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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더위 팔공기맥 가기 (비재-베틀산-냉산-도리사, 8/21)

이정록 잘 마른 핏빛 고추를 다듬는다 햇살을 치고 오를 것 같은 물고기에게서 반나절 넘게 꼭지를 떼어내다 보니 반듯한 꼭지가 없다, 몽땅 구부러져 있다 해바라기의 올곧은 열정이 해바라기의 목을 휘게 한다 그렇다, 고추도 햇살 쪽으로 몸을 디밀어 올린 것이다 그 끝없는 깡다구가 고추를 붉게 익힌 것이다 햇살 때문만이 아니다, 구부러지는 힘으로 고추는 죽어서도 맵다 물고기가 휘어지는 것은 물살을 치고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말하겠다 내 마음의 꼭지가, 너를 향해 잘못 박힌 못처럼 굽어버렸다 자, 가자! 굽은 못도 고추 꼭지도 비늘 좋은 물고기의 등뼈를 닮았다 코스개관: 비재-우베틀산-베틀산-좌베틀산-내밀재-냉산 갈림길-냉산-도리사 (9:05~18:05, 여섯, 덥고 지치던 날 9:05~18:05) 8..

평일 숨은벽 가기 (8/19)

정연복 홀로는 이슬 하나의 무게도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작고 여린 꽃잎들이 층층이 포개어지고 동그랗게 모여 이슬도, 바람도 너끈히 이긴다 하나의 우산 속에 다정히 밀착된 두 사람이 주룩주룩 소낙비를 뚫고 명랑하게 걸으며 사랑의 풍경을 짓는다 가파르게 깊은 계곡과 굽이굽이 능선이 만나서 산의 너른 품 이루어 벌레들과 새들과 짐승들 앉은뱅이 풀들과 우람한 나무들 그 모두의 안식처가 된다 나 홀로는 많이 외로웠을 생(生) 함께여서 행복한 참 고마운 그대여, 나의 소중한 길벗이여 코스개관: 효자2동-국사당-테라스 바위-숨은벽 능선-국사당-효자2동 (흐리다 점심 무렵 비가 조금 내리다 그치다 하산 후 장대비, 2명) 지난주 부산에 다녀왔고 이번주는 시한부 백수 마지막에 평일에 가자고 해 금욜로 진작 날을 잡았다...

아작산과 백련산 가기 (8/18)

임보 초가을 땡볕은 땅벌처럼 따깝다 친구 만나러 가는 길 부채로 이마를 가리고 징검징검 그늘을 골라 딛는다 가로수 그늘에 들기도 하고 담벼락 그늘에 젖기도 하고 다세대 건물의 그늘도 반갑다 그늘들을 찾아 밟고 가다 문득 그늘에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늘에 빚진 것이 아니지… 평소에 별로 고맙게 여기지 않던 저 가로수며 담장이며 집들이 내게 그늘의 보시를 베푼 게 아닌가? 그늘, 그늘… 돌이켜 보니, 지금껏 나는 한평생 그늘에 빚만 지고 산다 부모의 그늘, 스승의 그늘 아내의 그늘, 친구의 그늘 농부며, 어부며 수많은 이웃들의 그늘 어느 시인은 자신을 기른 것은 8할이 바람이라 했지만 나를 기른 것은 볕이 아니라 9할이 그늘이다 아작산과 만나기로 한 날. 산나리는 코로나 확진으로 못 왔고 영미..

백련산 가기 (8/13)

안준철 징검다리를 건널 수 없다 돌다리 서너 개가 물에 잠겨 있어 남은 돌들이 멀쩡해도 시방 징검다리는 소통불능상태다 내안에도 징검다리가 있다 물이 닿지 않아 잘 마른 외로움들 그 오랜 수고를 헛되게 하는 젖은 돌도 몇 개 박혀 있다 물이 졸아들어야 돌다리가 드러나듯 이제는 나도 졸아들 궁리를 해야겠다 누구에게는 가 닿지 않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코스개관: 녹번역 3번 출구-정상-백련사-명지대 (셋, 흐리다 비가 옴) 예숙이 시간 될때 백련산에 가기로 해 명화까지 셋이 녹번역에서 만났다. 흐린 날씨가 비가 되었다. 능선을 걷다 백련사로 하산해 팥죽 맛집을 찾아가는데 힘들다고 차 타고 가자 해 명지대 앞에서 버스 타고 증산역에 내려 맛있는 칼국수집에서 팥죽 먹기. 두 친구 다 먹는데 진심이라 팥죽에 설탕,..

부산여행기 3 (송도 케이블카, 8/12)

양광모 ​ 비 좀 맞으면 어때 햇볕에 옷 말리면 되지 ​길 가다 넘어지면 좀 어때 다시 일어나 걸어가면 되지 ​사랑했던 사람 떠나면 좀 어때 가슴 좀 아프면 되지 ​살아가는 게 슬프면 좀 어때 눈물 좀 흘리면 되지 ​눈물 좀 흘리면 어때 어차피 울며 태어났잖아 ​기쁠 때는 좀 활짝 웃어 슬플 때는 좀 실컷 울어 ​누가 뭐라 하면 좀 어때 누가 뭐라 해도 내 인생이잖아 -조식 먹기 어제 산행을 피곤 해 다들 잘 잔것 같은데 나만 잠을 좀 설친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다. 우리 넘버4는 여행 전부터 호텔 조식 타령을 했다. 다행히 한화콘도에 조식이 있어 호텔보다 가격도 착하고 가짓수도 적당해서 체크인 하며 예약을 하니 인당 2만원이다. 7시부터 시작이라 일찌감치 내려왔는데 좋은 자리엔 벌써 사람들이 앉아 있다..

부산여행기 2 (금정산, 8/11)

정연복 아기가 아장아장 첫걸음마 떼듯 오늘은 입추 가을이 첫발 내딛는 날. 첫걸음마 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 아니겠는가. 아직은 한여름 무더위가 계속되지만 이제 가을은 성큼성큼 다가오리. 코스개관: 온천장역 5번 출구-버스 (금정산 동문 등산로 입구)-4망루-의상봉-원효봉-복문-고당봉-북문-범어사 (흐리다 비가 간간히 내려 시계가 아쉬웠던 날) 오늘은 부산의 진산 금정산을 가기로 한 날이다. 점심으로 삼각김밥을 싸려고 인터넷 주문을 했는데 출발 전까지 도착하지 않아 유부를 대신 샀다. 도시락 싸는 김에 아침도 밥으로 먹기로 한지라 각자 반찬 한가지씩 들고 오라고 주문하니 생각보다 많은 반찬이 있어 반찬이 남았다. 어제 식당에서 싸 온 밥도 아침에 먹었고 새로 한 밥으로 유부초밥을 싸며 ..

부산 여행기 1 (천마산, 8/10)

정영자 세가닥 파도가 밀려오는 광안리, “아침바다” 커피숍에서 약속을 기다린다. 우~ 우~ 비오시는, 부슬부슬 꽃비 오시는 토요일의 흐린 오후 기막히는 사연들은 없어도 모이면 즐거운 사람들이 한 바다 사랑 띄우고 지난 밤 고뇌도 눕히면서, 흐린만큼 막막한 서러운 나이를 헤아려 본다. 바닷가에는 총총히 커피숍도 많고 카페도 별처럼 떠있다. 밀물 썰물로 사람들이 가고 오고 두 사람이 하나 되는 움직이는 그림도 되다가 한 점 풍경화를 이루고, 바다 속에서 커피를 마신다. -서울역에서 부산역으로 올 1월 나름팀과 경주 2박3일 여행을 다녀왔다. 둘쨋날은 경주 남산을 갔고 힘들기도 했지만 나름 재미있는 여행이었다. 여름방학 2탄으로 부산을 가기로 했다. 문제는 숙소. 장공주 호텔 할인권, 하늘 한화콘도 예약을 하..

더위, 소나기와 함께 팔공기맥 잇기 (비재-문수봉-오로고개, 8/7)

목필균 며칠을 두들겨대던 빗줄기 끝에 장마는 잠시 틈을 내어 쉬고 있었다. 밤새 길 떠날 이의 가슴엔 빗소리로 엉겨든 불안한 징조가 떠나질 않더니 설핏 잦아든 빗소리가 반가워 배낭을 메고 나선다. 차창에 비치는 산야는 물안개에 잠겨 그윽한데 강줄기에 넘치는 듯 시뻘건 황토 물이 맑고 고요한 물보다 격정을 더하게 한다. 수많은 토사물이 뒤섞여 흘러가는 강물 그 속에 일상의 찌꺼기도 던져 보낸다. 미련 없이. 코스개관: 비재-산동참 생태숲-문수봉-곰재-삼면봉(못 만남)-329봉-오로고개 (9:20~16:10, 바람도 거의 불지 않던 더운날. 오후 한바탕 장마비 같은 소나기가 내려 더위를 식혀줌, 7명) 연일 더운 날씨다. 산행 취소한다는 공지 기다렸다는 신천씨. 컨디션이 완전 꽝이고 윤호씨도 어제 늦은 음주..

백련산 (8/6)

천양희 잠실 롯데백화점 계단을 오르면서 문득 괴테를 생각한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생각한다 베르테르가 그토록 사랑한 롯데가 백화점이 되어 있다 그 백화점에서 바겐세일하는 실크옷 한벌을 샀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친구의 승용차 소나타lll를 타면서 문득 베토벤을 생각한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3악장을 생각한다 그가 그토록 사랑한 소나타가 자동차가 되어 있다 그 자동차로 강변을 달렸다 비가 오고 있었다 무릎을 세우고 그 위에 얼굴을 묻은 여자 고흐의 그림 '슬픔'을 생각한다 내가 그토록 사랑한 '슬픔'이 어느새 내 슬픔이 되어 있다 그 슬픔으로 하루를 견뎠다 비가 오고 있었다 코스개관: 녹번역 2번 출구-생태육교-정상-서대문 등기소 (셋, 후덥지근 하고 잠시 소나기도 내린 날) 다음주 부산 여..

개봉역 친구네 집 (8/5)

김경미 크고 위대한 일을 해낼 듯한 하루이므로 화분에 물 준 것을 오늘의 운동이라 친다 저 먼 사바나 초원에서 온 비와 알래스카 닮은 흰 구름떼를 오늘의 관광이라 친다 뿌리 질긴 성격을 머리카락처럼 조금 다듬었음을 오늘의 건축이라고 친다 젖은 우산 냄새를 청춘이라고 치고 떠나왔음을 해마다 한겹씩 둥그런 필름통 감는 나무들이 찍어두었을 그 사진들 이제 와 없애려 흑백의 나뭇잎들 한 장씩 치마처럼 들춰보는 눅눅한 추억을 오늘의 범죄라 친다 다 없애고도 여전히 산뜻해지지 않을 해와 달은 오늘의 감옥이라 친다 노란무늬 붓꽃을 노랑 붓꽃이라 칠 수는 없어도 천남성을 별이라 칠 수는 없어도 오래 울고 난 눈을 검정버찌라 칠 수는 없어도 나뭇잎속 스물 두 살의 젖은 우산을 종일 다시 펴보는 때늦은 후회를 오늘의 위대..