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가리왕산 마라톤 나들이 (8/18~19) ‘저녁상’- 이문구(1941~2003) 멍석 펴고 차려 낸 저녁상 위에 방망이로 밀고 민 손국수가 올랐다. 엄마는 덥다면서 더운 국물을 마시고 눈 매운 모깃불 연기 함께 마시고, 아기는 젓가락이 너무 길어서 집어도 집어도 반은 흘리고, 강아지는 눈치 보며 침을 삼키고 송아지는 곁눈질로 입맛 다시고. .. 산 이외.../마라톤 2007.08.21
애주가 소풍날, 주님부부를 만나다 (4/29) '더딘 사랑' - 이정록(1964~ )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 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그대에게 한없이 더딘 것이 내게 한없이 빠른 것이기도 하여 애간장이 탄다. 세상의 아름답고 장엄한 풍경들 그대.. 산 이외.../마라톤 2007.04.30
황사경보날, 드림팀 일산에서 뛰다 (4/1) 봄의 금기사항/신달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 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 산 이외.../마라톤 2007.04.01
동마에서 4시간 30분 벽을 깨다 (3.18) '마음' - 곽재구(1954~ ) 아침 저녁 방을 닦습니다 강바람이 쌓인 구석구석이며 흙냄새가 솔솔 풍기는 벽도 닦습니다 그러나 매일 가장 열심히 닦는 곳은 꼭 한 군데입니다 작은 창틈 사이로 아침 햇살이 떨어지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움켜쥔 걸레 위에 내 가장 순결한 언어의 숨결들을 쏟아붓습니다 언젠.. 산 이외.../마라톤 2007.03.19
러너는 비가 와도 젖지 않는다고? (서울마라톤, 3/4) '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1970~ )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 산 이외.../마라톤 2007.03.04
완주한 것만도 기뻐라 (여수 마라톤을 뛰고, 1/7) '북관(北關)'- 백석(1912~95) 명태(明太)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여진(女眞)의 살냄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 산 이외.../마라톤 2007.01.08
메리한 크리스마스 되시와요~ '동지'- 신덕룡(1956~ ) 폭설이다. 하루 종일 눈이 내려 집으로 가는 길이 지워졌다. 눈을 감아도 환한 저 길 끝 아랫목에서 굽은 허리를 지지실 어머니 뒤척일 때마다 풀풀, 시름이 날릴 테지만 어둑해질 무렵이면 그림자처럼 일어나 홀로 팥죽을 끓이실 게다. 숭얼숭얼 죽 끓는 소리 긴 겨울밤들을 건너.. 산 이외.../2006년 일기장 2006.12.22
추월 당하지나 말지? (12/2) '밥 먹는 법'- 정호승(1950~ ) 밥상 앞에 무릎을 꿇지 말 것 눈물로 만든 밥보다 모래로 만든 밥을 먼저 먹을 것 무엇보다도 전시된 밥은 먹지 말 것 먹더라도 혼자 먹을 것 아니면 차라리 굶을 것 굶어서 가벼워질 것 때때로 바람 부는 날이면 풀잎을 햇살에 비벼 먹을 것 그래도 배가 고프면 입을 없앨 것 .. 산 이외.../마라톤 2006.12.04
빕스에서 밥먹기 '새벽 하늘'- 정희성(1945~ ) 감나무 가지가 찢어질 듯 달이 걸려 있더니 달은 가고 빈 하늘만 남아 감나무 모양으로 금이 가 있다 고구려 적 무덤 속에서 三足烏 한 마리 푸드덕 하늘 가르며 날아오를 거 같은 새벽 어스름 즈믄 해여 즈믄 해여 잎 다 떨군 겨울나무 사이 달 뜨면 그것, 한 풍경입니다. 달 .. 산 이외.../2006년 일기장 2006.11.18
육군 엄마 노릇하기 '불면'- 강정(1971~ ) 오래 전에 본 적 있는 그가 마침내 나를 점령한다 창가에서 마른 종잇장들이 찢어져 새하얀 분(粉)으로 흩어진다 몸이 기억하는 당신의 살냄새는 이름 없이 시선을 끌어당기는 여린 꽃잎을 닮았다 낮에 본 자전거 바퀴살이 허공에서 별들을 탄주하고 잠든 고양이의 꼬리에선 부지불.. 산 이외.../2006년 일기장 2006.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