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 길맥잇기 (82국도-수레티고개, 2/20) 자반고등어 - 유홍준 (1962 ~ ) 얼마나 뒤집혔는지 눈알이 빠져 달아나고 없다 배 속에 한 움큼, 소금을 털어넣고 썩어빠진 송판 위에 누워 있다 방구석에 시체를 자빠뜨려놓고 죽은 지 오래된 생선 썩기 전에 팔러 나온 저 여자, 얼마나 뒤집혔는지 비늘, 다 벗겨지고 없다 바다를 기억하는 검푸른 눈알..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2.23
족가리봉찍고 집으로~ (2/19) 북어국 끓는 아침 - 이영식 (1956 ~ ) 생목이 올라 눈뜬 아침, 아내는 북어를 패고 있다 우리집 세간에도 패고 두드려 방짜로 풀어놓을 무엇이 남아 있던지 빨랫돌 위에 난장을 치고 있다 베링해에서 겨울산정까지 가시뼈 움켜쥐고 얼리고 말리던 난바다 한 덩이, 살점 튀도록 곤장치레 당한 뒤에야 황금..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2.22
1박2일 단합대회 (가은산, 2/18~19) 나팔꽃 - 송수권(1940~ )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지 흘..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2.22
땅끝길맥을 잇다 (노랭재-불티재, 2/12~13) 사라진 야생의 슬픔 - 박노해(1957∼ ) 산들은 고독했다 백두대간은 쓸쓸했다 제 품에서 힘차게 뛰놀던 흰 여우 대륙사슴 반달곰 야생 늑대들은 사라지고 쩌렁 쩡 가슴 울리던 호랑이도 사라지고 아이 울음소리 끊긴 마을처럼 산들은 참을 수 없는 적막감에 조용히 안으로 울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2.15
한남금북정맥길을 잇다 (돌고개-82번 국도, 2/6) 이 독성 이 아귀다툼 -최영철(1956~) 우울한 실직의 나날 보양하려고 부전 시장 활어 코너에서 산 민물 장어 건져놓고 주인과 천 원 때문에 실랑이하는 동안 녀석은 몇 번이나 몸을 날려 바닥을 포복했다 집이 가까워올수록 제 마지막을 알았는지 비닐 봉지 뚫고 새처럼 파닥였다 물 없는 바닥을 휘저으..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2.07
연휴선용 관악산 가기 (2/4) 홍조 - 이시영 (1949 ~ ) 내산 형수의 욕은 온 동네가 알아주는 욕이었다. 아침부터 새 샘가에서 쌀을 일다 말고 “저 자라처럼 목이 잘쑥한 위인이 밤새도록 작은마누래 밑구녕을 게 새끼 구럭 드나들듯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해쌓더니만 새복에 글씨 부엌이서 코피를 한 사발이나 쏟고는 지..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2.06
땅끝기맥을 시작하다 (1/22~23) 아버지 생각 2 - 이데레사(1960∼ ) 아버지가 면도한다. 두 볼에 비누 가득 묻히고 오른 볼에 면도날을 대려고 왼 볼로 입을 몰아붙인다. 내 입도 볼도 같이 돌아간다. 면도날 따라 비누 거품도 싹싹 밀려난다. 아버지 얼굴이 환하게 다시 나온다. 아버지 외출한다. 머리빗으로 머리 싹싹 빗어 넘긴다. 화..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2.06
성인봉 다시 가기 (1/20) 사과를 먹으며 - 함민복(1962∼ )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2.06
성인봉에 서다 (1/15) '사랑에게’ - 백인덕 (1964 ~ ) 약국을 지나고 세탁소를 지나고 주인이 졸고 있는 슈퍼를 지나 비디오 가게를 지나고 머리방을 지나고 문구점을 지나서 아이들이 버린 놀이터를 지나 네거리 신호등 앞 사랑아, 네게로 가는 길은 규칙이 없다. 놀이터를 지나고 문구점을 지나고 푸른 등 머리방을 지나고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2.05
그섬에 가다 (울릉도, 1/14) ‘한로(寒露)’-이상국(1946~ ) 가을비 끝에 몸이 피라미처럼 투명해진다 한 보름 앓고 나서 마당가 물수국 보니 꽃잎들이 눈물 자국 같다 날마다 자고 나면 어떻게 사나 걱정했는데 아프니까 좋다 헐렁한 옷을 입고 나뭇잎이 쇠는 세상에서 술을 마신다 마른 잎 서걱이는 바람소리 스산하다. 언뜻 비 한..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