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칸을 하나씩 채워가는 영춘기맥 (군자리-북방리 , 10/6) 끝말잊기 - 김성규(1977~ ) 물고기가 처음 수면 위로 튀어오른 여름 여름 옥수수밭으로 쏟아지는 빗방울 빗방울을 맞으며 김을 매는 어머니 어머니를 태우고 밤길을 달리는 버스 버스에서 졸고 있는 어린 손잡이 손잡이에 매달려 간신히 흔들리는 누나의 노래 노래가 소용돌이치며 흘러다..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10.10
나무천사 사진으로 본 지리 (10/2~3) 레코더 - 황인찬(1988~ ) 교탁 위에 리코더가 놓여 있다 불면 소리가 나는 물건이다 그 아이의 리코더를 불지 않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그랬다 보고 있었다 섬망도 망상도 없는 교실에서였다 리코더는 입으로 부는 것인데 그걸 불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도 없었는데 왜? 시인이 소심하..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10.05
가을지리2 (10/3) 어깨 너머의 삶 - 장이지(1976~ )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소매 끝이 닳은 양복이 한 벌 있을 따름이다. 그 양복을 입고 딸아이의 혼인식을 치른 사람이다. 그는 평생 개미처럼 일했으며 비좁은 임대 아파트로 남은 사람이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보는 굽은 등 투박한 손을 들..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10.05
가을지리1 (10/2~3) 쌍칼이라 불러다오 - 윤성학(1971~ ) 쌍칼, 그의 결투는 잔혹하다 어지간히 무거운 상대라도 높이 들어올리면 전혀 맥을 추지 못한다 지게차의 작업은 그렇게 냉정하다 일말의 동요도 없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상대의 중심 깊숙이 두 개의 칼날을 밀어넣는다 아무 표정 없이 들어올린..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10.05
친구와 걷는 서대문 안산 (10/5) 옛 노트에서 - 장석남(1965~)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10.05
연휴 끝도 산행으로 마무리? (백운-광교산, 9/22) 그가 만든 책 - 송찬호(1959~ ) 그 방안의 가구들은 덧없고 느린 삶을 살아간다 겸손은 가장 최근에 들여온 새 가구이다 그 방의 옷장은 골짜기에서 천천히 떠밀려온 눈사태처럼 오래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집주인은 방세를 올린 적이 없다 금빛 벌레의 오랜 잠은 한여름으로 운반된 얼음 ..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9.22
연일 북한산으로 출근? (9/21) 바나나를 씹으며 - 이준규(1970~ ) 바나나를 우물우물 씹으며 바흐를 듣는다 어제는 김종삼이 태어났으니 술 한잔 오늘은 박인환이 죽었으니 술 한잔 바나나를 우물우물 씹으며 나는 언제 분리수거 될까? 바나나를 모두 먹고 바나나 껍질을 국어사전 위에 놓는다 그림 좋다 바하에서 바흐..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9.22
영랑산악회 번개산행 (북한산, 9/20) 다정도 병인 양 -이현승(1973~ ) 왼 손등에 난 상처가 오른손의 존재를 일깨운다. 한 손으로 다른 손목을 쥐고 병원으로 실려오는 자살기도자처럼 우리는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지. 주인공을 곤경에 빠뜨려 놓고 아직 끝이 아니라고 위로하는 소설가처럼 삶은 늘 위로인지 경고인지 모를 ..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9.22
추석맞이 산행 (북한산, 9/17) 국립중앙도서관 - 고영민(1968~ ) 허공에 매화가 왔다 그리고 산수유가 왔다 목련이 왔다 그것들은 어떤 표정도 없이 가만히 떠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쭈욱 빼고 내려다보았다 그저 말없이 내려다보기만 하다가 매화가 먼저 가고 목련이 가고 산수유가 갔다 시험기간이 되면 시립..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9.22
영춘 첫구간에서의 산상파리 (서천초교~소주고개, 9/15) 휘파람 - 김주대(1965~ ) 한번도 몸을 가진 적 없는 바람이 입술 사이에 동그란 몸을 얻어 허리를 말고 오목한 계단을 걸어나온다 어릴 적 심심한 밤에는 뱀이 되던 소리 가늘고 길게 기어가다가 비눗방울처럼 몇 계단을 뛰어올라 통통 떨어져내리기도 한다 혀 위를 얇게 타고 올라가는 바..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