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조 어제 피운 바람꽃 진다 팔월염천 사르는 농염한 꽃불 밤 사이 시들시들 검붉게 져도 또다른 망울에 불을 지핀다 언제쯤 철이 들까? 내내 자잘한 웃음소리 간드러지는 늙은 배롱나무의 선홍빛 음순 날아든 꿀벌을 깊이 품고 뜨겁다 조금 사리 지나고 막달이 차도 좀처럼 하혈이 멎지 않는 꽃이다 호시절을 배롱배롱 보낸 멀미로 팔다리 휘도록 늦바람난 꽃이여 매미도 목이 쉬어 타는 말복에 생피같이 더운 네 웃음 보시한들 보릿고개 맨발로 넘다가 지친 내 몸이 받는 한끼 이밥만 하랴 해도, 오랜 기갈을 견뎌온 나는 석달 열흘 피고 지는 현란한 수사(修辭) 네 새빨간 거짓말도 다 믿고 싶다 그 쓰린 기억 뒤로 가을이 오고 퍼렇게 침묵하던 벼이삭은 패리라 처서 지나 한로쯤 찬이슬 맞고 햇곡도 다 익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