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기맥 3구간 가기 (들독재-축령산-무금치, 5/5) 까치밥 - 김승기(1960~ ) 빈 가지에 달린 누구의 빨간 심장 하나 어느 허기진 살림살이 한 두어 평, 넓어지겠다 제 부리에 묻은 선혈(鮮血)의 따듯함을 모르는 어리석음도 언젠가 누굴 위해 저렇게 제 심장 내걸 날 있을 테지 누군가 허공에 남겨 둔 까치밥은 굶주린 자를 위한 사랑의 표현이.. 산행기/2019산행 2019.05.06
진달래 만나러 고려산 갔으나 (4/24) 방울토마토 - 이향지(1942~ ) 방울토마토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내가 먹었다. 그가 먹었다. 방울토마토가 먹었다. 나는 방울토마토나무였는데, 지금은 없다. 효정이가 먹었다. 경로가 먹었다. 방울토마토가 먹었다. 그 아이들은 탐스러운 방울토마토였는데, 지금은 없다. 내가 먹었다. .. 산행기/2019산행 2019.04.25
산행도 하고 두릅도 따고... (영산기맥:장성갈재-방장산-금곡마을, 4/21) 페르소나 -장이지(1976~ ) 동생은 오늘도 일이 없다.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동생 몰래 정리해본 동생의 통장 잔고는 십오만 원. 서른세 살의 무명 배우는 고단하겠구나. 학교에서 맞고 들어온 이십여 년 전의 너처럼 너는 얼굴에 무슨 불룩한 자루 같은 것을 달고 있는데. 슬픔이 인.. 산행기/2019산행 2019.04.23
꽃비 맞으며 안산-인왕산 가기 (4/20) 사랑의 비밀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 그대 사랑 절대 말하려 애쓰지 말아요.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 미풍이 불어오듯 조용히, 보이지 않게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나는 내 사랑을 말해버렸어요. 고백해버렸어요, 온 마음을 다해 떨면서 차분하게, 무서운 두려움 속에서. 아, 그.. 산행기/2019산행 2019.04.22
안양천 벚꽃 나들이 (4/10) 보헤미안 광장에서 -김상미(1957~ ) 갑자기 내리는 비 그 비를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펼쳐지는 우산들 그러나 우산은 지붕이 아니다 아내 있는 남자가 남편 있는 여자가 몰래 잠깐 피우는 바람 같은 것이다 갑자기 내린 비가 멎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러니 사랑을 하려거든 진짜 돌이킬 .. 산 이외.../2019일기 2019.04.10
새로운 기맥 도전과 시산제 (영산기맥: 대가저수지-입암산-장성갈재, 4/7) 슬픔의 진화 - 심보선(1970~ ) 내 언어에는 세계가 빠져 있다 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 내 방에는 조용한 책상이 장기 투숙하고 있다 세계여! 영원한 악천후여! 나에게 벼락 같은 모서리를 선사해다오! 설탕이 없었다면 개미는 좀더 커다란 것으로 진화했겠지 이것이 내가 밤새 고민 끝.. 산행기/2019산행 2019.04.07
모락산 가기 (4/6) 연인들 -옥타비오 파스(1914~1998) 풀밭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밀감을 먹는다, 입술을 나눈다 파도와 파도가 거품을 나누듯이. 해변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레몬을 먹는다, 입술을 나눈다 구름과 구름이 거품을 나누듯이. 땅 밑에 누워서 처녀 하나, 총각 하나 말이 없다, 입.. 산행기/2019산행 2019.04.06
영화보고 관악산 가기 (3/31) 간단한 부탁 -정현종(1939~) 지구의 한쪽에서 그에 대한 어떤 수식어도 즉시 미사일로 파괴되고 그 어떤 형용사도 즉시 피투성이가 되며 그 어떤 동사도 즉시 참혹하게 정지하는 전쟁을 하고 있을 때, 저녁 먹고 빈들빈들 남녀 두 사람이 동네 상가 꽃집 진열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풍경의 감.. 산행기/2019산행 2019.03.31
미녀삼총사 관악산 가기 (3/24) 돌 -김윤성(1925~2017) 달팽이가 돌 위에 올라앉은 아침 뒷발을 뱀에게 물린 개구리가 버둥대며 마지막 보는 돌 삼분지 일쯤 땅에 묻혀 있는 늘 그날이 그날 같은 돌의 생애 나뭇잎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돌 한 번도 사람 손에 닿아본 적 없는 잡초 속에 호젓이 굴러 있는 돌 (…) 아.. 산행기/2019산행 2019.03.24
한북정맥 일단은 졸업 (공양왕릉-장명산, 3/17) 네모를 향하여 -최승호(1954~) 은행 계단 앞 은행나무 잎사귀들이 땡볕에 지쳐 축 늘어져 있다 이 여름 도시에선 모두들 얼마나 피곤하게 살아오고 또 죽어가는지 (…) 자라나는 빌딩들의 네모난 유리 속에 갇혀 네모나는 인간의 네모난 사고방식, 그들은 네모난 관 속에 누워서야 비로소 네.. 산행기/2019산행 2019.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