뛴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여라..(동마를 뛰고) '키 큰 남자를 보면'- 문정희(1947~ )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 산 이외.../마라톤 2006.03.13
여의도에서 서울마라톤 뛰던날 '이른 봄'- 김광규(1941~ ) 초등학생처럼 앳된 얼굴 다리 가느다란 여중생이 유진상가 의복 수선 코너에서 엉덩이에 짝 달라붙게 청바지를 고쳐 입었다 그리고 무릎이 나올 듯 말 듯 교복 치마를 짧게 줄여달란다 그렇다 몸이다 마음은 혼자 싹트지 못한다 몸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해마다 변함없이 .. 산 이외.../마라톤 2006.03.06
아, 고구려 마라톤에서 '산머루'- 고형렬(1954~ ) 강원도 부론면 어디쯤 멀리 가서 서울의 미운 사람들이 그리워졌으면. 옛날 서울을 처음 올 때처럼 보고 싶었던 사람들, 그 이름들 어느새 이렇게 미워지고 늙었다. 다시 진부 어디쯤 멀리 떨어져 살아 미워진 사람들 다시 보고 싶게 시기와 욕심조차 아름다워졌으면. 가뭄 끝에 .. 산 이외.../마라톤 2006.02.19
숯가마 체험기 '물을 뜨는 손'- 정끝별(1964∼ ) 물만 보면 담가보다 어루만져 보다 기어이 두 손을 모아 뜨고 싶어지는 손 무엇엔가 홀려 있곤 하던 친구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북한산 계곡 물을 보며 사랑도 이런 거야, 한다 물이 손바닥에 잠시 모였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물이 고였던 손바닥이 뜨거워.. 산 이외.../2006년 일기장 2006.02.04
무늬만 자전거도로 ‘학생부군과의 밥상’ - 박남준(1957∼ ) 녹두빈대떡 참 좋아하셨지 메밀묵도 만두국도 일년에 한 두어 번 명절상에 오르면 손길 잦았던 어느 것 하나 차리지 못했네 배추된장국과 김치와 동치미 흰 쌀밥에 녹차 한 잔 내 올해는 무슨 생각이 들어 당신 돌아가신 정월 초사흘 아침밥상 겸상을 보는가 아.. 산 이외.../2006년 일기장 2006.01.31
배 아팠던 날 '뒤편' - 천양희(1942~ )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뒤편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넉넉한 사람이다. 넉넉한 사람은 고.. 산 이외.../2006년 일기장 2006.01.26
그놈의 발목 때문에 동쪽 반주를 못하다니... 십계 - 박두진 (1916 ~ 98)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떠내려가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무너지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뒤돌아보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눈물 흘리지 말아라. 거기서 너 서 있는 채로 너를 잃어버리지 말아라. 네가 가진 너의 속의 불을 질러라. 네가 가진 너의 .. 산 이외.../2005년 일기장 2005.12.30
구세군 자선마라톤을 뛰다(12/4) 벗이 되려면 세월이 흘러야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정의 끈도 두터워진다. 함께 괴로워하고 함께 즐거워 하는 동안에 두사람만이 통하는 세계가 만들어지고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두사람이 누구나 아는 말을 쓰는데도 3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아리숭하게 들릴 정도로 은밀한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 산 이외.../마라톤 2005.12.04
기념품 인생 조각가/海岩정미화 무엇을 만들까?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작품을 마칠 때까지 조바심치는 가슴에 풀무질을 한다. 내 마음대로 만드는 작품이건만 수없이 부수어 놓고 무너지는 가슴 쓸어내리며 숨통 끊길 듯 자맥질한다. 힘겨운 가닥은 서서히 이어지는 희망의 줄기에 다시 세워 놓는다. 오.. 산 이외.../2005년 일기장 2005.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