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굴과 묘지를 지나 금남을 걷다 (만학골-이인교차로, 7/18) ‘시인이 된다는 것’ -밀란 쿤데라(1929~ )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 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보는 것, 그 전엔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 왜냐면 삶이라는 셈이 그대에게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낮게 계산될 수 있기 때.. 산행기/2010산행기 2010.07.20
언제나 초보의 암벽 민폐기 (인수 고독길, 7/11) 폭포 - 오세영 (1942 ~ ) 흐르는 물도 때로는 스스로 깨지기를 바란다. 까마득한 낭떠러지 끝에서 처연하게 자신을 던지는 그 절망, 사람들은 거기서 무지개를 보지만 내가 만드는 것은 정작 바닥 모를 수심(水深)이다. 굽이치는 소(沼)처럼 깨지지 않고서는 마음 또한 깊어질 수 없다. 봄날 진달래, 산벚.. 산행기/2010산행기 2010.07.13
알바로 얼룩진 금남정맥-안개 속을 헤매다 (엄사리-만학골, 7/3~4) 감사합니다 하나님 - 베르나르 다디에 (1916 ~ )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를 흑인으로 창조하신 것을, 나를 모든 슬픔의 합계로 만드신 것을, 세계를 내 머리 위에 올려놓으신 것을, 나는 센토오르의 옷을 입고 첫날 아침부터 줄곧 세계를 나릅니다. 흰색은 한 번의 성대한 축제를 위한 것이지만 검은 색은 .. 산행기/2010산행기 2010.07.06
지리를 염두에 두었으나.. (예빈-예봉산, 6/27) 실비 - 오탁번(1943 ~ ) 비 내릴 생각 영 않는 게으른 하느님이 소나무 위에서 낮잠을 주무시는 동안 쥐눈이콩만 한 어린 수박이 세로줄 선명하게 앙글앙글 보채고 뙤약볕 감자도 옥수수도 얄랑얄랑 잎사귀를 흔든다 내 마음의 금반지 하나 금빛 솔잎에 이냥 걸어두고 고추씨만 한 그대의 사랑 너무 매워.. 산행기/2010산행기 2010.06.28
정맥은 힘들어... (물한이재-양정고개, 6/20) 우리 앞이 모두 길이다 -이성부(1942∼ ) 이제 비로소 길이다 가야 할 곳이 어디쯤인지 벅찬 가슴들 열어 당도해야 할 먼 그곳이 어디쯤인지 잘 보이는 길이다 이제 비로소 시작이다 가로막는 벼랑과 비바람에서도 물러설 수 없었던 우리 가도 가도 끝없는 가시덤불 헤치며 찢겨지고 피 흘렸던 우리 이.. 산행기/2010산행기 2010.06.22
영등회 여성봉 찾아가기 (도봉산, 6/19) 실연 - 송찬호(1959~ ) 여자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여자는 말똥을 담는 소쿠리처럼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울을 보지 않고 지낸 얼마 사이 초승달눈썹 도둑이 다녀간 게 틀림없었다 거울 속 상심으로 더욱 희고 수척해 진 비련의 여인에게 구애의 담쟁이덩굴이 뻗어가 있었던 것이다.. 산행기/2010산행기 2010.06.22
대둔산의 재발견 (배티재~물한이재, 6/6) 대낮을 짖다 - 이 진 (1957~ ) 개목걸이로 채운 대낮이 심심하다 노란 페인트칠 벗겨진 철제대문 안 쭈그린 개밥그릇 앞에 한낮의 햇살이 배를 깔고 엎드려 있다 골목길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에 바짝 귀를 세우면 먼 하늘로 발돋움하는 낮달 한 척 먹먹한 고요가 살아서 출렁거린다 봄인가 했더니 어느새.. 산행기/2010산행기 2010.06.08
대간도 이렇게 널널할 수 있구나.... (성삼재~여원재, 5/29~30)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김선우(1970~ )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 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이 물음.. 산행기/2010산행기 2010.06.01
여산 사진으로 본 바래봉 (5/21) 그 여자는 시간을 건너뛴다 - 김윤배(1944~ ) 식품을 고를 때마다 유효기간을 살피는 여자를 알고 있다 유효기간에서 하루를 지나도 폐기처분하는 여자는 무엇이나 유효기간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 여자의 젊은 날의 유효기간을 그 칼 같은 시간의 종단을 의문하고 그 여자는 나이 스물둘이 젊음의 유.. 산행기/2010산행기 2010.05.31
장수 프로젝트 첫날 바래봉 가기 (인월~정령치, 5/21) 옛집으로 가는 꿈 - 박형준 (1966~ ) 소 잔등에 올라탄 소년이 뿔을 잡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땅거미 지는 들녘. 소가 머리를 한번 흔들어 소년을 깨우려 한다. 수숫대 끝에 매달린 소 울음소리 어둠이 꽉 찬 들녘이 맑다. 마을에 들어서면 소년이 사는 옴팍집은 불빛이 깊다. 소는 소년의 숨결을 따라 별.. 산행기/2010산행기 2010.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