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는 힘들다? (북촌 답사기, 12/15) '소행성을 지나는 늙은 선로공’-황병승(1970~ ) 하늘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오후 빛 바랜 작업복 차림의 한 늙은 선로공이 보수를 마치고 선로를 따라 걷고 있다 앙상한 그의 어깨 너머로 끝내 만날 수 없는 운명처럼 이어진 은빛 선로 그러나 언제였던가, 아득한 저 멀리로 화살표..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2.17
영랑마라톤, 바람을 벗삼아 한강을 뛰다 (국민건강 마라톤,12/5) ‘나는 천 줄기 바람’- 인디언 전래 시 중에서 내 무덤 앞에 서지 마세요 풀도 깎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자고 있지 않아요 나는 불어대는 천 개의 바람입니다 나는 흰 눈 위 반짝이는 광채입니다 나는 곡식을 여물게 하는 햇볕입니다 나는 당신의 고요한 아침에 내리는 가을비.. 산 이외.../마라톤 2009.12.07
손등이 닮은 형제들 (11/7) ‘삶’-김달진(1907~1989) 등 뒤의 무한한 어둠의 시간 눈앞의 무한한 어둠의 시간 그 중간의 한 토막 이것이 나의 삶이다 불을 붙이자 무한한 어둠 속에 나의 삶으로 빛을 밝히자 금강산에서 명상도 하고 동양정신 여러 경전 두루 섭렵하기도 하고. 그런데도 어둠 무한 시간, 앞뒤 꽉 막힌 체증 뚫을 수 ..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1.09
포기하지 않은 당신이 아름답다고? (중마 뛰던 날, 11/1) ‘그 또한 내 마음이려니’-최영록(1954∼ ) 마른 햇살들 으스스 웅크린 담벼락에 떨어진다 바싹 여윈 귀뚜라미 등짝 위 가랑잎 한 잎 툭, 떨어진다 토실한 벌레들 나무 구멍 땅 구멍 온몸으로 따스한 구멍 찾아든다 모두들 떠나고 제 집 찾는 계절의 막장 찬 기운 여윈 마음 얼어붙는 상강(霜降) 서리 맞.. 산 이외.../마라톤 2009.11.02
친구 덕에 멋진 공연을 보다 (10/29) ‘견딜 수 없네’-정현종(1939~ )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0.31
귀한 씨앗 이야기 (10/9) '구절초 시편’-박기섭(1954∼ ) 찻물을 올려놓고 가을 소식 듣습니다 살다 보면 웬만큼은 떫은 물이 든다지만 먼 그대 생각에 온통 짓물러 터진 앞섶 못다 여민 앞섶에도 한 사나흘 비는 오고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허기를 버리는 강 내 몸은 그 강가 돌밭 잔돌로나 앉습니다 두어 평 꽃밭마저 차마 가꾸..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0.09
여산 사진으로 다시 본 제천 프로젝트 (9/25~27) ‘들꽃 한 송이에도’-전동균(1962~) 떠나가는 것들을 위하여 저녁 들판에는 흰 연기 자욱하게 피어 오르니 누군가 낯선 마을을 지나가며 문득, 밥 타는 냄새를 맡고 걸음을 멈춘 채 오랫동안 고개 숙이리라 길 가에 피어 있는 들꽃 한 송이 하찮은 돌멩이 하나에도 마지막 햇살 안고 저물어가는 들녘,..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10.07
제한시간 내 완주한 것만도 기뻤다 (13회 금수산 산악마라톤, 9/29) ‘현자(賢者)’-박호영(1949~ ) 삶의 그늘을 아무나 드리우는 것은 아니다 사나운 비바람을 이겨내고 뜨거운 햇볕의 고통을 겪고 나야 비로소 그늘을 소유하는 자가 된다 삶의 혜안을 아무나 지니는 것은 아니다 보기 싫은 것도 헤아려 볼 줄 알고 보고 싶은 것도 참고 지나쳐야 참된 지혜의 눈을 갖춘 .. 산 이외.../마라톤 2009.09.30
우이령 넘어 친구 만나러 가기 (9/21) ‘나 역시 미국을 노래한다’ -랭스턴 휴스(1902~1967) 나는 흑인 형제. 손님이 올 때, 그들은 나를 부엌에서 먹어라 내쫓는다. 그러나 난 웃고, 잘 먹고, 튼튼하게 자란다. 내일이면, 난 반듯이 식탁에 앉을 것이다. 손님이 와도, 아무도 감히 내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부엌에나 가서 먹어라”고, 그때는..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9.24
집들이 패키지 산행을 염두에 두었으나.. (9/12) '내가 언제’- 이시영(1949~ ) 시인이란, 그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우주의 사업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언제 나의 입김으로 더운 꽃 한 송이 피워낸 적 있는가 내가 언제 나의 눈물로 이슬 한 방울 지상에 내린 적 있는가 내가 언제 나의 손길로 광원(曠原)을 거쳐서 내게 달려온 고독한 바람.. 산 이외.../2009년 일기 2009.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