝뚝 내 눈앞에 다가와 떨구는 맑은 눈물 겨울비, 우는 사람아 가을 다 가버린 하늘 잿빛으로 사그라지는데. 온 길 다시 가야 할 길 모두.. 산행기/2010산행기 2010.03.05
친구야, 스트레스 풀러 산에 가자~ (모락산, 2/28) ‘곰곰’-안현미(1972~ ) 주름진 동굴에서 백 일 동안 마늘만 먹었다지 여자가 되겠다고? 백 일 동안 아린 마늘만 먹을 때 여자를 꿈꾸며 행복하기는 했니? 그런데 넌 여자로 태어나 마늘 아닌 걸 먹어본 적이 있기는 있니? 서정주 시인이 30년간 살며 문학인들 사랑방 노릇 했던 관악산 자락 집 이름이 봉.. 산행기/2010산행기 2010.03.03
언니들과 청계산 가기 (2/27) 오리(五里) - 이문숙(1958~ ) 꿈속에서도 시를 쓴다는 거 내가 알지 못하는 오리(五里) 밖에서도 무슨 일 같은 게 일어나 시를 쓰게 한다는 거 안 잊어버리려고 종이에 깨알같이 그러다 깨어나면 밀초와 촛대 사이 펼쳐져 있던 책 ‘순백은 독맹이라’ 그 구절 하나 남기고 싹 다 지워진 책 순백의 구름을 .. 산행기/2010산행기 2010.03.02
염두에 두었던 조령산 가기 (2/24~5) 다림질을 하면서 - 김서희(1965 ~ ) 주름진 당신의 시간들을 하나하나 펼쳐본다 꼬깃꼬깃한 셔츠 깃, 소매 자락 고온 열로 쫙 - 쫙 뜨거운 길을 낸다 하얗게 몽쳐진 옹이가 맺혀있어 스쳐 지나는 그 흔적이 아프다 날을 세운다 빳빳이 깃 날을 세운다 물컹하면 견디기 힘든 세상 물기 젖은 당신의 내일에 .. 산행기/2010산행기 2010.02.26
금호남정맥 가기 (반월지-오룡지, 2/21) 소식 -한분순(1943∼ ) 꿈이 발효(醱酵)하고 있을 밤의 여울목에 낙과(落果) 옷 벗는 소리, 시간이 쌓이는 소리 이 겨울 긴 아픔을 삭이며 한 약속(約束)이 피느라… 홀로 늘 웃음을 익혀 아득히 다사로운 마음 손 시린 이들을 가려 입김도 나눠 쪼이고 바람이 사오나온 뜰에 별은 와서 머문다. 와아, 하고 .. 산행기/2010산행기 2010.02.24
모락, 백운 넘어 레자미로.. (2/17) ‘얼음 날개’-백무산(1955~ ) 눈에 젖은 좁은 산길 넘네 마른 솔잎 지고 언 땅 오도독 오도독 밟히는 길 길가 느릅나무 가지에 매달린 새 둥지 하나 보네 잎들 져버려 휑하니 드러난 다섯 개의 알들 오돌오돌 떨며 눈을 맞고 있네 어미는 돌아오지 않고 계절은 이미 지났는데 (중략) 눈발은 굵어지고 둥.. 산행기/2010산행기 2010.02.17
삼각산, 눈 이불 덮었네~ (2/15) '설날 아침에' -김종길(1926~ )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중략)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 만한 곳, 한 살 나이를 더한 만.. 산행기/2010산행기 2010.02.16
남한산성에서 헤매기 (2/11) ‘동천(冬天)’ - 서정주 (1915~2000)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남긴 시 천여 편 편편이 우리네 삶과 모국어의 숨통인데도 서정주 절창은 이렇듯 동지섣달 추위와 긴긴 밤.. 산행기/2010산행기 2010.02.12
당나귀와 금호남 정맥 이어가기 (차고개-신광재, 2/7) ‘인삼밭을 지나며’-정호승(1950~ ) 내 어찌 인간을 닮고 싶었으랴 내 일찍이 풀의 이름으로 태어나 어찌 인간의 이름을 닮고 싶었으랴 나는 하늘의 풀일 뿐 들풀일 뿐 어찌 인간의 영혼을 지녔으랴 어찌 인간이 되고 싶었으랴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 하늘과 땅 사이 모든 것을 도리로써 생육하고 주.. 산행기/2010산행기 2010.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