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사모 걷기 (화랑대역-당고개역, 3/16) 시의 시대 -이창기(1959~ ) 라면이 끓는 사이 냉장고에서 달걀 하나를 꺼낸다. 무정란이다. 껍데기에는 붉은 핏자국과 함께 생산일자가 찍혀 있다. 누군가 그를 낳은 것이다. 비좁은 닭장에 갇혀, 애비도 없이. 그가 누굴 닮았건, 그가 누구이건 인 마이 마인드, 인 마이 하트, 인 마이 소울을 .. 산 이외.../2019일기 2019.03.17
한북정맥 눈 밟기 산행 (샘내고개-울대고개, 2/17) 소가죽 구두 -김기택(1957~ ) 비에 젖은 구두 뻑뻑하다 발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신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구두는 더 힘껏 가죽을 움츠린다 구두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린 적은 없었다 구두주걱으로 구두의 아가리를 억지로 벌려 끝내 구두 안에 발을 집어넣고야 만다 발이 주둥이를 틀어.. 산행기/2019산행 2019.02.18
동계 설악 가기 2 야간 통행 금지 -폴 엘뤼아르(1895~1952) 어쩌란 말인가 문은 감시받고 있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갇혀 있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거리는 차단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도시는 정복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도시는 굶주려 있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무장 해제되었는데 어쩌란 말인가 .. 산행기/2019산행 2019.02.11
동계 설악가기 1 (2/1~2) 섬 비금도(飛禽島) -강기원(1957~ ) 날고 싶은 섬 한 마리가 있다 지느러미 없이 헤엄쳐 가고픈 섬 한 마리가 있다 덫에 걸린 매처럼 때때로 푸드덕거리는 섬 연자맷돌을 메고 비상하려는 섬 일몰의 두근거리는 선홍빛 명사십리 바다도 어쩌지 못하는 섬 한 마리 내 안에 있다 새가 나는 모.. 산행기/2019산행 2019.02.11
리사 생파 (2/9) 페르소나 -장이지(1976~ ) 동생은 오늘도 일이 없다.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동생 몰래 정리해본 동생의 통장 잔고는 십오만 원. 서른세 살의 무명 배우는 고단하겠구나. 학교에서 맞고 들어온 이십여 년 전의 너처럼 너는 얼굴에 무슨 불룩한 자루 같은 것을 달고 있는데. 슬픔이 인.. 산 이외.../2019일기 2019.02.09
한북정맥 3부로 나누어 산행하기 (비득재-샘내고개, 1/20) 빅 풋 -석민재(1975~ )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 산행기/2019산행 2019.01.22
신년 지리 반주기 2 (장터목-거림, 1/3) 신유년 겨울 -조영일(1944~ ) 십이월 중앙선 길은 온통 추위만 남아 치악을 넘을 때쯤 인적도 수척해지고 칠흑의 어둠 속으로 눈발만 자욱했다. 서울을 이기지 못해 돌아선 천 리 먼 길 막소주 한잔에 가려 분함도 흐트러놓고 숨 죽여 우는 산야만 차창을 따라 섰다. 서울에 모든 게 있다. 다 .. 산행기/2019산행 2019.01.04
신년 지리 반주기 1 (백무동-장터목, 1/2~3) 새해의 노래 -정인보(1893~1950) 온 겨레 정성덩이 해 돼 오르면 올 설날 이 아침야 더 찬란하다 뉘라셔 겨울더러 춥다더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깃발에 바람 세니 하늘 뜻이다 따르자 옳은 길로 물에나 불에 뉘라셔 세월더러 흐른다더냐 한이 없는 우리 할 일을 맘껏 펼.. 산행기/2019산행 2019.01.04
1일 3산? (모락-백운-바라산, 12/25) 한 친구에 대해 생각한다 -막스 에어만(1872~1945) 한 친구에 대해 생각한다 어느 날 나는 그와 함께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만원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늦어지자 그는 여종업원을 불러 호통을 쳤다 무시를 당한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난 지금 친구의.. 산행기/2018산행 2018.12.26
한북정맥에서 눈을 만나다 (노채고개-청계산, 도성고개, 12/16) 폭설 -류근(1966~ )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온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온 길도 간 길도 없이 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람 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 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 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 산행기/2018산행 2018.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