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고개를 염두에 두었으나.. (청계산, 8/31) 같은 사람 - 유희경(1980~ )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같은 사람이라서 수천 수백 수십의 같은 사람이 살짝 웃는 거라고 두 뺨에 손을 두 손을 이마에 번질 수 있도록 내어주는 거라고 같은 사람이라서 눈을 감는 거라고 젊은 날의 사랑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 글자 사이로 얼굴이 어른거려 일..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9.07
가을이 느껴지다 (영춘기맥, 거니고개-김부리, 9/1) 섀도복싱 - 신해욱(1974~ ) 거기 있다는 걸 안다. 빈틈을 노려 내가 커다란 레프트 훅을 날릴 때조차 당신은 유유히 들리지 않는 휘파람을 불며 나의 옆구리를 치고 빠진다. 크게 한 번 나는 휘청이고 저 헬멧의 틈으로 보이는 깊고 어두운 세계와 우우우, 울리는 낮게 매복한 소리. 바닥으로..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9.07
여름 끝자락에 북한산 형제봉 능선 걷기 (8/25) 꾀병 - 박준(1983~ )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목련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 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8.26
연꽃 패키지 산행 (안산, 8/24) 책 읽는 남자 - 남진우(1960~ ) 여기 한 그루 책이 있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잘 가꿔진 책 페이지를 넘기면 잎사귀들이 푸르게 반짝이며 제 속에 숨어 있는 나이테를 알아달라고 손짓한다 나는 매일 한 그루씩 책을 베어 넘긴다 피도 흘리지 않고서 책들은 고요히 쓰러진다 아니면 한 장씩 찢..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8.26
바람을 벗삼아 행복했던 영춘기맥 (홍천고개-거니고개, 8/18) 라디오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 김춘수의 ‘꽃’을 변주하여 - 장정일(1962~ )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8.20
조경동 계곡을 드디어 다녀오다 (8/10) 반성 156 - 김영승(1958~ ) 그 누군가가 마지못해 사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 때 그는 붕어나 참새 같은 것들하고 친하게 살고 있음을 더러 본다 마아코트 폰테인을 굳이 마곳 휜틴이라고 발음하는 여자 앞에서 그 사소한 발음 때문에도 나는 엄청나게 달리 취급된다. … (중략) 한 사람을 용서..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8.13
아쉬운대로 지리에 다녀오다 (8/7) 소행성을 지나는 늙은 선로공 - 황병승(1970~ ) 하늘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오후 빛바랜 작업복 차림의 한 늙은 선로공이 보수를 마치고 선로를 따라 걷고 있다 앙상한 그의 어깨 너머로 끝내 만날 수 없는 운명처럼 이어진 은빛 선로 그러나 언제였던가, 아득한 저 멀리..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8.11
혹서기 산행이 납량 특집 될뻔 (영춘기맥, 가락재-박달재, 8/4) 몸살 - 이기인(1967~ ) 늦봄과 초여름 사이 찾아온 감기가 좀 나아질 무렵 하루 세 번 챙겨먹은 약봉지가 식탁위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부스럭부스럭 찾아오신 어머니가 감기를 가지고서 고구마 줄기처럼 고향으로 내려가셨다 감기가 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서 소나기가 좀 억세게 오는 .. 산행기/2013산행일기 2013.08.08
오창에서 1박2일을 찍다 (8/2~3) 이 순간 - 김소연(1965~ ) 나는 주머니 속에서 불거져 나온 주먹처럼 너는 주먹 안에 쥐어진 말 한마디처럼 나는 꼭 쥔 주먹 안에 고이는 식은땀처럼 너는 땀띠처럼 너는 높은 찬장 속 먼지 앉은 커다란 대접처럼 나는 담겨져 찰방대는 한 그릇 국물처럼 너는 주둥이를 따고 몸을 마음에게 .. 산 이외.../2013 일기장 2013.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