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파리와 음악회 (9.25) ‘가을밤’-정두수(1937~ ) 1. 달빛마저 싱그러운 들길을 혼자 가면 나락 단 묶음마다 흐르는 고운 달빛 오늘처럼 오롯이 행복한 푸른 밤엔 호수 깊이 파묻힌 파묻힌 저 별들을 조리로 그대 함께 건지고 싶어라 2. 마른 잎이 떨어지는 가을 길 혼자 가면 등불이 켜져 있는 마을엔 푸른 달빛 .. 산 이외.../2012 일기 2012.09.29
심판강습 보수교육 (9/1~2) 난처한 늦둥이 - 김영무(1944~2001) 새벽 아득한 잠결에 누군가 얼굴을 더듬는다 아내의 손길이 턱수염을 만지작거리고 눈썹을 문질러보고 오른쪽 눈두덩 아래 검버섯도 쓸어본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숨을 죽인다 아내의 손길이 더듬는 것 스물다섯 해 우리들이 함께한 이 세상 소풍 이야기.. 산 이외.../2012 일기 2012.09.05
비내리던 날 (8/30) 퇴원 - 김민서 (1959~ ) 콘크리트 숲의 혈관에 링거 줄 꽂은 수양버드나무 푸른 피를 수혈한다 햇빛의 방사선과를 다녀온 허리 삐끗한 민들레 빛의 오염으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하다 중환자실을 힘겹게 벗어난 환자들 색색인 시간의 회복실 봄의 계단에 경솔한 엉덩이로 종종거리며 햇살 .. 산 이외.../2012 일기 2012.08.30
춘천 샘밭약국 (8/13) ‘숯불의 시’-김신용(1945~ ) 숯불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는 것 같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온기로 몇 알의 감자라도 익힌다면 사그라져 남는 재도 따뜻하리라,고 생각하는 눈빛 같다. 수확이 끝난 빈 밭에 몇 줌의 감자를 남겨두는 경자(耕者)의 마음도 저와 같을까? 묻힌 것에게 체온 다.. 산 이외.../2012 일기 2012.08.27
아버지 생신하기 (8/4) 사모곡 - 김종해(1941~ )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상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나의 별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은 이름 어·머·니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는 뵐 때마다 내게 누구냐.. 산 이외.../2012 일기 2012.08.14
철사모 버스데리 파리 (7/13) 어느 해거름 - 진이정(1959~1993) 멍한, 저녁 무렵 문득 나는 여섯 살의 저녁이다 어눌한 해거름이다 정작, 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다 여섯 살엔 무얼 했을까. 일할 힘도 공부할 힘도 없어 놀았을 것이다. 노는 것처럼 놀았을 것이다. 여섯 살은 텅 빈 나이, 말은 배웠으나 글.. 산 이외.../2012 일기 2012.07.16
2012 엄홍길과 함께 하는 청소년 산악체험 학교 (6/9~10) 나의 가난은 - 천상병(1930~1992) 오늘 아침은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도 잔돈 몇 푼이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 산 이외.../2012 일기 2012.06.12
청소년박람회 부스 지키기 (5/26) 물 통(桶) - 김종삼(1921~1984) 희미한 풍금(風琴) 소리가 툭 툭 끊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 아닌 인간(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桶) 길어다 준 일 밖에 없다고 머나먼 광야(廣野)의 한복판 얕은 하늘 밑으로 영롱한 날빛으로 하여금 따우에선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았느냐는 물음에 “땅 위에서는 영롱한 날빛을 시켜 다름 아닌 인간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준 일밖에 없다”고 대답하는 이 내용 없는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 빈자리는 실용(實用)을 비워내고 환상을 채워 넣으려는 예술가의 자의식이 차지하는 여백이므로 투명하기만 하다. 그가 길어온 물(시)로 영혼의 기갈을 축여온 독자에겐 무위(無爲)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다. 황금같은 연휴 첫날에 부스를 지켜.. 산 이외.../2012 일기 2012.06.01
간송 대신 길상사로... (5/21) 간송미술관 전시 한다고 보러 가자는 하늘. 날짜가 오늘 밖에는 안되 만나러 가는길. 주말에는 인파가 어찌나 많았는지 삼선교까지 줄을 섰다고... 헌데 오늘은 조용하다. 내심 절묘한 시간에 왔다고 좋아했더니 알고보니 사람이 몰리니 아예 문을 닫아 걸고 더 이상 입장을 안시켜 되돌.. 산 이외.../2012 일기 2012.05.23
순한공주 버스데이 파리 (5/2) 벼/이성부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와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하늘에도 서.. 산 이외.../2012 일기 2012.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