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벌써 여름이? (금북정맥, 효제고개-공덕재, 6/5) 우연한 여행자/유문호 1 길에서 사랑 하나를 주웠다. 내가 그를 주웠든지 그가 나를 향해 걸어왔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지금 보푸라기 같은 감정들이 귀를 열고 올을 세우며 가늘게 눈뜨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내가 그의 곁으로, 그가 내 곁으로 왔다. 2 나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소리..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6.08
애정이 과해 사람 잡을뻔.. (삼각산, 6/4) 반성 608 - 김영승(1959~ ) 어릴 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主는 나를 놓아 주신다. 많이도 좋아한 시.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6.08
청소년 등산교육 (5/28~29) 얼음박물관 관람기 - 홍일표(1958~ ) 꽝꽝 얼어붙은 계곡 이따금 꿈틀거리는 물의 등줄기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니 물속에서 누가 둥그런 눈을 껌벅인다 가만히 안을 들여다보니 독거노인이 혼자 웅크리고 앉아 흐르는 물에 설거지를 하고 있다 달그락달그락 유리그릇 부딪는 소리 허리 굽은 노인의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6.01
금북 건너 걷기 (차동고개-효제고개, 5/15) 내 책상 위의 2009 -안현미(1972~ ) 그림과 음악과 호찌민 평전이 있다 먼지가 두껍게 앉은 스탠드도 있다 까망도 있다 의무감도 있다 최선을 다해보려 낑낑대는 나도 있다 없는 것들까지 있다 밤도 있다 겨울도 있다 아킬레스건도 있다 꿈도 있다 21세기가 있다 100명의 소녀들에게 아침을 나눠주는 당신..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5.18
비를 비껴 금수산 산행하기 (5/9~10) 山行(산행) - 송익필(宋翼弼) 山行忘坐坐忘行(산행망좌좌망행) : 산길 가다가 앉기를 잊고, 앉았다가는 갈 일을 잊네 歇馬松陰聽水聲(헐마송음청수성) : 소나무 그늘에 말을 세우고, 물소리를 듣는다. 後我幾人先我去(후아기인선아거) : 나에 뒤져 오던 어떤 이 나를 앞서 떠나니 各歸其止又何爭(각귀기..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5.11
등산은 좋은것이여... (삼각산, 5/7) 빨간기와집 그 여자 -권혁수(1957~ ) 부순 벽돌을 산업폐기물 처리장에 내다버렸다 집부수기 20년, 아직 부숴댈 내 집은 없다 부서지면 안 될 몸집만 있다 집착이 견고한 몸집을 버리지 못한 기억을 쏟아낸다 이미 20년 전에 밤마다 무수히 부서뜨린 부서지지 않은 집 빨간기와집 그 여자가 미소를 얼굴에..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5.09
신록의 금북정맥을 걷다 (황골도로-차령고개, 5/1) 황사 -류근(1966~ ) 사막도 제 몸을 비우고 싶은 것이다 너무 오래 버려진 그리움 따위 버리고 싶은 것이다 꽃피고 비 내리는 세상 쪽으로 날아가 한꺼번에 봄날이 되고 싶은 것이다 사막을 떠나 마침내 낙타처럼 떠도는 내 고단한 눈시울에 흐린 이마에 참았던 눈물 한 방울 건네주고 싶은 것이다 오늘..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5.02
땅끝을 마치며... (미황사-땅끝마을, 4/23~24) ‘뱅크셔나무처럼’-나희덕(1966~ ) 산불이 나야 비로소 번식하는 나무가 있다 씨방이 너무 단단해 뜨거운 불길에 그을려야만 씨를 터뜨린다는 뱅크셔나무 제 몸에 불을 붙여서라도 황무지에 알을 슬고 싶은 뱅크셔나무 장전된 총알들, 그러나 한번도 불길에 휩싸여본 적 없는 씨방 모든 것이 타고난..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4.27
봄날 금북정맥 3구간 이어아기 (각원사-황골, 4/17) 마흔다섯 - 이영광 (1965 ~ ) 어쩌자고, 사람을 해쳐 쫓기다 깨어난 새벽 오그라든 집은 세상 끝의 은신처거나 감옥이다 살생도 도주도 숨음도 다 이, 땀에 젖은 몸뚱이가 어둔 밤에 저지른 일 변명의 여지가 없는 수감생활이요 깎지 못할 형량이다 시집 한 권. 너무 좋은 시가 많아 어쩔 줄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4.19
영등회, 백운대 오르다 (삼각산, 4/16) 1월21일자-오규원(1941~2007)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이 시가 태어난 날은 2007년 1월 21일. 오늘은 이 시의 네 번째 생일날. 시인은 이 시를 쓴 열이틀 후 2월 2일 영면하였다. 이 시는 병원 침상에서 죽음을 대면하며 태어났다. 시인이 종이에 흘..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