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23 산행기 83

경주여행기 2 (따로 또 같이 남산 도전기, 4/23)

박얼서 거실에서 월동을 견디던 화초들 쟈스민이 맨 먼저 새하얀 꽃향기를 터트리면 난향(蘭香)들 소리 없이 그 뒤를 따랐다 그해에도 작년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그러다 문득 복수초 설중매 봄까치꽃이 SNS에 등장하면 봄은 바짝 다가온 셈이다 노오란 꽃 산수유가 피고, 생강나무가 어떻고 하면 봄은 이미 시작된 셈이다 울안에 홍매화 산당화 백목련이 피고 라일락 꽃향기 담장을 넘나들면 봄은 이미 바람난 셈이다 민들레 수선화 유채꽃 꽃잔디 광대나물 별꽃 각시붓꽃 제비꽃 현호색 화들짝 신상을 공개해버린 저네들 마주치는 눈빛마다 봄날에 만취했다 어제 마주친 제비꽃과 얼레지꽃 이들과 눈인사를 나누면서 어느덧 만춘이라 여겼는데 오늘 또 다시 화단에 튤립이 피고, 모란이 벙글고 하긴, 계절이란 개화를 위한 꽃밭이었다 여름엔 ..

관악산 짧게 가기 (4/22)

이병률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봄날이 이렇습니다, 어지럽습니다 천지사방 마음 날리느라 봄날이 나비처럼 가볍습니다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 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 코스개관: 정부과천청사역 11번 출구-과천향교-용마능선-연주대3거리 (559봉)-마당바위-관음사 국기봉-관음사 입구-사당역 (둘, 산행하기 좋은 날) 오늘도 장공주와 둘만 산에 오게 되었다. 평일 시간이 안 맞아 모처럼 토욜..

수리산 (4/16)

강계순 참혹하게 쓰러졌던 나뭇잎 위에 색색이 천을 놓아 하나씩 하나씩 궁핍의 겨울을 꿰매는 손 내 손이 약손이다 내 손이 약손이다 만유의 어깨 위에 내려 빈혈의 혈관을 채워주고 서릿발 같던 하늘 비단 안개로 닦아내어 천지에는 자근자근 땅 밟으며 일어서는 병후의 시력 내 손이 약손이다 내 손이 약손이다 천년을 다시 살아나서 죽은 혼 불러내어 일으켜 세워 주는 어머니의 어머니의 다시 보는 약손 코스개관: 병목안 시민공원-수암봉-부대옆봉-꼬깔봉-슬기봉-태을봉-관모봉-명학역 심심이와 둘레길을 걷기로 했는데 딸 생파라 못 온다고. 그냥 지나자니 아깝다. 오랫만에 수리산을 점심 다 되 출발. 수리산역에서 철쭉을 볼까 했지만 그럼 반쪽만 산행해야 할것 같다. 해가 긴지라 12시 넘게 출발했지만 무사히 관모봉까지 찍고..

둘레길 스탬프도 찍고 칼바위도 넘고 (북한산, 4/14)

이병률 떨어지는 꽃들은 언제나 이런 소리를 냈다 순간 순간 나는 이 말들을 밤새워 외우고 또 녹음하였다 소리를 누르는 받침이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그 받침이 순간을 받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새벽에 나는 걸어 어느 절벽에 도착하여 그 순간순간의 ㄴ들이 당도할 곳은 있는지 절벽 저 아래를 향해 물었다 이번 생은 걸을 만하였고 파도도 참을 만은 하였으니 태어나면 아찔한 흰분홍으로나 태어나겠구나 그렇다면 절벽의 어느 한 경사에서라면 어떨지 그리하여 내가 떨어질 때는 순간과 순간을 겹겹이 이어 붙여 이런 소리를 내며 순간들 순간들 아주 아주 먼 길을 오래 오래 그리고 교교히 떨어졌으면 코스개관: 북한산 둘레길 명상길 입구-형제봉-대성문-보국문-칼바위 능선-문필봉-범골 약수터-삼성암-빨래골 입구-북한산 둘레길..

건산회 따라 사량도 지리산 가기 (4/8)

김소월 봄에 부는 바람, 바람 부는 봄, 작은 가지 흔들리는 부는 봄바람, 내 가슴 흔들리는 바람, 부는 봄, 봄이라 바람이라 이 내 몸에는 꽃이라 술잔이라 하며 우노라. 코스개관: 가오치항-배 이동-금평항-버스 이동-수우도 전망대-지리산-절골재-달바위-가마봉-옥녀봉-면사무소 (아침엔 쌀쌀했지만 낮에는 햇살 좋고 바람불어 좋은 날, 당나귀 7명이 건산회 산행에 조인) 최근까지 작은 버스지만 버스 운행하던 당나귀도 적은 인원과 물가 상승으로 버스를 포기했다. 이 문제는 회장님이 대장님으로 계신 건산회도 마찬가지인것 같다. 건산회 산행 중 여수 영취산, 방태산 아침가리골 등을 따라간 적 있지만 최근엔 가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사량도 지리산을 간다고 한다. 그동안은 총무님이 생업 때문에 토요 산행을 못 갔지..

당나귀와 도봉산 하이라이트 가기 (도봉산역-북한산우이역, 4/2)

이정란 경칩과 청명 사이 춘분이다 햇살의 입자는 가늘게 세포분열하고 바람은 날개 밑에 숨겼던 칼을 버렸다 자전거 타고 둑길을 달리던 사람이 멈추어 서서 연인에게 전화를 건다 초롱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는 새싹들 개울 양쪽을 이으려는 다리 사랑의 말은 마음 어디까지 스며들며 땅 속의 생기는 새싹 다리 놓아 무슨 꽃을 퍼뜨리려나 다리는 잇는 게 아니라 경계를 허무는 일 잠을 자는 동안에도 그대 향해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춘분이다 살의 비탈과 영혼의 골짜기 사이 코스개관: 도봉산역 1번 출구-다락능선-은석암-포대전망대-Y협곡-신선대 우회-우이암-원통사-우이동 (당나귀 5명, 덥고 화창한 날. 바람이 불어주어 무사히 산행 마칠 수 있었음) 3월부터 북한산 11성문, 불암-수락을 했으니 이번엔 도봉산 차례. 내 생각..

서울 둘레길 불암산 구간 걷기 (봉화산역~당고개역, 3/30)

김경미 당신이라는 수면 위 얇게 물수제비나 뜨는 지천의 돌조각이란 생각 성근 시침질에 실과 옷감이나 당겨 우는 치맛단이란 생각 물컵 속 반 넘게 무릎이나 꺾인 나무젓가락이란 생각 길게 미끄러져버린 검정 미역 줄기란 생각 그러다 봄 저녁에 듣는 간절한 한마디 저 연보랏빛 산벚꽃 산벚꽃들 아래 언제고 언제까지고 또 만나자 온통 세상의 중심이게 하는 코스개관: 봉화산역 2번 출구-신내어울공원-묵동천-화랑대역-불암산 둘레길-철쭉동산-당고개 (3명, 화창한 봄날) 오늘 서울둘레길 스탬프3개 도전하는 날. 봉화산역에서 만나 아차용마 스탬프를 찍어야 해 조금 백 해야 하는데 묵동천 걷다보니 놓쳤다. 되돌아가 찍고 다시 묵동천 걸어 화랑대역으로. 여기저기 봄색이 어여쁘고 날도 더워져 잠바 벗고 진행해도 전혀 춥지 않다..

진달래 만나러 용마산 가기 (3/25)

목필균 벚나무에 걸터앉아, 아침을 물어왔다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새 “너 이름이 뭐니?” 또 하루가 열렸다 짐작할 수 있는 그림이 감흥없이 펼쳐진다 밤새 쏟아붓던 빗줄기가 멈췄지만 부어터진 하늘이 검게 웅크리고 있으니 조용히 집에서 실내 자전거나 타야겠는데 비에 젖은 깃털을 고르며 누구에겐지 무한대 잔소리를 퍼붓는 목소리 시끄럽다 시끄럽다 고혈압과 저혈압을 높나 드는 심장을 붙들고 내 발목 내가 잡으며 근신하는데 사계절 창문 밖 풍경이 되어 감시하는 날개 나뭇가지와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는 회갈색 목소리가 분주하다 코스개관: 용마산역 2번 출구-용마폭포공원-용마산 정상-깔딱고개 쉼터-관룡탑-한다리 전원마을-장자호수공원 (셋, 따뜻한 봄날) 주말에만 시간이 되는 심심이, 주말이면 오마니에게 가야하는 산나리를 위..

불암-수락산 가기 (3/19)

박근수 돼지꿈을 꾸면 재수 있다고 복권을 사지만 미식가들의 입만 즐거울 뿐 돼지의 참모습은 모르고 산다 돼지는 앞날을 걱정하지 않는다 먹고 그 자리에 눕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한다 그러나 인간은 돼지의 삶과 죽음에 대해 기억하진 않는다 그저 천한 돼지로만 안다 목에 칼이 들어올 때 기막힌 절규를 돼지 멱따는 소리로 기억한다 기름진 논밭 주검으로 차려진 진수성찬 뜀틀 뒤의 매트리스 이 모든 후의(厚意)를 무시당한 채 인간에게 받을 수 있는 것은 고작 고삿상 위에 올라가 절을 받는 것 코스개관: 상계역 1번 출구-불암산 공원 입구-청암능선-불암정-정상-다람쥐 광장 (석장봉)-덕릉고개-도솔봉-수락산 정상-홈통바위 (출입금지) 우회길-도장봉 갈림길-석림사-노강서원 (아침엔 쌀쌀했는데 낮에는 다소 더웠던 봄날,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