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다 (오소재-미황사, 4/9~10) 마른 물고기처럼 - 나희덕(1966~ )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이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4.13
여수 영취산 진달래에 반하다 (4/8) 꽃 진 자리에 - 문태준(1970~ ) 생각한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꽃잎들이 떠난 빈 자리에 앉는 일 그립다는 것은 빈 의자에 앉는 일 붉은 꽃잎처럼 앉았다 차마 비워두는 일 빈 의자를 바라본다. 거기 누군가 앉았었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 거기 앉아서 한숨 던지던 일이며, 거기 누군가 앉아서 유쾌..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4.13
금북정맥에 들어서다 (이티재-유왕골, 4/3) 틈 - 신용목(1974∼ ) 바람은 먼곳에서 태어나는 줄 알았다 태풍의 진로를 거스르는 적도의 안개 낀 바다나 계곡의 경사를 단숨에 내리치는 물보라의 폭포 혹은 사막의 천정, 그 적막의 장엄 아랫목에 죽은 당신을 누이고 윗목까지 밀려나 방문 틈에 코를 대고 잔 날 알았다 달 뜬 밖은 감잎 한 장도 박힌..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4.05
땅끝기맥 걷기 (월출산의 재발견, 3/26~27) 움직이는 정원 - 박상수(1974~ ) 딸기를 반으로 쪼개 햇볕에 잘 말려두었다가 꿀에 섞어 눈꺼풀에 바르면 네 잎 클로버를 머리에 얹은 요정을 만날 수 있다 요정이 권하는 사루비아 술을 마시고 뒤뜰로 돌아가면 먹구름을 가져다 불을 때는 아궁이, 내려다보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다 움직이다 실패하..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3.28
동마를 포기하던 날 (모락산, 3/20) 날계란 한 판이 몽땅 깨지듯이 - 장옥관(1955~ ) 일요일 한낮 싱싱한 계란이 왔어요오, 굵고 싱싱한 계란이 한 판에 3천원! 마이크 소리 성가시게 달라붙는가 했더니, 갑자기 목소리 톤이 바뀌면서 삼식아, 삼식아! 너 삼식이 맞지! 날계란 한 판이 몽땅 깨지듯 조여드는 느낌! -무슨 일일까. -돈 떼먹고 달..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3.21
기어 넘은 땅끝기맥 (계라리고개-오소재,3/12~13) 책상 아래 벗어놓은 신을 바라봄 / 이문숙(1958~ ) 책상 아래 벗어놓은 신을 바라봄 골목에 불 켜진 마지막 집을 바라볼 때처럼 열넷에 어머니가 물속으로 사라진 그는 왜 ‘신(神)은 없다’라는 그림에 여자 구두 아니, 여자 신 한짝을 그려넣었을까 책상 아래 벗어놓은 신을 말없이 바라봄 어느 먼 곳에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3.14
졸업, 그리고 새로운 시작 (한남금북졸업, 시산제, 3/6) 벽돌 한 장 - 배영옥(1966~) 유모차 안에 갓난아기도 아니고 착착 쌓은 폐지꾸러미도 아닌, 벽돌 한 장 달랑 태우시고 가는 할머니 제 한 몸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무게가 벽돌 한 장의 무게라는 걸까 붉은 벽돌 한 장이 할머니를 겨우 지탱하고 있다 느릿한 걸음으로 이쪽으로 저쪽으로 옮겨다니는 ..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3.10
안개에 숨은 땅끝기맥 걷기 (별뫼산-계라리고개, 2/26~27) 이슬비 이용법/강형철(1955~) 남대문시장 쌓여진 택배 물건 사이 일회용 면도기로 영감님 면도를 하네 비누도 없이 이슬비 맞으며 잇몸 쪽에 힘을 주며 얼굴에 길을 만드네 오토바이 백밀러가 환해지도록 리어카의 물건들 비 젖어 기다리네 영감님 꽃미남 될때까지 가로수는 누가 볼까 팔을 벌리고 사람..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3.01
지리를 떠나며 (2/23~24) 오관석(五觀釋) - 표훈 (? ~ ?) 나는 모든 인연으로 이루어진 법(法)이요 모든 연(緣)은 나로써 이루어 얻은 연이네 연으로 이루어진 나이지만 나는 체(體)가 없고 나로써 연이 이루어졌지만 연엔 성(性)이 없네 만물이 있다, 없다 함은 원래 하나이며 있고 없는 만법은 본래 둘이 아니네 있을..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3.01
지리에 들다 (2/23~24) 안 가본 산/이성부 내 책장에 꽂혀진 아직 안 읽은 책들을 한 권씩 뽑아 천천히 읽어 가듯이 안 가본 산을 물어 물어 찾아가 오르는 것은 어디 놀라운 풍경이 있는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마냥 흘러가고픈 마음 때문이 아니라 산길에 무리지어 핀 작은 꽃들 행.. 산행기/2011 산행기 2011.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